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빨래방

단편소설7

by 강민선
‘작은 갈등은 커다란 갈등으로 덮을 수 있다.’


이 빨래방의 첫인상이 친근했던 것은 이 문장 때문이었다. 문장은 드럼형 세탁기의 조작판에서 발견되었고 컴퓨터로 작성한 글자가 아닌 직접 손으로 쓴 글씨였다. 막 빨래를 집어넣으려던 나는 손을 멈추고 오랫동안 그 문장을 읽고 또 읽었다. 문장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왜 이런 문장이 세탁기에 적혀 있는지, ‘빨래’와 ‘갈등’의 상관관계라도 있는 건지, 있다면 그게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문장 안에 ‘갈등’이라는 단어 대신 ‘빨래’라는 단어를 넣어 보았다. 말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게다가 ‘덮다’라는 단어와도 호응이 되었다. 나는 계속해서 ‘갈등’이라는 단어 대신 다른 단어, 특히 빨래거리로 분류할 수 있는 것들을 넣어 보았다. 작은 이불은 커다란 이불로 덮을 수 있다, 작은 커튼은 커다란 커튼으로 덮을 수 있다, 작은 양말은 커다란 양말로 덮을 수 있다, 작은 팬티는 커다란 팬티로 덮을 수 있다……. 하나씩 떠올릴 때마다 머릿속에서 빨래들이 포개지면서 소복하게 쌓였다.



커다란 빨래, 아니 커다란 갈등이란 어떤 걸까. 나는 가끔 2차 세계 대전 중에 독일군에게 쫓기는 유대인을 생각한다. 내가 그 유대인이 되어 보는 것이다. 아우슈비츠의 공포 속으로 나를 몰고 간다. 그럴 때면 나는 마치 어떤 의식이라도 벌일 양 도서관에서 유대인 학살 관련 사진집을 모두 빌려와 상당한 집중력을 발휘해 온 정신을 사진 속으로 몰아넣는다. 뼈만 남아 앙상한 그들의 몸을, 총에 맞아 산산이 부서져 날리고 있는 머리통을, 카메라가 아닌 죽음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텅 빈 눈동자를 마주한다. 그 의식은 나를 흥분의 핵 가까이 이끌면서 비열한 카타르시스를 안겨준다. 지금 여기 이렇게 살아 있다는.

빨래방 주인의 개인적인 철학의 결과물인 듯한 그 문장도 이와 비슷한 의미일 것이다. 서울의 2008년 여름, 전투경찰이 곳곳에서 진을 치고 있고, 미국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시민단체의 집회와 시위가 범국민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내가 주문한 설렁탕에 고기가 몇 점이 들어가 있는지를 가지고 식당 주인과 싸울 사람은 없다는 것. 하지만 그 어떤 상황이라도 병환 중에서 생사를 오고가는 사람들의 고통에 비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따진다면 내 손가락에 난 작은 상처, 내 가슴에 남은 시련의 상처라고 해서 함부로 하찮게 여겨도 괜찮을까? 그것은 때에 따라 죽음과도 연결될 수 있고, 실제로 그것 때문에 죽은 이들도 엄연히 있으니까. 결국 상처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특별하고 고유한 것이어서 상대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결코 아닐 것이다. 어쨌든 나는 이 24시간 무인 빨래방 주인의 얼굴을 본 적이 없다.



대체 커다란 빨래, 아니 커다란 갈등이란 어떤 걸까. 지금 나를 두렵게 하는 것은 내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삼 년간 사귄 P는 사라졌고, 무료한 일상이 반복되는 사이 불현듯 뇌가 멈춰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은 심장, 심장으로 뛰는 내 인생, 그 모든 것들이 활동사진 속 흑백 영상처럼 어설프게 움직이고 있었고, 매일 아침이면 자동재생 되는 비디오테이프처럼 똑같이 돌아가고 있었고, 더욱 견디기 힘든 것은 과거의 기억이 배경음악이 되어 아무런 감흥도 주지 않은 채 무의미하게 흐르고 있었고, 스크린 바깥의 나는 스크린 안의 내 모습을 보면서 차갑게 조소하고 있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 무거운 고요가 언젠가는 아무도 모르게 나를 휘감아버리고 말 거라고.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고요가 나를 덮칠 때까지 기다리느니 차라리 그 기다림의 시간을 포기하고 싶었고, 어떻게든 움직이고 싶었고, 무슨 일이든지 터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가능하면 그것이 큰일이길 바랐다. 내가 이 빨래방만을 찾게 된 것은 그 문장 때문이었다.



남자는 500원짜리 동전 하나를 내게 건넸다. 영문을 몰라 쳐다보는 내게 그는 “땅에서 주웠어요.” 라고 말했다.

빨래방에 온 사람은 남자와 나를 포함해서 모두 네 명. 평일의 한 가운데 있는 수요일 밤은 손님이 적을 시간이다. 다른 두 사람은 각기 따로 온 사람들로 이십 대로 보이는 퉁퉁한 여자는 소형 세탁기에 빨래를 막 집어넣고 있었고, 아직 학생인지 직장인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한 젊은 남자는 빨래가 다 되기를 기다리는 듯 소파에 앉아 지난 잡지를 보고 있었다. 세탁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저음으로 들렸지만 귀에 거슬릴 정도는 아니었고, 오히려 간간이 들리는 물소리는 낯선 이와의 정적을 적시면서 상쾌감을 안겨다주었다. 손바닥 위에 내려앉은 작은 쇠붙이는 따뜻했다. 내게 건네기까지 꽤 오랜 시간 쥐고 있었던 모양이다. 남자의 온기를 머금은 동전은 내 손 위에서 금세 식어갔다. 나는 동전을 살짝 쥐고는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서른여섯으로 보이기도 하고 마흔다섯으로 보이기도 하는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 그 사이 어디쯤이겠지만 어쨌든 나와는 열 살 이상 차이가 날 것이다. 덥수룩한 머리털이 눈썹과 귀를 덮고 있었고 퀭한 눈 밑에 잔뜩 진 그늘이 그의 인상을 어둡게 만들었다. 그나마 고집스러울 정도로 오뚝하게 솟은 콧마루가 형광등 불빛을 받아 얼굴의 윤곽을 살려냈다. 몸에 닿을 듯 말 듯한 검정색 반팔 티셔츠 아래로 색이 바랜 청바지 곳곳에는 해진 자국이 보였다. 슬리퍼에 맨발 차림이 그가 이 동네에 사는 사람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다. 그렇다면 한번쯤은 마주쳤을 법한데 낯이 설다. 아니, 어디선가 본 것 같기도 하다. 그는 체구가 작은 듯 커 보였고, 여성스러우면서도 남성적이었으며, 사람인데 사람이 아닌 듯한 양면의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부랑자 같았지만 언제든 돌아갈 곳은 있어 보였고, 누구에게도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었던 사람 같기도 하면서 곁에 머물러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사람 같기도 했다.

그는 나대신 내 빨래 바구니에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눈빛은 너무나 강렬해서 빨래들을 헤집고도 남을 것 같았지만 달리 보면 그저 멍한 상태여서 실제로는 아무 것도 보고 있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어쨌든 순간 나도 빠른 눈길로 바구니를 살폈고 속옷 따위가 겉으로 올라와 있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속옷은 손빨래를 해도 되었고 늘 그래왔지만, 언제부턴가 집에서는 양말 한 짝도 내 손으로 빨지 못했다.

남자는 다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무연하게 움직여 자신의 빨래들을 소형 세탁기에 집어넣었다. 그 옆에 서 있던 젊은 여자가 남자를 흘깃 쳐다보았고 남자와 눈이 마주치자 눈초리를 가늘게 내리며 살짝 웃어 보였다. 남자 역시 여자에게 가벼운 목례를 했다. 잘 아는 사이는 아니어도 이곳에서 몇 번 마주친 적이 있나 보다. 빨래방에 자주 드나드는 사람들끼리는 서로에 대해 어느 정도의 안면이 있는데, 나는 아직 이곳에서 목례를 나눌 정도의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라면 조금 나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매주 이곳에서 만나는 사이였지만 마치 헤어진 연인을 대하듯 서로를 외면한다.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우리가 모이는 빨래방도 꼭 누군가 만들어 놓은 무대세트 같아서 모두의 빨래가 끝나고 나면 다른 장소로 바뀔 것만 같다. 나는 모아둔 빨래를 가져오는 날을 사람들로 붐비는, 그래서 아는 얼굴을 마주칠 확률이 높은 주말이나 월요일 대신 수요일 밤으로 정했다.

남자는 주로 화요일이나 목요일에 이곳에 왔었다고 말했다. 수요일에는 강의가 있다고 했다. 무슨 강의냐고 묻자 인사동의 한 전시회장에서 기초 사진 강의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럼 오늘은 어떻게 오셨어요?”

그가 짧은 한숨을 토하듯 대답했다.

“휴강이요.”

나는 남자가 준 동전을 한 손에 쥔 채 미리 준비해 둔 500원 짜리 동전 여섯 개를 꺼냈다. 바구니에 든 빨래라고는 흰 색 반팔 티셔츠 두 벌과 흰 색 반바지, 연한 보랏빛 면 치마를 제외하고는 속옷이 전부였다. 지난 주 수요일에 빨래방에 들른 후로 일주일 동안 밖에 나가지 않았고, 그렇게 빨래 없이 깨끗한 주일을 보낸 건 최근 한두 주뿐만이 아니었다. 빨래할 옷이 없다는 것은 그동안 옷에 땀이나 먼지를 묻힐 일이 없었다는 뜻이고, 그 사실은 내 기분을 몹시 불쾌하게 만들었다. 빨래거리로 넘쳐나던 때가 생각나서였다. 할 일도 많았고 만나고 싶은 사람도 많았던 때 말이다. 세탁기 안에 들어간 그의 빨래도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았다. 세제함에 세제를 한 스푼 넣은 그가 뒤돌아 본 것은 그때였다.

“그 빨래 여기다가 같이 넣을래요?”

나는 쥐고 있던 동전들을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그 덕에 내 주머니에는 없어도 될 500원짜리 동전이 일곱 개나 들어 있다. 내가 주머니에 손을 넣어 딸그랑거리자 그는 나더러 커피를 사라고 했다. 나 역시 커피 생각이 간절했지만 가진 돈은 3500원뿐이었다.

“내가 잘 아는 자판기가 하나 있어요. 한 잔에 400원. 그리로 가죠.”

세탁기가 작동하기 시작했고, 나는 그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인사동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길가에 드문드문 놓여 있는 의자이다. 차갑고 딱딱한 돌로 만든 의자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곳이 꼭 어느 외국의 한 거리처럼 느껴진다. 외국인이 제법 많이 지나다니는 관광지여서일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그곳만의 독특한 냄새 때문이다. 다른 곳에서는 맡아보기 어려운 냄새. 한지 공예품을 파는 곳이 유독 많아서일까. 그것은 종이 냄새 같기도 했는데, 단순히 종이 냄새 때문에 이국적인 인상을 받는 것은 아닐 것이다. P는 그것이 나의 겨드랑이에서 나는 냄새라고 말했다.

“하여간 너의 비유는 항상 그렇다니까.”

“항상 정확하지.”

나는 웃는다. 때로는 무심하고 때로는 격렬하고 때로는 모자란 P는, 그래서 날 꼼짝 없이 웃게 만드는 P는, 내가 태어나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었다. P와 헤어지고 꽤 오랫동안 매일 인사동에 갔었다. 집에서는 걸어서 20분 정도면 갈 수 있는 곳이었다. 돌 의자에 앉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면 간혹 나와 오랫동안 눈을 맞추는 외국인을 만난다. 그러면 나는 웃어 보인다. 상대도 웃는다. 상대가 외국인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우는 얼굴로 웃는 것 말이다.

“내 겨드랑이에서 이런 냄새가 난다고? 말도 안 돼. 난 이 냄새가 좋단 말야.”

“거 봐. 네 겨드랑이 냄새니까 좋아하지. 누구나 자기 겨드랑이 냄새는 좋아해.”

그때 그의 옆구리를 꼬집었던가. 그가 웃는다.

“나도 좋아해.”

엄지와 검지 끝에 닿았던 그의 살을 느끼기 위해 대신 차갑고 딱딱한 돌 의자의 표면을 쓸어 본다. 손가락이 지나간 자리로 돌 의자가 아이스크림처럼 움푹 파인다.

나는 P의 옷을 처음 빨아주었을 때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P는 내 방 침대에서 자고 있었고, 나는 그가 벗어 놓은 짙은 파랑의 격자무늬 셔츠를 들고 세숫대야 앞에 웅크려 앉았다. 옷을 물에 담그기 전 때가 밴 목깃에 코를 대고 한참을 웅크려 있었다. 그의 모든 냄새, 그의 모든 것은 그 목깃에서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이 옷을 훔친다면, 그는 어떻게 될까? 삼손의 머리칼을 자르듯이 이 옷을 조각낸다면, 그는 저 침대에서 결코 떠나는 일이 없어질까? 나는 P의 몸을 씻기듯 조심스럽게 옷을 빨았다. 세숫대야 안에 그의 체액인 듯한 파란 물이 서서히 감돌기 시작했다. 꼭 처음 빠는 새 옷처럼 선명하게 파란 물이었다. 그 후로 나는 그와 같이 목욕을 한 적도 있었고 엄마처럼 그의 몸 이곳저곳을 닦아주기도 했었지만, 그때의 느낌은 내가 그의 옷을 빨았을 때와는 확실히 달랐다.

“참 이상해.”

“그거 페티시즘 아냐?”

P는 사뭇 진지한 투로 말했다.

“설마!”

“그게 뭐 별 건가? 특정한 무엇 때문에 더 좋고, 무엇이 꼭 있어야 더 좋은 거. 내가 너의 겨드랑이를 좋아하는 것처럼.”

“뭐?”

웃는 나에게 P가 말했다.

“가능하면 그런 건 안 만드는 게 좋지. 그 무엇이란 거.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걸 방해하거든.”

P는 여전히 진지했다. 그러다가 이내 간지럼을 태우면서 나를 또 웃기고 만다.

“그러니까 내가 벗고 있을 때도 좀 좋아해달란 말야.”

지금 P는, 자신의 벗은 모습을 좋아해주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상대를 만나 행복해하고 있을까?

연인과 헤어지게 되면, 이별을 통보받은 쪽은 그것이 어떠한 이유가 되었든지 간에 모든 잘못을 자신에게 두게 되는 것 같다. 내가 조금만 더 잘했더라면, 그때 그러지 않았더라면, 혹은 그랬더라면. P가 내게서 마음이 멀어졌다는 것을 알았을 때에도 나는 그러한 결과에 대해 내 책임이 크다고 생각했다. P는 그럴 필요 없다고 말했지만 나는 막무가내였다. 내가 잘못했으니 다시 돌아오라고. P는 지겨워했고, 우리는 좋은 사이로 남을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가 미처 입고 가지 않은 그의 옷은 아직도 내 집 빨래 걸이에 걸려 있다. 목깃에는 세제와 섬유유연제로도 사라지지 않는 그의 고유한 냄새가 그대로였다. 형체가 사라지고 내 눈에만 보이지 않는 것뿐이지 옷의 주인은 계속 그 자리에 있는 것만 같았다. 말을 걸면 대답은 않더라도 들을 수 있을 것 같았고, 그것이 바로 그의 옷이 나에게 남아 있는 이유라고 생각했다. 가끔 한밤중에 잠에서 깼을 때 반듯하게 걸려 있는 그의 옷을 보고 그를 본 양 놀랄 때도 있었지만, 그런 일이 있고나서는 좀처럼 다시 잠이 오지 않아 오랫동안 뒤척여야 했지만, 그것조차도 내게는 위안이 되었다. 그의 옷이 잘리는 꿈을 꾼 적이 있었는데, 내가 기억하는 가장 슬픈 꿈이었다. 특정한 무엇 때문에 더 좋고, 무엇이 꼭 있어야 더 좋은 것? 때로는 그 무엇이 한 사람을 대신하기도 하고, 그 사람보다 더 오랫동안 나를 지켜주기도 한다.

내 얘기를 묵묵히 듣고 있던 남자는 느린 속도로 고개를 저었다.

“두 가지 모두 다 틀렸어.”

그 사이 친해졌다고 생각했는지 그는 내게 반말을 했다. 하기야 나보다 열 살은 많아 보이니 왜 반말을 하냐고 대꾸할 수는 없었다.

“두 가지라뇨?”

“한 사람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아. 그리고 대체 옷 따위가 널 지켜준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된 거지?”

금세 내 얼굴이 붉어지는 게 느껴졌다. 깜깜한 바깥과는 달리 빨래방 안은 새하얀 이불 호청처럼 밝았고, 낯선 이 앞에서 괜스레 몸 둘 바를 모르겠는 나는 종이컵에 담긴 커피만 홀짝였다. 그리고는 대각선에 앉아서 잡지를 보고 있던 젊은 남자 쪽을 쳐다보았다. 언제부터였는지 젊은 남자는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고, 손으로는 무의미하게 잡지를 넘기고 있었다. 퉁퉁한 여자는 밖에 나가고 없었다. 그리고 커피는, 여느 자판기에서 뽑아 마시는 커피처럼 너무 쓰거나 너무 달지 않고 아주 맛있었다.

내 왼 편에 앉은 그는 내가 말을 하는 동안 내내 세심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때만큼은 무엇이나 혹은 그 반대의 무엇, 그러니까 양면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시선은 자신의 무릎에서 약간 오른 쪽으로 돌린 채였다. 눈동자만 조금 움직여도 내 눈과 부딪힐 것 같은 위치다. 부딪히거나 부서질 것 같다. 그의 속눈썹은 꽤 길었다. 뺨 가장자리에서 턱으로 이어진 곳에는 수염을 깎은 자국이 남아 있었다. 깎은 지는 며칠 된 것 같았다. 어느 순간 얼굴에 난 털과 모공까지도 희한할 정도로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했고, 주름과 주름이 연결된 지점, 어긋난 지점까지도 지도처럼 한눈에 보였다. 그의 얼굴 전체가 지도 같았다. 가끔씩 안면근육이 움직일 때마다 지도에 펼쳐진 길들이 세 갈래, 네 갈래로 더욱 뚜렷하게 갈라지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지?”

“이 년 삼 개월이요.”

“집에만 있은 지는?”

“이제 일 년 다 되어가는 것 같아요.”

“정말 집에만 있었어?”

“가끔 장을 보러 가긴 했어요.”

“그야 밥은 먹어야겠지.”

그의 대꾸에 기분이 묘해진다. 어쩐지 내가 식충이가 된 것 같다.

“기분이 나빠졌나? 밥 얘기해서?”

“아니요. 하지만 밥을…… 많이 먹진 못했어요.”

나는 상당히 마른 편이다. 그가 내 다리 쪽을 슬쩍 쳐다보는 게 느껴진다. 무릎까지 오는 린넨 스커트가 맨 살을 다 가려주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내 팔목 즈음에 닿아 있는 것 같다. 무거운 짐을 한참 들고 난 뒤처럼 팔목이 시큰거렸다. 그때 막 빨래방 안으로 아까 전에 보았던 퉁퉁한 여자가 들어 왔다. 세탁물이 물속에서 잘 움직이고 있는지를 확인한 여자는 잠시 서성이다가 다시 밖으로 나갔다.

“마른 사람 중에도 식탐 있는 사람이 꽤 있더라.”

낮고 진중한 목소리로 말을 하니까 도통 농담 같이 들리지가 않는다. 나는 그의 눈을 바라다보았다. 짙은 눈썹과 굵은 쌍꺼풀, 피곤한 듯 쑥 들어간 눈이었지만 그 속에는 어린아이의 것 같은 장난기가 어렴풋이 빛나고 있었다.

“눈 속에 욕심이 있네.”

그는 짐짓 도통한 도사처럼, 그러나 장난기 어린 눈빛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꼭 먹는 욕심은 아니더라도, 뭔가를 갖고 싶어 하는 욕심. 옷에 집착하는 것도 다 그래서인 거고.”

“집착이요?”

“하긴, 본인의 문제를 안다면 여기서 이러고 있진 않겠지. 설마, 옷 같은 걸로 자위를 하진 않겠지?”

“뭐라고요?”

나도 모르게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는 검지를 자신의 입술에 갖다 대며 약하게 “쉬-” 소리를 냈다.

“저녁은 먹었어?”

그가 묻는다.

“네.”

잠시, 다시 그가 묻는다.

“뭘 먹었는데?”

“밥이랑, 냉장고에 있던 반찬 몇 가지랑 먹었어요.”

“멸치, 콩자반 같은 거?”

“잘 아시네요. 예, 그런 거요.”

“꼭 너 같은 것만 먹는 구나.”

나는 무언가로 얻어맞은 듯 놀라서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조금의 움직임도 없이 자신의 다리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가 물었다.

“나를 알아요? 당신 누구세요?”

소파에 앉아 있던 젊은 남자가 핸드폰을 귀에 댄 채 불쾌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내 쪽을 돌아보는 게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크게 울려 퍼진 내 목소리가 다시 내 귓전에 닿아 오랫동안 공명했다. 커피를 다 마신 그가 일어서면서 내 팔목을 잡았다.

“내가 너를 왜 모르겠냐?”



빨래방을 나서고 몇 걸음 걸은 후에 그가 말했다. 확실히 빨래방에 있을 때보다 조금은 상기된 목소리였다. 그것이 습한 여름밤공기 때문인지, 그의 빠른 걸음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그는 뚜렷한 목적지라도 있는 사람처럼 빠르게 걸음을 옮겼고 나는 숨이 가쁘면서도 그를 놓치지 않으려고 같은 속도로 뒤따라 걸었다.

“누군데요?”

나는 그가 알아듣지 못할까봐 다시 한번 큰 소리로 물었다. 그는 대답은 하지 않은 채 계속 걷기만 했다.

7월의 밤은 습기를 잔뜩 먹고 있었고, 그래서인지 바람이 불어도 좀처럼 바람 같이 느껴지지가 않았다. 그저 거대하고 묵직한 공기 덩어리의 존재감만이 몸 전체에 달라붙었다가 떨어져 나가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공기에서 익숙한 냄새가 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와 내가 도착한 곳은 인사동이었다. 상점들 대부분의 문이 닫혀서 몇 개의 가로등만이 거리를 비추고 있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차도 뜸했다. 이 시간의 인사동은 어느 집 마당 같이 고요하다. 인사동의 벽돌 바닥과 그가 신고 있는 슬리퍼가 묘하게 어울렸다. 그의 걸음은 확실히 느려져 있었다. 그리고는 멈추었다.

“이거 잘 알지?”

그는 돌 의자를 손으로 가리켰다. 나는 더욱더 당황스러웠다. 그가 가리킨 곳은 많은 의자 중에서도 내가 항상 앉는 자리였다.

“사진 강의를 하고 있는 곳이 바로 여기야.”

그는 그대로 팔을 들어 손가락을 위쪽으로 향했다. 돌 의자 뒤 쪽 건물 입구에 󰡐T갤러리󰡑라고 쓰여 있는 작은 간판이 보였다.

“이 건물 3층. 거기선 이 거리가 다 보이는데 넌 항상 여기 앉아 있더라. 자세도 표정도 몽롱해가지고는.”

그는 내가 앉았던 자리에 앉아 나를 흉내 내기라고 하려는 듯 의자 위를 손바닥으로 천천히 쓸었다. 그의 행동이 너무 여성스럽고 정확해서 이런 상황 중에도 불쑥 웃음이 나올 뻔했다.

“처음엔 몰랐는데, 얼굴이 익더라고.”

그가 앉은 자리에서 나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오늘 그를 만나고 처음으로 오랫동안 마주보는 것 같다. 그가 갑자기 일어나더니 내 팔목을 잡았다.

나는 그를 따라 ‘T갤러리’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안에는 불이 꺼져 있어서 바닥을 깔고 있는 것이 어두운 색의 카펫이라는 것밖에 알 수 없었다. 삼층까지 이어진 나선형 계단을 오르는 동안 대리석 벽면에 손을 대고 있어서인지 손바닥뿐만이 아니라 온 몸이 시원했다.

도착한 곳에는 문이 없는 작은 방이 있었고, 그가 불을 켜자 방 안의 벽을 빽빽하게 채운 사진들이 보였다. 사진 속에는 내가 있었고, P도 있었다.

“이게, 어떻게, 뭐예요?”

“사진이지.”

그의 무심한 저음이 방 안에, 건물 전체에 울려 퍼졌다.

사진 속의 나와 P는 같은 장소, 그러니까 같은 돌 의자에 앉아 있었지만 각각 다른 시간에 있었고, 사진 안에는 날짜와 시간을 알려주는 타이포그래피가 함께 인쇄되어 있었다. 4월의 어느 날 오후 세 시. 나는 멍한 얼굴로 의자에 앉아 있다. 멈춰 있는 나의 주변으로 사람들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 같은 날 오후 여섯 시. P는 의자에 앉아 손목시계를 바라보고 있다. 정말 손목시계를 보고 있는 건지 손을 보고 있는 건지, 아니면 그저 다른 생각에 잠겨 있는 건지는 모른다. 11월의 어느 날 오후 한 시. 나는 두 팔을 의자에 의지한 채 고개를 한껏 뒤로 제쳐 하늘을 보고 있다. 하늘은 페인트칠을 해 놓은 듯 파랗다. 검은 외투에 빨간색 목도리. 내가 직접 짠 목도리다. 같은 날 밤 열한 시. 눈이 오고 있다. 노란 가로등 불빛이 P의 머리에 내려앉은 눈송이를 반짝 빛내주고 있다. 사진은 모두 이런 식이었다.

“말도 안 돼.”

다른 사람이 대신 말해주는 것 같은 소리가 내 입에서 튀어 나왔다.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런 일이…….

사진은 나와 P뿐만이 아니라 다른 수많은 남녀의 모습을 담고 있었고, 머리 위에는 ‘사진 속의 연인들’이라는 글자가 현대적으로 디자인된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같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어. 전부 다른 사람들이야. 낯선 사람들. 이들 중에 실제로 연인인 사람도 있겠지만 정말 그런지 아닌지는 확인할 길이 없어. 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고, 그저 길에서 스친 사람들이니까. 근데 너희는 아니야. 매번 같은 장소인 것도 그렇지만, 네 표정이나 눈빛, 그리고 이 친구 표정과 눈빛이…… 거울처럼 닮았어. 둘 다 내가 그렇게 가까이에서 카메라를 들이댔는데도 전혀 눈치 채지 못했고. 나한텐 고마운 일이지만 골치깨나 아픈 일이기도 했어. 어쩐지 두 사람 계속 어긋나고 있는 것 같은데, 내가 나서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만나게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쓸데없는 오지랖이라고 생각하기엔 두 사람이 너무 오랫동안 끌고 있는 것 같아서. 내가 의도한 건 아니지만, 이 작업하는 데 이 년이나 걸렸어.”

그를 바라보는 것 외에 다른 길은 없을 것 같아서,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움푹 들어간 눈 속에 그대로 박혀 버린 나. 물속에 잠긴 듯, 당신 대체 누구냐고 묻고 싶은 말이 좀처럼 소리가 되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왜 이제야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지 화가 나기도 했지만, 이건 도무지 내가 화를 내야 할 일이 아니라는 이성적인 판단쯤은 남아 있었다. 그는 나의 모든 것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잘 아는 자판기가 있어요, 할 때의 그 얼굴처럼. 너무 쓰지도 너무 달지도 않던 커피 맛이 생각난다. 입 안에 침이 도는 것 같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그가 밉기도 했고 고맙기도 했다. P가 밉기도 했고 고맙기도 했다. 나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이 순간만큼은 온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고 있는 것 같다.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동네 곳곳에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깬 사람들이 한두 명씩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었지만 집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퉁퉁하고 희멀건 피부를 가지고 있는 여자는 시종 어찌된 일인지 자기도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얼굴이 원래 하얀 건지 아니면 충격을 받아 하얗게 질린 건지 알 수 없다. 두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고 별다른 도리가 없다는 듯 떨리는 한 손을 또 다른 떨리는 손이 붙잡고 있었다. 그 옆에 서 있던 젊은 남자는 짜증스러운 얼굴이었지만 형사의 질문에는 꼬박꼬박 대답하는 편이다. 어디선가 카메라 플래시가 연이어 터졌고, 젊은 남자의 목소리는 더욱 고조되었다.

“계속 여기서 같이 있었습니까?”

형사가 묻자, 젊은 남자는 그렇다고 말했다.

“근데 어떻게 모를 수가 있습니까? 빨래방이 몇 십 평 되는 것도 아니고.”

“저, 그게, 잡지도 보고 있었고, 아 그때 통화 하던 중이었어요. 여자 친구한테 전화가 와서요. 통화 목록 확인해보셔도 돼요.”

남자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형사에게 내밀기까지 한다.

“아니, 솔직히 누가 짐작이나 했겠어요. 그 여자가 그런 짓을 할 줄 알았겠냐고요.”

형사보다 한참 어려보이는 남자의 말투는 오히려 형사를 훈계하는 투다. 형사는 허공을 보며 한숨을 짓는다. 퉁퉁한 여자가 울음을 터뜨린 건 그때다.

“제가 밖에 나갔다가 중간에 잠깐…… 다시 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 뭔가 낌새가, 좋지 않더라고요.”

여자는 울먹거리면서도 분명하게 발음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하지만 누구에게 말하고 있는지는 모른다.

“그 여자, 빨래는 안 하고 계속 세탁기만 보고 있는 거예요. 처음에 봤을 때도 그러더니, 밖에 나갔다가 왔는데도 여전히 그러고 있는 거예요.”

여자는 돌연 화난 얼굴로 젊은 남자 쪽을 쳐다본다.

“이봐요, 옆에 계속 있었으면서 이상한 생각도 안 들었어요?”

“이상한 생각이요? 아니, 야심한 시각에 처음 보는 여자한테 이상한 생각하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니에요?”

“지금 그 말이 아니잖아요. 정신이 나간 사람 같지 않았냐구요!”

여자는 소리를 버럭 지른다.

“내가 볼 땐 아줌마가 더 정신 나간 사람 같아요! 이상한 생각 들었으면 아줌마가 좀 돌보지 그랬어? 어딜 쏘다니다가 와 가지고는 나한테 떠 넘기냐고!”

“뭐라고? 너 몇 살인데 반말이야! 어?”

여자가 손가락을 치켜들고 남자에게 다가가자 남자도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손에 든 핸드폰을 바닥으로 내던지면서 소리를 지른다.

“아, 진짜 사람 미치게 하네. 왜 나한테 그래! 내가 죽였어? 내가 세탁기에 밀어 넣었냐구!”

형사는 양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두 사람 사이를 가로 막는다.

“왜들 이러십니까? 정말 이러고 싶어요? 어이 김형사! 여기 이 옷들도 좀 챙겨봐. 비닐봉지 없어? 다 젖잖아. 나 원 참……. 그리고 이 여자 거주지랑, 동거인 있는지도 좀 알아 봐. 근데 빨래방 주인은 왜 안 나타나는 거야?”

형사의 후배인 듯한 또 다른 형사가 장갑 낀 손으로 빨갛게 핏물이 든 옷들을 주워 커다란 비닐봉지 안에 담는다. 여자의 것으로 보이는 작은 옷가지와 속옷이 한데 뒤엉켜 있고, 남자의 것으로 보이는 검정색 티셔츠와 청바지가 그것들을 감싸고 있었다. 밖을 지나다니던 몇 사람이 고개를 기웃거리며 빨래방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저 두 남녀가 다투나보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이젠 별의별 일에 경찰이 출동한다며 무심히 지나갔다. 사람들이 지나간 자리로 빗물이 똑똑 떨어지기 시작했고, 빗물은 구겨진 채 길바닥을 뒹굴던 두 개의 종이컵을 톡톡 건드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