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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3

by 강민선

일요일 오후, 이백육십한 권의 책을 계산하고 손님을 돌려보낸 참이었다.

이백육십한 권의 책의 바코드를 쉬지 않고 찍다 보면 인간이 스캐너 같고, 조금 더 찍다 보면 스캐너보다도 못한 존재처럼 느껴진다. 바코드를 읽는 것은 스캐너이지 인간이 아니니까. 같은 인간으로 태어나 누구는 바코드를 발명하고 누구는 하루 종일 그걸 찍어 금액을 확인하는 데에 시간을 보내는구나. 이런 생각을 하며 한숨 돌리던 참이었다.

다음 손님이 나타났다.

두더지 오락기처럼, 한 대 치면 어디선가 또 나타나듯이 손님은 늘 그렇게 나타났다.

이번에는 어떤 책인가, 손님의 얼굴보다 계산대에 올라온 책의 제목부터 먼저 훑으려는데 책이 없다. 고개를 들었다.

“나 모르겠어?”

그런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남자는 머리가 돈 사람처럼 빙글빙글 웃고 있었다.

모를 리가 있나.

나는 알은체 하지 않았다.



1번 계산대에서 거리가 제법 먼 3번 계산대로 자리를 옮겼는데도 남자는 용케 찾아왔다.

새로운 기분으로 한 주를 시작해야 하는 월요일이었다.

“왜 자꾸 와요? 일하는 데 방해돼요. 얼른 가요.”

남자가 어깨를 으쓱하며 나직히 대꾸했다.

“지금 일하고 있어요?”

“보면 몰라요?”

어이가 없었다.

“걱정 마요. 다른 사람들 눈에는 내가 안 보이니까.”

이건 또 무슨 소린가.

다행히도 손님이 뜸한 오전이었다. 불행한 건지도 몰랐다. 남자는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알았어. 알겠어. 근데 대체 왜 온 거야? 나한테 무슨 볼일이 남았다고?”

다짜고짜 반말을 하자 남자는 조금 놀랐다. 곧, 이제야 일이 제대로 돌아간다는 듯 거만하게 미소 지었다. 능청스럽고 뻔뻔하게. 그때 그렇게 헤어졌으면 끝이지 왜 갑자기 찾아와 말을 거는 걸까. 나에게는 상상으로만 가능했던 일이 당신에게는 이리도 자연스럽단 말인가.

“잘 살고 있었어?”

남자가 계산대 위에 비스듬히 기울며 물었다.

“잘 살고 있었어. 당신만 비켜주면 좋겠어.”

“이게 잘 살고 있는 거야? 핼쑥해진 것 좀 봐.”

“나 원래 좀 핼쑥했어.”

“하루 종일 이렇게 서서 일하는 거야? 이야, 어떻게 된 게,”

“좀 비켜줄래? 책도 안 살 거면서 왜 거기 서 있는 건지 모르겠네?”

“책!”

한숨을 짓듯 한 음절을 내뱉으면서 남자는 과장된 몸짓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 책? 이런 지옥에서 책을 사라고? 세상에. 순전히 팔아먹을 작정으로 배열해 놓은 책들을 나더러 사라고?”

“그렇게 말하니까 무능한 작가지망생 같잖아.”

“지망생이라는 말은 빼주면 안될까?”

“놀랄만한 책이라도 내 보시든가.”

“아직도 안 읽었어?”

“창피하니까 얼른 가.”

“그래도 여기가 예전엔 우리의 낙원이기도 했었는데, 많이 변했어, 그렇지?”

나는 못 들은 척 했다.

“너무 유명해진 낙원은 더 이상 낙원이 아닌데 말이야, 그렇지?”

나는 포스를 열어 돈을 세기 시작했다.

“낙원이,”

“낙원상가는 저기 인사동 쪽으로 가셔야 되거든요.”

물론 거기도 낙원이 아닌 지 오래 됐지만.

“기억 안 나? 우리 춥고 갈 데 없으면 여기 와서 카펫 바닥에 앉아 문 닫을 때까지 책 읽었던 거.”

머리로 헤아린 숫자들이 공중분해 되었다. 지폐 끝의 각을 맞추는 일은 생각할 필요가 없어서 편했다. 나는 그것을 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 피해서 몰래몰래 우리 뽀뽀했던 것도 기억 안 나?”

탁탁, 바닥에 돈뭉치를 두드렸다. 돈이 돈처럼 보이지 않았다. 가지런히 정리하고 보관해야 하는 종이뭉치에 지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것을 돈이라고 말했고, 다들 그러니까 나 같은 사람은 그런가 보구나 하면서 살고 있는 것이다.

“너무 살벌해졌어. 책 볼 자리도 없고.”

“여기는 책을 사는 곳이지 보는 곳이 아니거든!”

“살벌하네.”

“저기 안국동에 가면 도서관도 있으니까 거길 가보지 그래. 하루 종일 앉아서 책 봐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아. 공짜로 빌려갈 수도 있어. 제발 가.”

“살벌해.”

“가라니까.”

이백육십한 권을 사갔던 손님처럼 누군가가 책을 들고 나타나만 준다면 그 어느 때보다 신속하고 친절하게 계산해줄 수 있는데. 내 앞에 남자가 버티고 서 있어서인지 책을 든 손님들은 자꾸만 옆 계산대로 줄을 섰다. 계산을 많이 한다고 해서 월급을 많이 받는 것도 아닌데 나는 망연한 눈으로 그들을 좇았다. 그러다 다시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남자가 말했다.

“내가 널 도와주는 거야. 고맙지?”



“썩었어! 나쁜 놈들!”

화요일에도 찾아온 남자는 오자마자 욕을 퍼부었다.

내가 볼 땐 남자 쪽이 더 그렇게 보였지만 진심으로 화가 난 것 같아 참았다.

“나를 변태로 알잖아. 비좁은 자리에 겨우 앉아서 책 좀 보고 있는데, 글쎄 웬 여자가 자기 다리를 훔쳐봤다고 생난리를 치는 거야. 내가 눈이 삐었어? 내가 눈이 삐었냐고!”

정상은 아닐 거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대답이 길어질까 봐 참았다. 침묵으로 일관하는 게 중요했다.

“넌 내가 억울한 일을 당했는데 아무렇지도 않아? 보안직원들이 와서 신분증 내놓으라고 하질 않나, 가방 속 좀 보자고 하지를 않나. 이래도 되는 거야? 여자 말만 듣고 이래도 되는 거냐고!”

“그러게 왜 어울리지도 않게 여기 와서 책을 읽고 그래. 책도 별로 좋아하지 않으면서.”

남자의 하소연을 듣고 보니 나도 울컥하여 한다는 말이 이랬다.

“내가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아차,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

“환장하겠네. 그래, 인정해. 책을 예전처럼 좋아하진 않아. 요즘은 좀 시들해졌어. 하지만 과거 한때에는 정말 좋아했다고. 그건 너도 알아줘야 해. 그 한때가 바로 너를 만나는 동안이었으니까. 너만이 그걸 증명해줄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네가 그런 말을 하면 안 되는 거지. 너만 알고 있는 사실인데 네가 부인하면 대체 그 시절의 나는 뭐가 되는 거니?”

남자의 대답에 오만상이 찌푸려졌다. 이걸 말이라고 하는 건가 싶다가도, 말이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며, 남자가 나에게 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은 더욱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증명? 부인? 남자의 입에서 튀어나오자 졸지에 싸구려처럼 느껴졌다. 한 시절을 송두리째 못 박았던, 그것은 나의 단어였다.

“이 억울함을 대체 누구한테 호소해야 하는 거냐. 여기 사장한테 해야 하나. 여기 사장이랑 대화 좀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니? 응? 선량한 고객이 졸지에 변태 취급을 당했어. 당했다고. 나 참 어이가 없어서.”

“제발 좀!”

소리를 버럭 질렀다. 남자에게만 크게 들릴 정도여서 아무도 쳐다보지는 않았다.

“어이가 없는 건 나야. 잘 지내고 있는 나한테 갑자기 찾아와서 함부로 이래도 되는 거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너는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나는 이해 못하겠어.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선량한 고객이 여기서 변태 취급을 당한 건 유감스럽지만 오해 받을 행동을 하지 말았어야지.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오해 받을 짓을 했잖아. 네가! 오해 받을 만하다고. 너! 네 행색을 봐. 너 백수야? 거지야? 뭐야? 너 뭐니? 누구세요?”

영혼이 빠져나간 사람처럼 남자는 멍한 표정으로 굳은 채 서 있었다. 저 상태로 누가 좀 치워주면 딱 좋으련만.



다음 날 남자는 또 찾아왔다.

남자는 오자마자 비밀을 누설하듯 속삭였다.

“너 왕따지?”

“무슨 말이야?”

“바른대로 말해 봐.”

대답하지 않았다.

“왜 아무도 너랑 얘기하지 않는 거야?”

“일하는 동안에는 잡담할 수 없어.”

하는 수 없이 대답했다.

“저기서 계속 지켜보고 있었거든. 아무도 너한테 말을 걸지 않아. 손님이 없는 시간에도 자기들끼리만 얘기하고. 왜지?”

할 말이 없었다. 남자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사실도 뜨악했거니와, 남자의 말은 사실이었다. 저들은 내 이름조차 알지 못했다. 새로 들어온 사람, 그게 내 이름이었다. 왼쪽 가슴에 이름표가 달려 있는데도 새로 들어온 사람, 그렇게 불렀다. 미숙한 사람, 모르는 사람.

일하는 시간이 아니더라도 내게 말을 거는 동료는 없었다. 내가 먼저 물어보지도 않았다. 처음부터 나는 저들이 하는 것을 보고 그대로 따라만 했다.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필요한 정보는 포스 화면 우측에 부착된 인쇄물로 확인했다. 청구할인을 받을 수 있는 카드라든가, 카드의 무이자 할부 기간이라든가, 얼마 이상 구매하면 받을 수 있는 쿠폰이나 사은품의 내용 같은 것들. 사람들이 하는 질문은 복사된 인쇄물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았다.

“네가 왜 여기에 있는지 모르겠어 나는.”

남자의 탄식이 터져 나왔다.

“내가 할 소리야.”

“난 진심이야.”

“누군 농담이니?”

“여긴 우리의 낙원이기도 했지만 지금은 아니야. 잠깐 추억할 수는 있어도 이렇게 붙박여 있을 필요는 없어.”

“너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네? 낙원이나 추억 따위 생각할 겨를도 없어. 일해야 해. 돈을 벌어야 한다고.”

“하필이면 왜 여기를 골랐을까?”

갈 곳이 없다고는 대답하지 못했다.

“갈 곳이 없어?”

“아니.”

남자는 내 이마에서 무언가를 읽은 듯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너무 힘들어보여서. 그뿐이야.”

그리고는 돌아갔다.

수요일이었다.



간밤에는 잠이 오지 않았다.

깊은 밤이어서, 눈을 떠도 뜬 건지 아닌지 몰라서 몇 번이나 깜빡거리고 있는데 창밖이 훤해졌다. 누군가가 방금 귀가한 모양이었다.

얼굴을 본 적은 없지만 같은 층에 몇 세대가 같이 살고 있었다. 무슨 일들을 하는지 귀가 시간이 제각각이었다. 새벽 한 시 경에 꼬박꼬박 야식을 시켜 먹는 집도 있었다. 그때쯤이면 나도 배가 고파왔다. 저들은 케이블에서 재방송하는 개그 프로를 보며 요란하게 웃기도 했다. 어떤 날은 나도 같이 웃었다.

매일 나를 찾아오는 남자가 사실은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죽어서 육체를 벗어난 영혼이 떠돌아다니는 것이다. 노숙자 같은 차림도 그렇고, 그럼에도 전혀 냄새가 나지 않는 것과, 늘 기척 없이 찾아오는 것도.

그렇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멀쩡히 살아 있는 사람이 나를 다시 찾아오는 게 이상하다면 더 이상했다. 나를 한 번이라도 스치고 갔던 사람들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찾지 않았다. 기억하지 않았다. 한 번이라도 나를 찾았다면 만났을 것이고, 기억하고 있다면, 내가 먼저 찾았을 때 그렇게 외면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에 대해서 여러 번 꽤 깊이 생각해보았다. 왜일까. 왜 언제나 나는 지나칠까. 잊힐까.

허망한 약속의 말들을 들어본 적도 있기는 했다. 오래지 않아 단지 그들의 나쁜 버릇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았다. 어느 무렵부터 만나는 사람들은 그런 말조차 아꼈다. 허망하기 때문이다. 변하지 않을 것들만 이야기하는 사람이 좋았으므로, 그런 사람들만을 상대했으므로, 침묵하는 그들이 나는 싫지 않았다. 끝내 허망해지는 것보다, 허망한 채로 시작해서 허망 속에 숨죽여 있다가 그 허망을 떨쳐 보내는 것이 나았다. 그런데 돌아보니 그것 역시 허망했다. 그것보다 허망할 수가 없었다. 차라리 나쁜 버릇이 기억에는 오래 남았다.

허망에는 끝이 없었다. 지나고 나서야 아, 거기가 끝이었구나, 짐작해보는 것이다. 거기가 끝이 아닐 수도 있었다. 그저 짐작만 하는 것이다. 생각했던 거기보다 훨씬 전일 가능성이 크리라. 사람의 마음은 알 수 없었다. 늘 그런 채로 살았다.

딱 한 번, 제대로 끝을 본 적이 있었다. 기르던 개가 죽었을 때였다. 죽기까지 육 개월의 시간 동안 두 번의 수술과 입원을 반복했다. 이미 십오 년을 넘긴 노견이었다. 십오 년 동안이나 함께 살게 될 줄은 몰랐는데, 어쨌든 십오 년을 함께 살았으니 헤어지기는 쉽지 않았다. 죽기 하루 전에는 제 집에 머리를 박은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숨은 쉬고 있었다. 아직 따뜻했다. 수건에 덮어 병원에 데리고 갔다. 입원실에 들어갔지만 생기를 찾지는 못했다. 이제 죽겠구나, 생각하자 눈물이 나왔다. 다른 개들도 많았는데 나의 개가 가장 슬프고 안타까웠다. 개가 완전히 잠들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이별의 의식 같은 것이었다. 기억할 만한 끝이었다. 개도 나를 잊지 않을 것이 확실해 보였다. 완전히 잠든 후에도 오랫동안 따뜻했다.

개를 보내고 집에 오는 길에 남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았다. 전화를 재깍 받는 타입이 아니었다. 진동이나 무음으로 해둔 채 몸에서 떨어뜨려 놓는 일이 자주 있었다. 연락망 같은 것을 답답해했다. 그런 그를 자유롭게 내버려두는 편이었다. 하지만 그날만은 그가 내 전화를 받아주었으면, 옆에 있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문득 그래, 얘는 늘 이런 식이었지, 자기가 필요할 때만 날 찾았어, 하는 생각이 들었고, 마치 커다란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그 자리에 우뚝 서서 하늘을 향해 어서 이 관계를 끝내야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렇게 쉽게 끝낼 수 없는 게 우리의 관계여서 나는 계속해서 그에게 연락을 시도했고, 그는 그날따라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끝끝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만 둬.”

목요일 점심 무렵이었다. 그가 느닷없이 내 손목을 잡았다.

“당장 그만 둬. 여기서 바코드나 찍으면서 네 젊음을 좀 먹힐 셈이야?”

“조용히 못해?”

“누가 우리 얘길 듣기라도 할까 봐? 아무도 안 들어. 이런 이야기라면 아무도 듣지 않는다고.”

“왜 이래! 이거 놔!”

거세게 말하자 그가 손을 놓아주었다.

“알았어. 미안해.”

“난 이 일이 좋아.”

그런가, 잠깐 생각했다.

“정말 좋아?”

그런가. 나에게서도 대답을 찾지 못한 터였다. 꼭 찾아야 하나 싶기도 했다.

“다 봤어.”

그가 팔을 뻗쳐 정문 방향을 가리켰다.

“저기 가고 있는 저 사람이 네게 어떻게 했는지 다 봤다고.”

그제야 그가 왜 흥분한 채 내 손목을 잡아끌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저런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는 것도 알아. 무식하고, 무례하고, 난폭한 사람들. 반말을 지껄이고 돈을 내던지는 사람들. 널 무시하고 있어. 널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고. 책을 읽는다는 사람들이 더 심해. 책을 읽으니까. 책을 읽는 자기는 아주 똑똑하고 위대하니까. 왜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

눈물이 핑 도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그런 생각 정말 많이 했었다.

“지금 가장 무식하고, 무례하고, 난폭한 사람은 바로 너야. 왜 이러는 거야? 왜 매일같이 와서.”

“그만 둬.”

“그만 두면?”

“같이 가자.”

“어디를?”

“여기 말고.”

“그러니까 어디?”

“가면서 생각하자.”

“목적지도 없이 어딜 가자는 거야.”

“여기가 네 목적지였던 것도 아니잖아. 떠돌다가 잠시 머물렀다는 거 알아. 오래 있을 곳은 아니야. 너 하고 싶은 거 많았잖아.”

“왜 이러는 거야? 갑자기 찾아와서 이러는 이유가 뭐야?”

그가 고개를 돌렸다. 천천히, 그의 시선이 멈춘 곳을 따라가 보았다.

특별한 점은 없어 보였다. 특별한 점이라고는 그가 내 앞에 있다는 것, 그뿐이었다. 때문에 다른 계산대 앞으로 사람들이 줄을 섰고, 계산원들은 분주하게 책을 뒤집어 바코드를 찍고 있었다. 분주한 와중에도 불만을 토로하며 트집을 잡는 사람들은 어김없이 있었다. 책의 불량한 상태와 비싼 가격, 검색의 어려움, 매장 직원의 불친절함, 허울만 있고 실속은 없는 무료 서비스 등등의 것들을 하루 종일 듣고 있으면 낯빛이 흐리멍덩해지는 게 절로 느껴졌다.

다시 그를 보았다.

“너 때문이잖아. 어서 가.”

“나 때문에 좋은 거 아니야? 이렇게 쉴 수도 있고.”

“이게 쉬는 거라고 생각하니?”

“널 쉬게 해주고 싶어.”

“인생 하직하라는 소리처럼 들려.”

그가 피식 웃었다.

“그런 말이 어딨어. 근데 정말 궁금하다. 넌 하나도 반갑지 않아? 내가 이렇게 왔는데.”

“내가 좋아할 줄 알았어?”

“말은 그렇게 해도,”

그가 오랫동안 내 눈을 들여다본 후에 이어서 말했다. 이마였는지도 모른다.

“나와 같이 있는 동안에는 네가 좀 편안해 보여서 좋다. 그것만으로도 좋아. 일단은 만족해.”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말했다.

“안녕, 오늘은 이만.”



우리는 다른 연인들과 조금 달랐다. 이렇게 생각하면 조금 편했다.

그의 말대로 우리는 이곳 어느 한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몰래몰래 뽀뽀를 한 적도 있었다. 희고 가느다란 그의 손이 내 손을 만지작거리면 전기라도 통한 것처럼 온몸이 저릿했다. 그러나 그런 관능은 연인이 아니어도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우리 사이에서는 그랬다. 우리는 각자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를 즐겼고, 그 중에는 또 다른 이성도 포함되어 있었다. 다른 연인들과 조금 다른 정도가 아니라 애초에 연인이 아니었을 것이다. 아마도. 이렇게 생각하면 훨씬 편했다.

언젠가 그는 자기보다 여덟 살 어린 여자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대학 동창 모임에서 만난 까마득한 후배였다. 까마득한 후배라고 말한 건 나였다. 까마득하다는 수식을 그는 특히 좋아했다. 손에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거리감이 금기를 낳았고, 금기는 어리기만 할 뿐 별 볼일 없는 여자애에 대한 환상을 키워주었다. 그는 약간 이상한 방식으로 까마득한 여자애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백화점에 드나들며 여자애의 옷과 가방을 사주느라 그동안 모아 놓은 돈을 탕진했고, 그동안 모아 놓은 돈이라는 게 몇 군데 잡지사에서 받은 원고료가 고작이라 금세도 사라졌고, 돈 때문인지 여자 때문인지 금단현상에 버금가는 초조감을 자주 내비쳤다. 그에게서 보지 못한 모습이었다.

너 그러다 우울증 걸릴 거 같아. 이미 심각한 거 아니니?

내가 왜?

그래 보여. 요즘은 글도 안 쓰는 거지?

자꾸 다른 소리가 나오니까 안 쓰게 돼.

여자를 멀리했어야지.

그래야 했나.

가까이 하더라도,

그라면, 오로지 지성과 순결로 견고하게 쌓아올리는 것은 불가능하더라도 그라면, 손가락 끝으로도 여인의 관능을 일으켜 세우는 연애를 할 거라고 막연히 생각해왔었다. 그의 손가락은 사람의 뇌를 깨우기에 충분했다. 글을 쓰는 손가락이었으니까. 피아노 연주자가 연주를 하듯 하루 종일 노트북 앞에서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가락이었으니까. 역시 막연한 생각이었다. 막연하게도 그 까마득한, 그래서 얼굴도 모르는 여자애가 미워졌다. 세상에는 비슷한 방식으로 다루어서는 안 되는 인간이 있는 법이라고, 정 그러고 싶다면 다른 남자나 알아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두 사람의 연애는 이어졌고, 그는 취직을 했다.

우리는 몇 번인가 더 만났다.

그가 밥을 사주었다.

커피도 사주었다.

봄이었다.



내가 그를 내가 아는 것 이상으로 그를 내가 사랑했다는 것을 나는 한참이 지난 후에야, 이게 대체 무슨 소린가. 무슨 소용인가.



잠이 오지 않는다.

목요일에서 금요일로 넘어가는 이 밤이 참 길구나, 생각한다.

이렇게 밤이 오지 않는 잠에는, 아니, 잠이 오지 않는 밤에는 늘 오래전 일들이 떠오르고는 했는데, 그럴 때마다 참으로 깜짝 놀란다. 이렇게 많은 일들이, 이리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니. 그의 목소리. 통화할 때 들리던 웃음소리. 내 앞에서 자주 쓰던 표현들. 표정들. 내가 기르던 개. 지금은 죽고 없는 개의 냄새. 털을 쓰다듬었을 때의 감촉. 무슨 일이 일어났나 늘 커다랗게 응시하다가 이내 별 일 아니구나 심드렁히 내리까는 그 눈. 까만 눈망울. 이름을 부르면 다가와 내 품에 안기지는 안더라도 어딘가 근처에 있다는 기척은 늘 해주던 녀석. 그의 이름을 생각한다. 부르지 않는다.

어느 새 새벽 한 시. 옆집에 치킨이 배달되는 소리가 들린다. 기다렸나, 싶을 정도로 저 소리가 반갑다. 잠이 오지 않는 밤에는 무엇이든 반가운 법이다. 정말 그런가. 오늘만큼은 그렇게 생각한다. 잠은, 다른 것을 먼저 다 보내주고 난 후에, 오는지도 모르게 천천히 온다. 올 것이다. 오겠지.

그는 또 찾아올까. 그해 봄에 몇 번인가 만나 밥을 사주고 커피를 사주고 그 외에 특별히 기억할 만한 아무 일도 없이 헤어졌던 사람이다. 몇 번인가 내가 먼저 연락을 했다. 그는 받지 않았다. 아마도 그 까마득한 여자애와 잘 지내고 있거나 잘 못 지내고 있거나 둘 중 하나겠지, 라고 일축하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 와중에 십오 년을 함께 살았던 개도 죽고 없었다. 여러모로 힘든 시기였다. 내가 이렇게 힘든 걸 몰라서 이러나 싶어서 내가 그렇게 힘든 걸 토로한 적도 있었다. 긴 편지를 썼지만 답은 오지 않았다.

평생 작품 하나 못 쓰고 여자 가방이나 사주다 등골 휘어져라!

그냥 혼자 그러고 말았는데, 정말이지 그 후로 어디에서도 그의 글을 볼 수가 없었다. 죽었나, 궁금하기도 했지만 취직을 하였으니 죽었어도 굶어서 죽지는 않았겠지, 하고 말았다. 더 생각해서 좋을 건 없었다. 나의 저주가 통한 것일지도 몰랐다. 다니던 회사는 그만둔 건가. 대낮에 그러고 돌아다니는 걸 보면. 그만 생각하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불을 켰다. 책상 서랍을 열어 해묵은 보관함을 찾았다. 특별한 기준 없이 무조건 보관해둘만 한 것을 담아놓은 상자였다. 넣어두고 한 달만 지나도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잘 모르는, 몰라도 되는. 언젠가 누군가에게서 받은 화이트데이 사탕 상자였을 것이다. 언제였고 누구였는지 잊은 건 아니지만 부러 기억할 필요는 없는.

상자 속에서 명함 한 장을 찾았다. 한 법무법인의 상호가 금박으로 씌어 있고, 금박은 거의 바래져있었고, 그 아래 그의 이름이 희미하게 박혀 있었다. 휴대폰은 011로 시작되는 열자리의 오래전 번호였다. 금세 눈에 순응했다. 한동안 자주 사용했으니까. 아직도 사용하고 있을까. 휴대폰 따위 지금은 들고 다니지도 않을 것 같지만 나는 번호를 눌러보았다.

신호음이 오래 이어졌다. 끊으려는 차에,

“여보세요?”

잠에서 덜 깬, 나른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아무 말도 못하고 있자 저쪽에서 다시 말했다.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무슨 말이든 해야 했다. 그냥 끊으면 영원히 다시 연결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저 혹시, 박운호 씨 휴대폰 아닌가요?”

삼 초 정도의 정적. 저쪽에서 대꾸해왔다.

“누구시죠?”

여자의 목소리가 조금 팽팽해졌다.

“저는 박운호 씨 친군데요,”

저쪽으로부터의 깊은 한숨.

“너무 늦은 시간 아닌가요?”

“죄송합니다.”

“지금 자고 있어요. 내일 아침에 전해드릴게요.”

그러면서 여자는 내 이름도 묻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꿈을 꾼 건가. 너무 짧아서 살짝만 드러내면 내 인생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할 만큼의 시간이 지금 막 지나갔다.

그의 휴대폰 번호는 그대로였다. 번호는 바뀌었지만 자동으로 연결되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휴대폰의 주인은 그가 분명했다. 그의 이름은 박운호가 맞으니까. 지금 자고 있다는 여자의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는 정말 잠들어 있을까. 옆에 있기나 한 걸까. 아무래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지금 자고 있다니. 그의 실재를 확인하려는 찰나에 그가 잠들어 있다니.

이 시간에 그의 옆에 있는 여자는 누굴까. 결혼을 한 걸까. 결혼 소식은 누구에게서도 들어보지 못했다. 소식 없이 결혼했을 수도 있고, 결혼이 아닐 수도 있다. 가능성이 너무 많다. 그에 관한 소식은 그 어떤 것도 들은 바가 없다. 그때 그렇게 헤어지고 지금까지 어떤 배경이 그를 지나쳐갔는지 나는 모른다. 무엇이 그를 변화시켰는지, 어떻게 변화했는지. 그의 옆 사람은, 그때 그 까마득한 여자애일까.

내일 또 찾아올까.

기다릴 수밖에.



금요일은 오전부터 분주했다. 일찌감치 몰려온 사람들이 줄을 섰고, 열 권 스무 권씩 책을 사갔다. 어떤 책을 사는지 확인할 틈도 없었다. 뒤집어 바코드를 읽힌 책은 뒤집힌 채 봉투에 담겼다. 그나마 책의 제목을 확인하고, 이 사람은 오늘 이 책을 읽겠구나, 이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을 할까 같은 생각을 해보는 일이 나를 이 거대한 먼지 세상에서 그나마 인간으로 구분 지을 수 있는 방법이건만, 간혹 혹은 자주, 그것을 포기해야 할 때가 있다. 포기하고 그저 먼지의 자격으로 부유하는 것이 어쩌면 더 나은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점심시간이 지날 때까지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점심을 먹는 동안에는 혹시나 해서 휴대폰 통화 기록을 확인해 보았다.

꿈은 아니었다.

꿈이 아니었으니 어쩌면 그는 이제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내가 그에게 전화를 걸었기 때문에, 실재하는 그에게 다가갔기 때문에, 그 순간 그가 잠들어 있었다고 해도, 눈을 뜨면, 지금까지의 모든 일들은 물거품으로 돌아갈 것이다. 원래 그렇다. 내가 무언가에 가까이 가려 하면, 그것에 대해 자세히 알고자 하면 할수록, 그것은 저만치 물러난다. 모든 것이 그렇다. 그렇지 않은 것들의 이름을 대볼까. 생각나지 않는다. 다시 무심해질 수 있을까.

오후에는 저자 사인회가 있었다. 매장 직원들이 빠르게 움직여 자리를 마련했다. 출판사 사람들이 와서 현수막을 걸고 테이블에는 책을 진열했다. 카운터로 수백 장의 상품권이 배달되었다. 손님이 오가는 틈틈이 그것으로 허위 영수증을 만들어내야 했다. 영수증 번호가 연달아 찍혀 있으면 곤란하므로 시간차를 두고 입력해야 하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고 있는 일. 아무도 이것을 사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책은 사인회와 함께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를 것이다.

어딘가에서 그가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을 것만 같은데, 나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어딘가에 분명히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 기분으로 하루 종일 일했다. 평소보다 힘이 들어갔으나, 힘이 들지는 않았다.

내일은 토요일이고 내가 쉬는 날이다. 일요일부터 오늘까지 엿새 동안 쉬지 않고 일했다. 오늘 그를 못 보면 내일도 보지 못한다. 어제 그에게 손목을 잡힌 채 그가 이끄는 대로 갔더라면, 나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이상하게도 나는 이미 어제 그에게 손목을 잡힌 채 내가 알지 못하는 어느 곳에 가 있는 기분이다. 남아 있는 나는 나를 멀리 떠나보내고 그저 남아 있는 나일뿐이라는 생각. 그럴 수도 있을까. 그럴 수도 있다. 내가 간 그곳은 어디일까. 잠이 든 그의 꿈속일까. 그는 여전히 잠들어 있는 걸까.

퇴근 무렵, 손님의 손에 젖은 우산이 들려 있는 것을 보고 비가 오는 구나, 생각한다. 예고 없이 내린 비 때문에 집에 갈 것을 걱정하는 계산원은 없다. 카운터마다 네다섯 개의 우산이 놓여 있었다. 언제인지도 모를 만큼 오래 전에 손님들이 두고 간 것이다. 주인이 놓고 간 우산들을 보면서, 언젠가 주인 잃은 우산을 쓰고 길을 걸으면서 문득,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잃어버리는 물건과, 타인의 것을 얻거나 주워서 쓰는 물건의 양이 결국 같은 게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기쁨과 슬픔의 양이 같은 것처럼. 간혹 두 개가 만나기도 하는 것처럼. 분실물 보관함은 곧 새로운 우산들로 가득 찰 것이다.

“다음 고객님.”

책을 뒤집어 바코드를 찍고 카드로 값을 치른 뒤 봉투에 담아 건넨다.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다음 고객님.”

책을 뒤집어 바코드를 찍고 카드로 값을 치른 뒤 봉투에 담아 건넨다.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다음 고객님.”

책을 뒤집어 바코드를 찍고 카드로 값을 치른 뒤 봉투에 담아 건넨다.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근데요,”

고개를 들었다. 나와 눈을 맞춘 손님이 미소를 짓는다.

“이름이 예쁘네요. 최무아 씨.”

손님이 내 왼쪽 가슴에 달린 이름표를 살짝 가리켰다.

“감사합니다.”

“무가 무슨 뜻인가요? 안개 무? 없을 무?”

“무성할 무를 씁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