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204_pm09:14
글로 쓴 것 중에는 소설이 최고라고 생각했다. 그냥 그렇게 생각했다. 과자 중에 최고 과자나 아이스크림 중에 최고 아이스크림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글 중에 최고는 소설이었다. 대체 누구의 영향을 받은 것일까. 언제부터일까.
감상적인 문장으로 이루어진 짧은 글, 시시한 일상을 담은 글은 가장 수준이 낮은 글이라고 생각했다. 개인의 일기장에나 쓰는 거지 그걸 작품이라고 세상에 내놓는 일은 부끄러운 거라고 여겼다. 소설가가 산문집이나 여행 에세이를 쓰는 걸 마뜩찮아 했다. 작가가 가벼워 보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왜 그랬을까. 소설은 무거운 거라고 알려준 사람은 누굴까.
나이를 먹으면 점점 무거워질 거라고 생각했다. 둥둥 떠다녔던 내 안의 모든 것들이 나이를 먹으면 차차 가라앉을 거라고, 심지어 걱정도 했다. 너무 무거워져서 재밌는 일 하나 없이 시시하고 심심하기만 하면 어쩌지. 하지만 걱정보단 안심이 컸다. 어린 당시에 했던 모든 상념들이 다 하찮게 여겨질 테니 부디 어서 나이를 먹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들끓는 마음으로 고통스러운 것보다 세월을 건너뛰더라도 나이가 주는 무게감으로 잔잔하고 무던해지고 싶었다.
그리고 멋진 소설을 쓰고 싶었다. 흠잡을 것 없는. 지금껏 내가 느꼈던 소외감, 초라함, 상실감을 멋지게 날려줄.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아직’이란 말을 덧붙이고 싶지 않을 정도로 그건 내게 오지 않을 먼 별빛 같았다. 하루 최소 열 시간을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게 아니라 근무하면서) 보내고 집으로 돌아와 또 다른 세계로 빠져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집에 와서도 도서관 업무를 생각해야 하는 날이 많았으므로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소설로 써도 좋을 소재가 생각나지 않았다. 크고 멋진 계획이 세워지지 않았다.
나이를 먹어도 감정의 기복은 반복되었다. 어떤 때에는 말투나 행동이 더 어려지고 가벼워진 느낌이 들곤 한다. 예전엔 생각지도 못한 농담을 던지고 웃기는 행동을 마구 한다. 남편은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었냐고 묻는다. 나도 모르겠다고, 처음이라고 대답한다. 원래의 나는 어떤 사람일까.
이 짧은 글을 거의 매일같이 쓴 지 스무 날이 넘었다. 감상적인 문장으로 쓴 시시한 일상. 게다가 이걸 꼬박꼬박 블로그에 업로드 하고 있다. 누가 얼마나 읽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공개를 허용한 것이다. 모르는 사람들에게. 알 수 없는 사람들에게. 문득 그들에게 묻고 싶은 것이 생겼다. 이 글이 가벼운가? 감상적인 문장인가? 시시한 일상인가? 글의 무게는 어떻게 정할까? 그 저울은 누가 만들었을까?
애초에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자고 해놓고, 이게 어떤 쓸모가 있을까를 생각한다. 이게 과연 나에게 훈련이 되는지도 의문이다. 운동선수처럼 나날이 강도를 높여가며 연습해야 하는 것 아닐까. 결국 내가 쓰고 싶은 건 소설이니까. 아직도 그걸 버린 것은 아니니까. 못 버렸으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그 일이 아니고서는 어떤 일로도 보람을 느낄 것 같지 않다. 기분이 안 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