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구구절절

37. 편집

20170512_pm11:52

by 강민선

편집 당한 기분이 이런 걸까. 지역 신문에 한 달에 두 번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데 원고를 보내기 전에 팀장, 과장, 관장의 결재를 받아야 했다. 관장의 결재를 받기 전에 연락이 왔다. 관장실에 가보니 칼럼 내용 중에 수정했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독립출판물의 도서관 대출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이미 시행하고 있는 타 도서관을 언급한 부분을 뺐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수정할 시간이 없다는 것과 같은 지역의 다른 도서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는 대답으로 거절했고 관장은 알았다고 하고 넘어 갔는데, 정작 신문에는 그 부분이 싹둑 잘려 있었다. 당연히 앞뒤 문맥도 이상해지고 전체적으로는 못 쓴 글이 되어 버렸다. 관장이 직접 신문사에 연락해 원고를 수정하도록 지시한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보다는 그럴 수도 있구나! 싶었다. 애초에 관장이 시켜서 시작한 일이었고 도서관 업무의 연장이었으니 관장의 최종 결재가 있어야만 실릴 수 있는 칼럼이고 쓸 수 있는 글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차라리 편했다. 편한데, 편하지만은 않다. 결국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을 미처 몰랐다. 그것도 모르고 첫 칼럼이 실렸을 때 신문을 오리고 사진을 찍으며 혼자 흥이 났던 것을 생각하면 착잡해진다. 그런 글을 쓰는 건 업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내가, 원고료가 따로 나오지는 않지만 지면을 얻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잠시나마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유롭게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내가 한심해진다. 결코 자유로운 지면이 아니었다. 눈치를 봐야 하는 곳이었고 그게 싫으면 하지 말았어야 했다. 소설은 소설가가 시는 시인이. 나는 작가가 아니다. 한 자치구에 속한 구립도서관의 직원일 뿐이다. 도서관의 이름을 걸고 쓰는 글이므로 내가 아니라 도서관을 돋보이게 하는 글이어야 한다. 도서관을 돋보이게 하는 것은 관장을 높이는 것. 이용 당하는 기분이라는 것을 말할 필요가 있을까. 그러면 달라질까. 모든 것이 싫어졌다. 어제는 하루종일 머리가 아팠고 휴일인 오늘은 하루종일 잤다. 이 일 말고도 스트레스 받는 일은 많다. 내 마음에서 우러나와 하는 일은 없고 언제나 주어진 일에 쫓기듯 움직이고 있다. 나를 독려하고 내 삶에 의미부여를 해주는 건 오직 나뿐이다. 내가 찾지 않으면 누구도 알려주지 않는다. 누구도 남의 인생을 먼저 돕진 않는다. 그러니 실망할 일도 아니다. 내게 비전과 용기가 있다면 당장이라도 관장실에 가서 이렇게 말할 텐데. 저 그만 하겠습니다. 전부 다, 그만 하겠습니다. 그만 하겠다는 말을, 비전과 용기가 생길 때까지 입 속에서만 여러 번 뇌까리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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