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기

단편소설4

by 강민선

플라타너스 낙엽이 잔잔한 물결을 이루며 보도블록 위를 흐르고 있었다. 흐르는 건 낙엽이 아니라 나 자신인 것 같아,라고 생각하며 해정은 천천히 걸어 나갔다. 상류 어딘가에서 띄운 종이배가 물길을 따라 순순히 흘러 내려오는 것처럼 대로를 달리는 차들도 유난히 착실하고 얌전해 보였다.

가로수길 끝에 국립도서관이 있었다. 오래되고 유명해서 한 번도 몰랐던 적이 없는 도서관이면서도 수도권의 공공도서관 사서인 해정은 한 번도 와본 적이 없었다. 국립도서관에서 시행하는 사서교육에는 번번이 참석하지 못했다. 해정의 선배와 동료, 후배들은 그런 교육을 지겨워했지만, 해정은 그들을 부러워했다.

그곳은 고요했다. 해정이 상상했던 것과 비슷했다. 평일 오후. 낮은 언덕을 이루는, 이제는 노랗게 물들어버린 너른 잔디와, 그 위에 누군가 모르고 떨어뜨린 낱알처럼 띄엄띄엄 보이는 사람들. 해정은 그쪽을 향해 잠깐 동안 시선을 두다가 고개를 돌렸다.

국제회의장은 정문에서 가장 가까운 건물 안에 있었다. 크기도 알맞았다. 출입문은 바닥부터 천장까지 통유리로 되어 있었는데 유난히도 파란 하늘과 오색으로 물든 나뭇잎들이 그대로 비쳤다. 해정은 그 사이로 천천히 계단을 오르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로비에 들어선 해정은 고개를 돌려가며 좌우를 가늠해보았다. 지금껏 가보았던 결혼식장의 작고 어수선한 로비들에 비하면 넓은 편이었다. 해정은 이곳이 사람들로 가득 찼을 때의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많이 오지도 않을 테지만 얼마가 왔든 불편하지 않을 정도였다. 조용한 클래식이 흘러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좋을까. 얼른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해정은 결혼식이 진행될 회의장 문을 살짝 밀어보았다. 열리지 않았다. 안을 들여다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조금 더 세게 밀어보았다. 잠긴 것 같았다. 주변을 돌아보았다. 로비 입구에서 정장 차림의 남자 직원이 해정이 서 있는 쪽을 쳐다보았다. 해정은 그쪽으로 걸어갔다.

“예식장 대관 때문에 왔는데요, 저 안에 들어가 볼 수는 없나요?”

“예, 지금은 못 들어갑니다. 주말에 결혼식 있을 때만 들어가 볼 수 있어요.”

“그럼 예약은 어디서 하나요?”

“본관 건물 6층 총무과에서 문의하시면 돼요.”

해정은 회의장을 나와 노란 잔디광장을 지나 본관으로 향했다. 잔디 위로 비둘기들이 날아오르고 있었다. 비둘기에게 과자 부스러기를 내주고 있는, 허름한 옷차림의 길거리 생활자처럼 보이는 한 아주머니가 먼 벤치에 앉아 있었다. 비둘기가 날아간 하늘 끝은 깨질 듯이 파랬다.

해정은 본관 입구에서 잠깐 멈추어 섰다. 출입구는 지하철 개찰구를 연상케 하는 보안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어 회원카드가 있어야만 통과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그 카드를 꺼내 바코드를 읽힌 후 그곳을 지나갔다. 그때마다 작게 삐이- 소리가 났다. 머뭇거리고 있는 해정을 안내데스크에 앉아 있던 직원이 먼저 발견했다.

“예식장 대관 때문에 왔는데요.”

“6층 총무과로 가세요. 엘리베이터는 저쪽에 있습니다.”

검은 정장을 입은,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남자 직원이 가장 가까운 출입구를 열어주면서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해정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6층에서 내렸다. 길고, 아무도 다니지 않는 조용한 복도 끝에 총무과를 가리키는 화살표가 보였다. 그 전에 오른편 벽으로 정수기가 있었다. 다가가 냉수 한 모금을 삼켰다.

문은 반쯤 열려 있었다. 여느 사무실 풍경과 다르지 않았다. 사람들은 모두 파티션 사이로 얼굴을 감춘 채 앉아 있었다. 누구에게 다가가 말을 걸어도 방해가 될 것 같았다. 해정은 성큼 안으로 들어서지 못했다. 출입문 옆에 걸려 있는 조직도에는 총무과 소속 직원들의 사진과 이름, 직함과 직책이 순서대로 나열되어 있었다. 거기서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싶어 찬찬히 확인해보았지만, 직함과 직책만으로는 누구에게도 예식장 문의를 하는 것이 마땅치 않아 보였다. 담당자 이름이라도 미리 알아볼 것을. 늦은 후회가 들었다.

출입문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 한 여직원이 앉아 있었다. 그녀는 해정과 눈이 마주치자 귀에 걸려 있던 이어폰 한쪽을 떼었다. 떨어져 나온 이어폰에서 희미하게 피아노 소리가 들렸다. 이어폰은 스마트폰과 연결되어 있었고 화면에는 글렌 굴드의 1981년 스튜디오 연주 장면이 비치고 있었다. 아마도, 그럴 것이라고 해정은 추측했다. 족히 백 번은 넘게 돌려 보았던 영상이었다. 마음을 쓰게 하는 작은 체구. 희고 가느다란 손가락. 구부정하게 움츠린 등.

“무슨 일로 오셨어요?”

“예식장 대관 때문에 왔는데요, 어느 분한테……”

“저기 캐비닛 있는 벽 쪽 끝자리로 가시면 금상현이라는 이름이 보이실 거예요. 거기로 가시면 돼요.”

해정이 알았다는 목례를 하자 여직원은 들고 있던 이어폰 한쪽 끝을 다시 귀에 꽂았다. 그녀의 중요한 시간을 뺏은 것 같아 해정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금상현. 해정은 여직원이 말해준 이름을 뇌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군데군데 빈자리가 보였고 또 몇은 자리에서 눈을 붙이고 있거나 여직원처럼 스마트폰을 보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적막한 사무실을 걷는 내내 해정의 귀에는 여직원이 들었던, 그리고 보았던 글렌 굴드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환청처럼 이어지고 있었다.

해정의 눈에 금상현이라는 이름이 보인 것은 캐비닛이 있는 벽 쪽 끝자리까지 갔을 때였다. 빽빽하게 붙어 있는 다른 자리들과 달리 널찍한 공간이었다. 공동으로 사용하는 캐비닛이 있기 때문에 여유를 둔 것이겠지만 유난히 공허해 보였다.

처음에는 자리를 비운 줄 알았다. 파티션이 그리 높지 않은데도 자리 주인이 보이지 않았는데, 좀 더 다가가 보니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는 해정이 다가오는 기척을 느끼지 못한 듯 등과 머리를 구부정하게 숙인 채였다. 해정은 머뭇거리다 파티션 안쪽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이번까지 합치면 오늘 하루 동안 똑같은 질문을 네 번째 하는 셈이었다.

“안녕하세요? 저 예식장 때문에……”

그가 고개를 쳐들었다.

“여기 앉으세요.”

그는 사무적으로 말했다. 어떤 감정도 묻어 있지 않은 목소리가 해정의 귀에 익었다. 국립도서관에서 간소한 결혼식을 원하는 부부에게 무료로 예식장을 대관해준다는 인터넷 기사를 보고 해정은 담당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남자는 무뚝뚝했고, 경상도 억양을 가지고 있었고, 이미 여러 문의전화에 시달렸는지 피곤해했다. 해정은 자신의 전화가 상대를 귀찮게 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여 대관 방법에 대해 제대로 묻지도 못했다. 질문은 헛돌았고 그것이 상대를 더 짜증나게 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가 해정과 통화를 했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는 해정으로서는 알 수 없었지만 몰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서로의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상태에서 나눈 짧은 통화였지만 해정이 기억하는 감정은 부끄러움이었다. 스스로도 늘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더딘 말투가 떠올랐다. 낯선 사람에게 무언가를 물어봐야 하는 순간이면 찾아오는 몹쓸 버릇이었다. 단순한 질문이 아니라 한껏 자세를 낮추어 도움을 요청하는 것만 같아서 그랬을 것이다. 예식장을 공짜로 빌려준다지 않는가. 자신처럼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이 하루에도 여러 명일 터고, 그래서 상대는 피곤해하는 것이고, 그런 태도가 느껴져 해정은 더욱 주눅 들었던 것이다.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잘 고쳐지지 않았다. 혹시 전화로도 예약이 되냐고 해정이 물었을 때 상대는 차갑게 말했다. “전화로는 예약 안 됩니다.”

구두로 예약만 하고 날짜가 임박해서야 역시 구두로 취소하는 ‘간단한’ 사람들 때문에 초기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이야기가 뒤따르긴 했지만 경상도 억양 때문인지 해정의 귀에는 자신을 혼내는 것만 같았다. 자신은 결코 간단한 것을 취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항변하고 싶었다.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그럴 필요를 못 느껴서이기도 했지만 아무리 항변한들 변하지 않는 사실 한 가지 때문이었다. 해정은 그에게 전화를 걸어보리라 마음먹으면서부터 몹시 불편하면서도 상당히 익숙한 감정에 휩싸였다. 열등감이나 자격지심으로는 설명하고 싶지 않지만, 그러나 그것에 가까운. 해정의 귀에는 그의 ‘간단한’이 ‘가난한’으로 들렸고, 그것은 사실이었다.

계약 기간은 이 년이었지만 육 개월이 지나면 정직원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 말을 해정은 한 귀로 흘리려 했지만, 그래서 실망하는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지만, 열심히 일하면 대가가 따르리란 기대마저 버리지는 못했다. 그러나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었다. 열심히 일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열심히 일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고, 이를 위해 중요한 것은 어느 자리에서 일하고 있는가 이다. 출발선이 다르면 사람들은 실력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했다. 간혹 ‘요즘 시대가 어려워서’라고 말해주는 사람도 있지만 아무리 어려워도 보석은 빛이 나고 인재는 알아보는 법이라는 말 앞에서 반박할 여지는 없어 보였다.

“여기 앉으세요.”

해정은 그가 가리킨 작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았다. 해정의 눈앞에 치약을 짜 놓은 칫솔과 물컵이 있었고, 그는 어질러진 서류들과 함께 서둘러 그것을 반대쪽으로 치웠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양치를 하려던 참이었을까. 해정은 그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뺏었다고 생각할 게 틀림없었다. 게다가 자신은 그에게 어떤 이익도 안겨주지 못하는 손님이었다. 그는 해정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는 앉은 채로 의자를 돌려 플라스틱 의자 뒤편에 기대어 세워 놓았던 무언가를 다른 쪽으로 치웠다. 길고 묵직한, 목발이었다. 해정은 물끄러미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자신이 옮겨줄 수도 있었는데, 하는 생각은 그가 목발을 다 옮겨놓고 나서야 들었다. 해정은 난처해졌다. 가만히 의자에 앉아 있어도 되는지 아닌지 어쩔 줄 몰라하던 해정의 시선에 의자 위에 놓여 있는 그의 두 다리가 들어왔다. 다리의 어디쯤부터 사라지고 없는 것인지, 헐렁한 빈 바지만 그 자리에 있었다. 해정은 얼른 시선을 바꾸어 그의 얼굴을 살폈다. 다행히도 그는 해정을 보고 있지 않았다. 그렇게 해정이 불안한 표정으로 그의 다리와 얼굴을 번갈아 살피는 내내 그는 해정을 보지 않았다. 일부러 피하는 것인지, 해정과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줄곧 책상을 치우고 주변을 정리하는 데 여념이 없어 보였다.

그는 두툼한 파일 하나를 꺼내 해정의 앞에 펼쳤다. 표지를 넘기자 스케줄 표가 보였다. 주말은 모두 형광펜으로 동그라미 표시가 되어 있었다. 10월, 11월, 12월의 달력을 넘기고, 내년 1월과 2월을 넘기자 빈 공간이 보였다.

“가장 빠른 날은 3월 마지막 주 토요일이네요. 내년 4월과 5월은 전부 마감됐습니다. 하루에 한 팀만 받고 있고요. 3월로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6월로 하시겠습니까?”

해정은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3월로 할게요.”

그는 3월 마지막 주 토요일에 형광펜으로 동그라미를 그렸다. 그리고 페이지를 넘겼다. 다음으로는 예식장 내부 사진이 있었다. 궁금했던 모습이었다.

“가운데에 버진로드가 있고, 양 옆에 기본적인 꽃 장식은 저희가 해드립니다. 외부업체에서 하는 생화 장식, 장식용 파라솔, 신부 대기실 장식 같은 것들은 하실 수가 없습니다.”

“네.”

해정은 사진 속 내부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꽃 장식은 기대하지 않았는데 기본 그대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외부 인테리어 업체를 섭외하지는 않을 거였다. 그럴 형편도 안 되었다.

“검소한 결혼식을 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거니까 그 점은 알고 계셔야 해요.”

그는 몇 번이나 다짐을 받아두려는 것처럼 강조했다. 아마도 이 선을 지키지 않은 사람들이 더러 있던 모양인가 보았다.

“폐백실도 준비가 되어 있고요, 신랑 신부 겉 한복은 빌려드립니다. 각자 속 한복이랑 상 위에 올리는 음식들만 준비하시면 되고요……”

“저 잠깐만요, 좀 적을게요.”

해정은 가방에서 수첩과 필통을 꺼냈다. 철제 필통에서 펜들이 구르는 소리가 조용한 사무실 안에 퍼졌다. 해정은 손아귀에 힘을 주어 최대한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도록 애쓰며 필통 뚜껑을 열었다. 녹이 슨 아귀가 힘겹게 벌어졌다. 그는 해정이 메모하는 것을 기다리고 나서 다시 말을 이었다.

“신랑 신부 예복도 각자 준비하셔야 합니다. 신부 화장이나 부케도요. 개인적으로 준비하셔도 좋고요, 원하시면 저렴한 곳들을 몇 알고 있으니까 저희가 연결은 해드릴 수 있어요.”

“네.”

“하객은 이백 명을 넘으면 안 됩니다. 넘으면 자리가 없어요.”

“네.”

그럴 리는 없을 거라고 해정은 속으로 말하며 열심히 펜을 굴렸다.

“피로연은 도서관 구내식당에서 하는데 최대 이백인 분만 음식을 준비하기 때문에 더 이상은 드실 수가 없어요.”

이번에도 강조하는구나.

“네.”

차라리 잘 된 일이라고 알려주고 싶었다. 작은 결혼식장, 작은 피로연. 그러면 오히려 결혼식이 꽉 차 보이겠지. 자리가 없어서 돌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잘 상상이 되지 않지만. 화환 없는 결혼식이라는 점도 해정을 안심시켰다. 결혼식에 화환을 보내줄 만한 곳이 없었다. 하지만 화한을 보내서는 안 되는 결혼식이라. ‘화환은 정중히 사양합니다.’ 해정은 청첩장에 이 문구를 넣어야 할지 말지 생각했다.

그가 신청서를 내밀었다.

“여기 작성해주시면 됩니다.”

해정은 신청서의 양식에 따라 이름과 연락처, 주민등록번호와 주소, 그리고 엄마 아빠의 이름을 적었다. 배우자 이름과 연락처를 적고 난 뒤 배우자의 주민등록번호를 적다가 멈추었다. 뒷자리는 해정의 머릿속에 없었다. 뿐만 아니라 뒤이어 채워 넣어야 하는 배우자의 집주소도 외우고 있지 않았고 부모님 성함도 몰랐다. 예약을 하러 온 것은 맞았지만 이런 양식이 필요한 줄은 생각도 못했다. 해정은 핸드폰을 꺼내면서 그에게 양해를 구했다. 말을 한 것은 아니지만 그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해정은 문자를 보냈다.

‘주민번호랑 집주소랑 부모님 성함 좀 문자로 보내줄래?’

해정이 상대의 답을 기다리는 동안 그도 기다려주었다. 책상 위에 있는 프린트물들을 넘겨보며 분류하거나 필기구들을 정렬하는 식의 소일들을 하면서. 대부분의 신청자가 여기서 막히곤 했던 것일까. 자신처럼 이 타이밍에서 상대에게 연락을 하고 상대의 답변을 기다렸을까. 그래서 저렇듯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행동을 보이는 걸까. 해정은 조급한 마음에 핸드폰을 더욱 꽉 쥐었다. 답신의 진동을 조금이나마 더 빨리 느끼려는 듯. 기나긴 일분 여가 흘렀고 이내 핸드폰이 진동했다. 해정은 화면에 나타난 주소와 숫자들을 보며 신청서의 빈칸을 채웠다.

해정이 빈칸을 다 채웠을 때 그가 다음 파일을 펼쳤다.

“피로연은 구내식당에서 합니다. 구내식당 음식이 마음에 안 드시면 가까운 외식업체로 예약하셔도 됩니다. 출장뷔페는 안 됩니다. 여기 가격 별로 메뉴가 있으니까 가져가서 확인해 보시고요, 음식 맛은 미리 볼 수 있습니다. 드셔 보고 결정하셔도 됩니다. 이건 제가 드릴 테니까 적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아, 네.”

해정은 펜을 쥔 손에 힘을 뺐다.

“신랑 신부 신분증 사본이 있어야 하는데.”

그가 말했다. 해정은 서둘러 지갑에서 주민등록증을 꺼냈다.

“필요한 줄 몰라서 사본을 준비 못했어요……”

“네, 괜찮습니다. 여기서 복사하면 되니까요. 배우자 분 거는 없죠?”

그는 당연하다는 듯이, 지금까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준비하지 않은 상태로 신청하러 왔었다는 것을 말해주기라도 하듯 말했다. 해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해정의 손에서 주민등록증을 받았다. 그리고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는지 한동안 수화기만 들고 있다가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목발을 잡았다. 그를 대신해서 복사를 해줄 사람에게 전화를 건 거였을지도 모르겠다고 해정은 생각했다. 그런데 저쪽에서는 아무도 받지 않은 것이다.

그는 목발을 잡은 팔에 힘을 실어 그 반동으로 몸을 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리 한쪽이 휘청 흔들렸다. 그쪽 다리가 없었다. 흔들린 건 다리가 아니라 빈 양복바지였다. 그는 무척 힘겨워 보였다. 하지만 그 힘겨움이 익숙해 보였다. 그때 해정은 그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있었다. 그는 목발을 짚고 일어서는 데에 열중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많이 받아본 사람처럼, 다른 것은 무시한 채 자신의 움직임에만 집중하려 애쓰고 있는 것 같았다. 해정은 또다시 안절부절못하는 처지가 되었다. 뭐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무엇이라도. 무슨 말이라도. 하지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해정은 가만히 있었다. 도와줄 수가 없었다. 대신 일어서야 할까. 해정은 가만히 앉아 있었다. 무언가라도 하려는 제스처가 도리어 그를 불편하게 만들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그는 목발을 짚고 아마도 복사기가 있는 곳으로 천천히 한 발을 내디뎠다.

‘신분증 사본 메일로 보내줄 수 있어?’

해정은 새로운 문자를 보내 놓고 기다렸다. 얼마 뒤에 그의 책상 위 전화기가 울렸다. 해정은 울리고 있는 전화기를 바라보았다. 그가 방금 전에 전화를 걸었던 곳일까. 전화벨은 계속 울렸다. 주인 대신 전화를 받아야 하는 것 아닐까. 지금 잠시 자리를 비웠다고, 멀리 가지는 않았고, 복사 한 장만하고 다시 올 거라고 말해줘야 하는 것 아닐까. 어이없는 짓이라고 생각했다. 누가 그런단 말인가. 동료 직원도 아니고. 전화벨은 끊어졌다. 해정은 자신이 그를 과도하게 염려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정은 그의 책상을 둘러보았다. 그는 아마도 총무과의 다른 업무도 맡고 있겠지만 예식장 대관 업무를 주로 담당하고 있는 것 같았다. 북엔드 사이에는 알 수 없는 서류들이 빽빽하게 꽂혀 있었고, 파티션 벽면에는 예식과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각종 기관의 연락처가 붙어 있었다. 가족사진이라든가, 아기자기한 장식품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걸까. 중학생 정도 되는 아이 한 명쯤은 있고도 남아 보였지만 편견일지도 몰랐다. 다리 하나는 언제부터 없었던 걸까. 언제부터 목발을 짚고 다녔을까. 여자를 만나본 적은 있을까. 사랑은? 해정은 고개를 저었다. 이런 것도 편견일 뿐이었다.

칫솔모 위에 짜 놓은 치약도 그대로였다. 저대로 오래 두면 치약이 굳지 않을까. 치약 위에 먼지가 쌓이지 않을까. 먼지가 쌓이면 칫솔질이 무슨 소용일까. 해정은 아무래도 자신이 곤란한 시간에 방문한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조금만 천천히 왔다면, 그래서 그가 점심을 먹고 느긋하게 양치질을 하고 충분히 휴식을 취한 다음에 왔다면. 애초에 예약 신청서 작성에 대해 예습이라도 하고 왔다면…… 해정은 문득 저 칫솔의 주인이, 이 책상의 주인이 따뜻한 사람은 아니더라도 냉정하거나 매몰찬 사람은 더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목소리 톤은 낮았고, 무뚝뚝한 경상도 억양이 남아 있으며, 필요한 말이 아닌 다른 말은 절대 꺼내는 일이 없었지만 어쩐지 그런 희망 섞인 믿음이 느껴졌다. 사람에 따라서는 예고 없이 찾아온 사람을 무례하게 여길 수 있고, 사정없이 기다리게 놔두고, 예정대로 양치를 한 후에 상담을 시작할 수도 있는 거니까. 또는, 어서 양치를 하기 위해서라도 상담을 대강 빨리 끝내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얼마든지. 내용을 받아 적을 수 있도록 말의 속도를 늦추어주고, 신청서의 빈칸을 채우기 위해 다른 곳으로부터의 연락을 함께 기다려주는 느긋한 태도는 보여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 사이 그가 돌아왔다. 해정은 자기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을 뿐 그를 도와줄 수도, 그의 팔을 잡고 부축해준다거나 할 수도 없었다.

자리에 앉은 그는 해정에게 신분증을 돌려주며 말했다.

“배우자 신분증 사본은 여기 메일 주소로 일주일 안에만 보내주세요.”

그가 명함을 건넸다.

“예약 다 됐습니다. 한 달 전에 제가 연락을 드릴 겁니다. 내 년 3월이니까 2월 초쯤이겠군요. 사정이 생겨서 미룰 수도 있고 취소가 될 수도 있으니까 그때 확답을 주시면 이대로 진행하게 됩니다.”

“네.”

“궁금한 게 있으면 중간에 거기 번호로 연락 주시면 됩니다.”

“네. 감사합니다.”

그는 가볍게 목례를 했다. 그것이 다인 것 같았다. 해정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일어서지 않았다.

“안녕히 계세요.”

“네, 안녕히 가세요.”

해정이 다시 사무실 밖으로 나가는 동안 아무도 해정을 의식하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다 끝나 있었다. 출입문 근처 자리에서 글렌 굴드의 영상을 보던 여직원은 이번에는 컴퓨터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다른 무슨 일인가를 시작하고 있었다. 전화벨 소리가 짧게 끊어져 여러 번 울렸다. 낯선 곳에서도 바쁜 일상의 공기는 빠른 속도로 퍼지고 있었다.



*

결혼식이 있던 이듬해 삼 월 마지막 주는 봄도, 그렇다고 겨울이라고도 할 수 없는 계절이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발목까지 오는 패딩과 어두운 색 모직 코트를 입지 않았지만 웨딩드레스를 입기엔 쌀쌀한 날씨였다.

신랑의 하객은 백 명이 조금 안 되었고, 신부의 하객은 백 명이 조금 넘었다. 양쪽이 합쳐 이백 명이 넘었으나 더러는 자리 뒤편에 서서 결혼식을 구경했고, 또 더러는 예식 도중에 돌아가기도 하였기에 의자가 모자라지는 않았다. 주례 대신 양가 부모가 성혼선언문을 낭독했다. 신랑의 회사 동료가 사회를 맡았고, 신부의 교회 친구들이 가스펠로 축가를 대신했다. 신부가 교회에 나가지 않은 지는 꽤 되었다.

신랑과 신부는 각자 준비해온 혼인서약서를 번갈아 읽었다. 퇴장에 이어 사진 촬영, 폐백까지 모두 순조로웠다. 장소가 도서관이라는 것만 빼고는 여느 결혼식과 다를 게 없었다. 크게 어긋나거나 삐끗한 순간도 없었다. 감정이 고조되어 눈물을 흘리는 일도 없었다.

해정이 그를 본 것은 신부 입장을 위해 식장 뒤편에서 대기하던 중이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웨딩마치와 함께 아버지의 팔짱을 끼고 중앙으로 걸어 들어갈 때에는 그가 맞는지 긴가민가했지만, 신랑의 팔로 옮겨 잡으며 하객 쪽으로 뒤돌아섰을 때에는 그가 있던 곳이 너무 어두워 더욱 알아볼 수 없었지만, 그 어두운 자리에 더 어두운 형체를 가진 누군가 앉아 있다는 것과, 바로 그 옆에 세워진 기다란 무언가가 그의 목발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도서관입니다.”

민트 빛 선명한 치약의 이미지가 이토록 생생할 수 있다는 것에 해정은 조금 놀랐다. 결혼식이 있기 한 달 전 그에게서 전화를 받았을 때였다. 그의 책상 한쪽에 놓여 있던 플라스틱 컵과 칫솔. 살짝이라도 건드리기만 하면 바닥으로 떨어질 것 같은 아슬아슬한 위치.

“삼 월 마지막 주 토요일로 예약하셨지요? 식은 그대로 진행합니까?”

그는 해정에게 물었다. 예고된 질문이었다. 결혼식 한 달을 앞두고 있었고, 확인 전화가 올 것을 준비하고 있던 터였다. 그렇다고만 대답하면 이변 없이 진행될 일이었다. 그날, 그러나 해정의 심기는 그리 간단한 상태가 아니었다.

후원금 봉투를 재단 이사장 책상 위에 두고 나오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그녀가 고민했던 시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런 것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해준 사람, 사회복지재단에 기부한다고 치면 결국 좋은 일을 하는 게 아니겠느냐고 독려한 사람은 해정의 연인이었다. 해정은 반박하지 않았다. 그것이 참으로 이상한 논리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결혼을 앞두고 정규직 전환을 약속하는 말들 앞에 다른 모든 논리는 무력함을 느끼던 중이었다.

“식은 예정대로 진행하나요?”

잘 모르겠다고, 해정은 말할 수 없었다. 모든 게 어리둥절하다고, 잘못된 선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늘 따라다닐 것만 같다고, 해정은 말할 수 없었다. 잠시 뒤에 해정은 그렇다고 말했다. 통화 상이었으므로 고개를 끄덕이지 않아도, 확신에 찬 눈빛을 보이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그저 짧게 “네.”라고만 답해도 되었다. 그러고 나서 해정은 덧붙이고 싶었지만, 그가 자신을 기억하는지, 그저 예약자 명단에서 이름만 보고 전화를 한 건지 묻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기억하고 있을 리 없다. 불과 한 계절 전이었지만, 해정은 그때의 자신의 모습도 까마득했다.

하객 쪽을 바라볼 때마다 해정은 그가 있는 어둠, 주변의 어둠보다 더 짙은 어둠과 기다란 목발의 실루엣을 의식해야만 했다. 나만이 아니겠지. 나만이 아닐 거야. 늘 저 자리에 앉아 결혼식이 무사히 진행되고 있는지 지켜보는 것이 저 사람의 업무일 테니. 예식이 끝날 즈음 사람들의 박수 소리와 함께 순간의 기억은 영원 속으로 몸을 숨겼다. 그것은 지극히 순간이었다. 그를 처음 만나고 도서관을 나서던 그때, 그의 무심한 칫솔과 그 위에 붙은 채 말라버린 치약을 떠올렸던. 그 치약을 그대로 사용했을까 버리고 새로 짰을까, 하는 사소한 궁금증 따위의.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