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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마루 May 27. 2023

커피의 인문학 4

제15회 - 오늘의 커피 <제3의 물결>

블루보틀


1978년 프랑스에서 열린 국제 커피 회의에서 에르나 크누젠이 이런 말을 했다. 

산지의 지정학적 미세기후가 커피 생두에 특별한 향미를 부여한다.


와인의 떼루와를 커피에 도입하는 개념이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1990년 스페셜티 열풍이 일어났다.


제3의 물결 이야기는 SCAA 투리쉬 로스갭이 한 말이다.

19세기 폴저스가 인스턴트 커피를 유행시킴으로써 첫번째 물결을,

1970년대 스타벅스가 프랜차이즈 커피를 선보이며 제2의 물결을,

1990년대 향미를 따지며 커피를 추구한 스페셜티 커피열풍을. 

앨빈토플러가 말한 제3의 물결로 비유할 수 있다. 

라고 하였다.


커피 역사의 제1의 물결은 현재까지 커피 세계1위인 네스레가 주도 하던 인스턴트 커피 시장이었다.


인스턴트 커피는 서부 개척 시대의 카우보이 커피처럼 빠르게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세계1,2차 대전에서는 추운 참호 속에서 지친 군인들을 따뜻하게 해주던 절실한 음료였다.

커피는 대량 생산 되었고 대량생산을 위해 노동자들은 커피를 마셔야 했다. 


그리던 1970년대, 이제 사람들은 늘 신선하지 않고 일괄된 맛이 나는 인스턴트 커피에 실증나지 시작하였다.

그쯤 갓 로스팅한 원두로 구수한 향을 내는 커피를 만드는 사람이 생겨났다.

네덜란드인 알프레드 피트 Alfred Peet 였는데 그는 커피의 구수한 맛과 향을 위해 강배전으로 타워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피트는 1966년 버클리에 로스팅 가게를 열어 다크 로스팅 원두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미국인들은 인스턴트 커피에서 맡지 못하던 고소한 향과 맛이 나고, 두배 이상 진한 커피에 빠져들었다.

피트의 열렬한 팬이었던 제리 볼드윈Jerry Baldwin과 동생 고든 바우커는  1971년 시애틀

다크 로스팅 원두를 파는 로스팅 커피 가게를 차린다. 그리고 가게의 이름을 스타벅스라고 지었다.


모비딕에 나오는 일등 항해사의 이름을 딴 것이었는데 그들은 로고에도 항해사를 유혹하는 꼬리 두개 달린 인어를 그려 놓었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이 회사는 그냥 로스터 회사였다.


카페로의 변신은 하워드 슐츠가 1987년 스타벅스를 인수하면서 시작되었다.


스타벅스는 이탈리아의 커피머신에 에스프레소를 똑같이 내렸지만 거기에 물을 타 마시는 아메리카노를 미국식으로 만들었다. 고급커피의 일정한 맛을 만들었다고 본다. 그것은 사람들이 익숙한 맛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때를 제2의 물결이라 부른다.


<제3의 물결>

스타벅스는 일정한 맛을 내기 위해 로스팅을 중강배전으로 태워버린다. 커피 고유의 맛이 없어지는 것이다. 또 건강에도 나쁘다. 한국의 1세대들도 다크 로스팅을 하기로 유명하다. 지금도 그들의 커피는 진하다.


인간은 욕망의 동물이다. 새로운 경험을 갈망한다. 그래서 남들과 다른 나만의 경험을 원하기 시작한다. 

이것이 욕망의 제3의 물결이라 부른다.


제3의 물결은 단연 블루보틀인텔리젠시아, 스텀프타운 같은 브랜드가 이끌고 있는 스페셜티 커피 시장을 말한다.


스페셜티 커피란 SCA(현재는 통합)에서 정한 기준 80점 이상인 커피를 말한다. 블루보틀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항상 84점 이상의 점수를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당연히 브랜딩이 아닌 싱글 오리진을 사용한다. 여기에서 싱글 오리진이란 한 농장에서 재배된 한 품종의 커피를 말한다.


위스키에서는 싱글 몰드란 표현을 쓰는데 이 또한 한 양조장, 한 곡물을 사용한 걸 말한다. 이 파란 병 브랜드가 해외 진출을 하는데 가장 먼저 문을 연 나라가 일본이긴 하지만 본격적으로 마케팅을 시작한 나라는 한국이었다.


2019년 성수점을 시작으로 해외 진출을 시작하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한국에 들어오기 전 블루보틀 홈페이지를 가장 많이 방문하는 사람들이 한국인들이었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인스타그램에서 벌써 난리가 난 것이다.


제2의 물결인 스타벅스와 차별화하여 스페셜티 전문 브랜드를 만들었는데 그것을 알아봐 주는 고객이 있는데 당연한 이유 었던 것이다. 디자인이 예쁜 브랜드는 가장 빨리 한국인의 눈에 들어온다. 한국 진출 3년 만에 흑자로 전환하였다.


창업주 제임스 프리먼은 원래 클라리넷 연주자였다. 연주 실력은 별로였다. 당시 백수였던 프리먼은 오클랜드에 창고를 얻고, 로스팅을 시작하였다. 로스팅이 끝나면 파머스 마켓에 가서 커피를 내려 판매하였다.

커피 한 잔을 내리는데 10분이 걸리는 데에도 사람들은 줄을 섰다고 한다. 결국 1년 후 오클랜드에 첫 번째 매장이 들어선다.


블루보틀은 커피계의 애플로 불린다. 

초기 블루보틀의 메뉴는 간결했다. (지금은 이것저것 다 판다...ㅎㅎ) 딱 8가지만, 애플처럼 단순화하였다. 

여기서도 캐러멜 마키아토는 없었다. 산미에 집중했던 것이다. 컵 사이즈도 하나로 통일하였다. 

스페셜티 커피는 물의 양이 정해져 있고 정해진 시간 동안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매장에 와이파이나 콘센트도 없다. 커피에만 집중하라는 것이다.

미국에서 출발했지만 아메리카노를 팔지 않았다. 오로지 핸드드립으로만 커피를 판매하였다. 


그런데 이런 낭만적인 생각만으로 블루보틀이 스타벅스를 이길 수 있었을까?

블루보틀은 실리콘밸리의 옆동네에 있다.(이웃을 잘 만나야 함) 실리콘밸리 사람들은 커피맛을 좀 안다.

구글이 키웠다고 봐야 한다. 구글벤처스에 2000만 달러를 투자받고, 구글의 전략인 '스프린트 방법론'으로 혁신을 이루었다.


그전까지 블루보틀의 주 수입원은 B2B 로스팅이었는데, B2B 원두사업을 포기하고 그때부터 고객에게

원두를 배달하기로 한다. 이 과정에서 가설과 테스트, 피드백 반영을 거치는 스프린트를 계속 돌리게 된다.

그 결과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는 추출 도구에 따라 원두를 결정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고객들이 집에서

커피를 내려 마실 수 있는 Coffee Subscription 즉 커피 구독이라는 서비스를 실시한다. 


또한 고객이 경험할 수 있는 '블루보틀 앳 홈'을 출시하게 된다. 이곳에서는 관련 용품들도 비싸지만 브랜드의 이미지 때문에 잘 팔려 나간다. 카페가 단순한 매장이 아닌 애플스토어 같은 브랜드를 경험하는 플래그샵이 된 것이다.여기에 인스타그램 페이스북과 같은 온라인이 함께 성장하면서 승승장구하게 된다.


대세가 그렇다면 스타벅스도 자본이 있는데 바꾸면 되는 거 아닌가? 스타벅스도 스타벅스 리저브를 열었다.

하지만 커피는 전 세계가 돌아가는 사업인데 싼마이로만(저렴하게만) 운영해 오던 시스템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바꿔야 할지 쉽지 않다. 시스템 전체를 바꾸는 것이 쉽지 않다. 이대로 가면 곧 스타벅스는 10년 안에 절반

이상 매장을 줄여야 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말하지는 않겠다.ㅎㅎ


그런데 여기가 중요한 사건이 터진다. 

2017년 제1의 물결이었던 스위스의 네슬레가 블루보틀을 인수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때까지 독립로스터였던 블루보틀이 자본에 무너졌다고 네티즌들은 난리가 났었다.


자금 압박 때문이었다. 직접 안 봐서 모르지만 네슬레 회장이 스위스로 초대해 아름다운 경치를 보여주면서

기업의 가치를 그대로 보존하겠다고 약속하였다고 한다. 원래부터 네슬레는 커피 세계 1위 기업이었다.


아무튼 블루보틀은 미래를 주도해 나갈 것으로 나는 생각한다.

그 답은 와인에 있다고 생각한다. 와인에 이런 말이 있다.

'한 번 높아진 입맛은 내려가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동네마다 스페셜티 매장이 많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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