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사서함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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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07_am12:44

by 강민선


테드 창의 소설 「네 인생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컨택트>를 보고나서 자기 자신에게 묻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인생을 다 알고도 다시 살아야 한다면 그렇게 하겠는가.’


영화를 보자마자 뒤늦게 원작소설을 읽은 지 사흘이 지나가는 동안 저 질문의 답을 찾지 못했다. 이럴 수가. 예상 밖의 일이다. 영화를 감동적으로 보았으니 나의 대답은 당연히 ‘그렇다’일 것 같았는데 왜 망설이는가. 애초에 일찍 쓰려던 이 글도 그래서 점점 늦어졌다. 노트북을 열 때마다 한참을 고민한다. 고민하기 싫어서 닫아버린다.


다시 겪어도 괜찮은 슬픔은 당연히 없고, 그것을 감수해서라도 다시 겪고 싶은 기쁨 또한 아직 없다. 서른아홉인데, 아직 없다. 없다니. 하나쯤은 있어야할 것 같은데. 새삼 놀라우면서도 현재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기도 하다. 뒤를 돌아보지 않는 사람. 그냥 앞만 보고 가는 상태.


이 사실을 분명하게 인정하지 못한 것은 이것이 마치 ‘지금 행복하지 않다’는 대답 같아서일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삶 중에 그 어떤 것도 반복하고 싶지 않다는 뜻 같아서. 정말 그런가? 하고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삶을 하나하나 돌이켜보자니 그것 또한 괴로운 일이어서 생각하다 멈추고 또 생각해보다 멈추기를 반복하고 있다.


나는 굳이 시점을 미래로 바꿔본다. 그것은 내가 평소에 잘 하는 짓이기도 하다. 어느 미래에는 지금의 일상을 그리워할지도 모른다. 곁에 있던 사람들이, 가족들이, 친구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나고 난 후에는. 하지만 이 생각도 곧 멈춘다.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앉아 있어야 하는가. 지금의 이 나른하고 반복적인 일상도 언젠가는 그리울 소중한 시간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지시키기 위해 왜 비극적인 결말을 상정해야 하는가. 그걸 누가 모르냐 말이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왜 지금은 과거도 미래도 아무것도 떠올리지 못하는 걸까. 못하는 걸까 하지 않는 걸까. 한편으로는 이 모습이 과거에 내가 바랐던 미래의 나라는 생각도 든다. 박수 쳐 줄 일이다. 이만큼 변했고 이만큼 나아갔으니까. 내 과거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하나, 기억나지 않는 것이 없다. 그때가 전부 같았고, 그렇게 매달려 살았던 나 역시 부정하고 싶지 않다. 그날의 슬픔이었든, 무지였든, 오기였든, 뭐였든지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시작들이었을 테니까.


다시 한 번 물어보자.

‘지금까지의 인생을 다 알고도 다시 살아야 한다면 그렇게 하겠는가.’


조금만 더 생각할 시간을 달라. 아직은 생각할 게 너무 많고,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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