6월 민주항쟁이 가르쳐준 진짜 PR의 힘

1987년 거리에서 배우는 커뮤니케이션의 본질

by 강마레

가장 아름다운 메신저, 가장 강력한 메시지


나는 영화 〈1987〉에서 장준환 감독이 강동원을 캐스팅한 것은 이한열 열사에 대한 최고의 헌사라 생각한다. 우리 시대 가장 아름다운 배우로 가장 아름다운 청년을 기리는 것. 이보다 더 정직한 존경과 존중이 있을까? 이한열을 기리는 방식이 곧 메시지였다. 기획된 메시지가 아닌 진심에서 우러나온 마음. 그것이 1987년 거리를 움직인 진짜 힘이었다.


영화에서 강동원은 이한경이라는 평범한 대학생으로 등장한다. 영화 동아리 활동을 하고, 친구들과 후배들과 어울리던 평범한 청년. 그런 이한경이 아니 강동원이 이한열이라니. 그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 관객은 놀라는 동시에 깨닫는다. 역사는 특별한 사람이 만드는 게 아니라는 것을. 가장 평범한 청년이 아름다운 청년이었다는 것을.


6월 민주항쟁은 우리 역사상 가장 강력한 PR 캠페인이라고 본다. 이것은 단지 저항이 아니라, 독재를 무너뜨린 집단 커뮤니케이션의 결정체였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PR전략과 실행 기획안도 슬로건 안건 회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호헌철폐, 독재타도"는 울려 퍼졌다. 지금 브랜드는 20자 카피를 만들기 위해 수십 시간 회의하지만, 그날 거리에선 여덟 글자가 모든 것을 설명했다


타깃 분석도 없었는데 '넥타이 부대'가 출근길을 멈췄다. 채널 전략이 없었지만 전국으로 퍼졌고, 브랜딩 없이도 모두가 그날을 기억했다. 마치 국민 모두가 천재 마케터처럼 움직였다.


그 기원은 무엇이었고, 촉발은 어떻게 이루어졌으며, 어떤 방식으로 그 거리의 언어는 확산되었을까? 당시 목숨을 걸고 참여했던 분들의 경험을 온전히 담을 수는 없지만, 그 소통 방식을 돌아보는 것이 지금 PR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6.10 만세운동, 6.10 민주항쟁… 6월 10일은 어쩐지 무언가 끓어오르는 운명을 타고난 날 같다. 게다 이 날은 내 생일이기도 하다. 개인적인 기념일이 역사적 기념일과 겹친다는 것. 그 우연이 주는 무게감 때문일까, 나는 이 날을 더욱 특별하게 기억한다.


거리에서 탄생한 커뮤니케이션


6월 민주항쟁을 PR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어떨까? 우리가 흔히 전략과 메시지, 매체와 채널로 구성하는 'PR'의 언어로, 그날의 거리와 목소리를 다시 읽어본다면 말이다.


물론 그 시절에도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국본)라는 조직이 있었다. 이들은 큰 그림을 그리고 일정을 조율하는 역할을 했지만, 지금 우리가 말하는 ‘전략적 기획’과는 차원이 다르다. 현재 PR팀이 타깃 분석부터 메시지 설계, 채널 믹스, KPI 설정까지 치밀하게 계산하는 것과는 전혀 달랐을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당시에는 국본뿐만 아니라 거대한 민주화 세력이 존재했다. 김대중, 김영삼을 비롯한 야당 정치인들, 신한민주당의 조직적 대응, 그리고 오랜 기간 축적된 학생운동의 네트워크가 있었다. 명동성당을 중심으로 한 종교계의 조직적 지원, 재야인사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의 연대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국본과 민주화 세력의 역할은 오히려 ‘무대를 만드는’ 정도가 아니었을까? 언제, 어디서 모일지를 정하고 큰 방향을 제시하는 것까지가 그들의 몫이었다면, 그 무대 위에서 무슨 말을 할지, 어떤 방식으로 전달할지는 현장에 나선 시민들의 몫이었다.


진짜 전략은 기획서가 아니라
시민들의 감각에서 나왔다


진짜 메시지는 회의실이 아니라 거리에서 만들어졌다. 진짜 전략은 기획서가 아니라 시민들의 감각에서 나왔다. 그래서 더욱 놀랍다. 조직된 기획보다 시민들의 진심이 더 강력한 전략이었던 것이다.


지난해 윤석열의 계엄 이후 자발적인 시민들의 빛의 혁명처럼 말이다. 6월 민주항쟁은 단지 정치적 사건이 아니라 시민이 만들어낸 커뮤니케이션의 살아있는 모델이기도 하다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놀랍게도, 6월 민주항쟁을 PR이나 커뮤니케이션 전략 관점에서 분석한 연구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정치학, 사회학, 역사학적 접근은 차고 넘치지만, 소통과 메시지 확산의 메커니즘으로 접근한 연구는 드물다. 어쩌면 그 시절에는 지금 우리가 말하는 의미의 PR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의 1987년, 그날의 기억


1987년, 나는 초등학교 3학년 꼬맹이였다. 그해 여름을 앞두고, 이유 없이 수업을 중단하고 하교하는 날이 많았다. 어떤 위험인지는 말해주지 않았지만 위험하니, 집이 가까운 아이들끼리 조를 지어 하교하게 했고, 여의치 않으면 선생님이 집 근처까지 데려다주기도 했다. 전에는 없던 일이었다.


우리 집은 대학가 근처였다. 집 앞 골목은 늘 무언가가 터지기 직전처럼 긴장감이 감돌았고, 자주 매캐한 연기로 올라왔다. 어느 날 하굣길 골목 반대편에서 대학생 언니가 달려오더니 우리 집 대문 옆에 숨었다. 나는 대문을 열면서 본능적으로 언니의 손을 끌어당겼다. 뒤이어 오는 경찰의 발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우리 집 대문은 무대가 됐다. 대학생 언니의 숨소리, 경찰의 씩씩거리는 소리, 그리고 정적. 골목에 경찰들이 사라지고, 조용해질 때까지 우리는 숨 죽여 기다렸다.


그것이 민주주의를 위한 어떤 투쟁이라는 짐작은 있었지만,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인지. 왜 그런 것인지는 알지 못했다. 10년이 지나고 1997년, 나는 대학생이 되었고 도서관에서, 수업에서, 학보사에서, 선배들의 이야기 속에서 '그날'의 진실이 하나둘 문장과 얼굴로 풀러나왔다.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


신입생 박종철의 죽음이 알려지자 대학생들이 먼저 거리로 나섰다. 진실을 요구하며, 고문을 멈추라며, 독재를 끝내라며 외쳤다. 하지만 1987년 국가 권력은 말을 지우는 방식으로 통치했다. 진실은 은폐되었고, 보도는 검열되었으며, 질문은 사라졌다. 하지만 말이 사라진 자리에, 시민들은 '응답의 언어'를 스스로 만들어냈다.


그리고 한 장의 사진. 피를 흘리며 쓰러진 청년을 품에 안고 있는 또 다른 청년. 최루탄에 맞아 피를 흘리며 쓰러진 학생, 이한열 열사였다. 처음엔 대학가에 국한되었던 시위는 점차 확산되었다.


두 청년의 모습이 담긴 사진은
어떤 기획된 메시지보다 강력한 진실이 담겨있었다.


그 장면 하나로 전국이 움직였다. 서울뿐 아니라 부산, 광주, 대구... 수십만 명의 시민들이 거리를 가득 메웠다. 최루탄과 물대포가 쏟아져도 사람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시민들은 누군가의 입이 되었고, 누군가의 얼굴이 되었으며, 결국 누군가의 메시지가 되었다. PR은 기획된 말이 아니라, 말없이도 울리는 방식이었다. 한 장의 사진, 한 줄의 말, 보이지 않던 고통이 '얼굴'이 된 순간. 당시에는 이것을 PR이라 부르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다시 본다면, 그것은 진심이 만든 커뮤니케이션, 정의가 만든 메시지, 시민이 몸으로 써낸 소통의 언어였다. 물론 이런 분석이 그분들이 겪은 고통과 용기의 무게를 온전히 담을 수는 없다.


점심시간, 넥타이 부대가 거리의 메신저가 되었다. 그들의 입에서 울린 구호는 전국으로 퍼졌다


당시 유인물은 이름 없는 시민들이 썼고, 구호는 소리로 만들어졌으며, 퍼포먼스는 즉흥적이고 집단적인 감각 속에서 나왔다. 이것은 지금 우리가 아는 전문적 커뮤니케이션과는 다른 차원의 소통이었다. 공감의 축적, 부조리에 대한 감각의 공유, 그리고 "우리가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말하지 않을 것"이라는 절실한 책임감이 자연스럽게 소통의 구조를 만들어냈다.


6월 민주항쟁은 결국 6월 29일, 대통령 직선제 개헌과 정치적 민주화를 약속한 '6·29 선언'을 끌어냈고, 이후 대한민국 헌정사의 결정적 전환점이 되었다. 이것은 진정 국민의 힘으로, 시민의 말과 몸으로 이뤄낸 변화였다. 제도는 바뀌었고, 언론은 다시 말하기 시작했고, 거리는 더 이상 침묵하지 않았다.


6월 항쟁의 숨겨진 PR 전략 분석


지금 돌이켜보면, 6월 민주항쟁에는 놀라운 소통의 지혜가 숨어있었다. 그것은 의도된 전략이라기보다 절실함이 만들어낸 자연스러운 흐름이었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진짜 커뮤니케이션이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다.


먼저 시간을 보자. 6월 10일 시작, 6월 18일 최루탄 추방대회, 6월 26일 국민평화대행진. 마치 누군가 치밀하게 계산한 것처럼 절묘한 간격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마케팅 캘린더가 아니라 시민들의 감정이 자연스럽게 고조되는 리듬이었다. 첫 번째로 관심을 끌고, 두 번째로 이슈를 확산시키고, 세 번째로 절정을 만드는. 지금의 PR에서 말하는 '점진적 확산 전략'이 37년 전 거리에서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다.


타깃의 확장도 경이로웠다. 대학생들이 먼저 움직였고, 넥타이 부대가 합류했고, 마침내 시민 전체로 퍼져나갔다. 혁신 확산 이론에서 말하는 얼리어답터에서 얼리마조리티, 그리고 대중으로의 확산이 자연스럽게 일어났다. 지금으로 치면 워라밸을 고려한 마케팅과 같았지만, 그때는 특히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을 활용해 참여했다는 점이 인상 깊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참여할 수 있는 현실적 방법을 스스로 찾아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찾은 것이었다.


메시지의 힘은 단순함에 있었다. "호헌철폐, 독재타도" 여섯 글자. 복잡한 정치적 입장이나 이념적 차이를 모두 제쳐두고,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통분모를 찾아낸 것이다. 지금의 브랜드 슬로건들이 길어지고 복잡해져서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과는 정반대였다. "Just Do It"이 강력한 이유와 같았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고, 누구나 자신의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메시지.


채널의 활용도 놀라웠다. 인터넷도 SNS도 없던 시절, 각 대학은 인플루언서 역할을 했고, 직장은 입소문 마케팅의 통로가 되었다. 유인물과 벽보는 옥외광고가 되었고, 명동성당은 상징적 거점 공간이 되었다. 37년 전에 지금의 다채널 전략을 자연스럽게 실행한 셈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메신저의 진정성이었다. 완벽한 카피가 아니라 그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들의 절실함이 힘이었다. 참여는 설계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일어난 것이었다. 시간은 계획이 아니라 감정의 흐름이었다. 단순함은 전략이 아니라 진심의 결과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진정성은 그 어떤 기법보다 강력했다.


그때와 지금, 무엇이 달라졌나


1987년에는 익명의 시민들이 손으로 쓴 유인물이 거리를 가득 채웠지만, 지금은 전문 팀이 회의실에서 메시지를 브레인스토밍한다. 그때는 몸으로 증명했다. 거리에 나서고, 최루탄을 맞고, 연행되는 것이 참여였다. 지금은 클릭으로 참여한다. 좋아요, 공유하기, 댓글 달기로. 무엇보다 그때는 생존이 걸린 절실함이었지만, 지금은 브랜딩 된 진정성이다. 진정성마저 전략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우리는 지금 하루에도 수십 개의 메시지를 만들지만, 아무도 움직이게 하지 못한다. 예산은 더 많아졌고 채널은 더 다양해졌는데, 왜 그럴까? 메시지 안에 '우리'가 없기 때문이다. 시민을 더 이상 타깃으로만 보지 말고 함께 만들어가는 파트너로 봐야 한다. 전략이 감정을 대체할 수는 없다. 우리가 정말 필요한 것은 사람들 안의 감정을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에 공명하는 메시지를 찾는 일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정교함이 아니라 감각이다. 전달력이 아니라 공명력이다. 얼굴을 보고 말할 수 있는 소통, 진짜 울림이 닿는 메시지. 1987년의 시민들처럼, 살아 있는 '몸'이 메시지가 되는 그런 커뮤니케이션 말이다.


흥미롭게도 2024년 12월 계엄령 선포부터 2025년 6월 대선까지, 우리는 이 놀라운 거리의 커뮤니케이션을 다시 한번 목격했다. 기획되지 않은 시민들의 자발적 움직임을. 촛불과 응원봉이 만든 '빛의 혁명'은 1987년과 놀랍도록 닮아있었다.


37년이 지났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가장 강력한 메시지는 회의실이 아닌 거리에서 나왔고, 전문가가 아닌 시민들이 만들어냈다. 다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SNS라는 채널이 추가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 채널을 통해 전달된 것 역시 기획된 슬로건이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온 외침이었다.


진심이 만든 커뮤니케이션의 힘


1987년 여름,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나는 대학생 언니가 대문 뒤에 숨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 순간이 역사였다. 그 언니의 얼굴에는 두려움과 함께 무언가를 향한 간절함이 있었다.


37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매일 완벽한 전략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예전만큼 사람들이 움직이지 않는다. 우리가 기법은 배웠지만 진심은 잊어버렸기 때문은 아닐까.


이제 선택해야 한다. 완벽한 분석으로 관심받지 못하는 메시지를 만들 것인가, 아니면 불완전하지만 사람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진심을 전할 것인가.


1987년 6월, 거리는 이미 답을 보여줬다. "호헌철폐, 독재타도" 여덟 글자가 나라를 바꿨다. 기획서도, 예산도 없었다. 오직 진심만 있었다.


진짜 커뮤니케이션은 회의실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서 시작된다. 1987년 6월이 증명했듯이, 세상을 바꾸는 것은 완벽한 전략이 아니라 진심 어린 한 사람의 목소리일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가 놓친 건 전략이 아니라,
사람들의 진심이다.
keyword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