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사서함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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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6_am01:35

by 강민선


이런 일도 있었다. 한 외국인 남자가 어린이자료실에 들어오자마자 내게 곧장 와서는 어떤 책을 찾았다. 어린이자료실 내부 한쪽에는 다문화자료실이 같이 있었고 다문화자료실에는 해외원서도 있었기 때문에 의외의 이용자는 아니었는데, 문제는 그가 찾는 책이 도서관에 없었다. 그는 그 책을 꼭 찾고 싶어 했다. 체구도 크고 얼굴에 수염이 덥수룩한 백인이었다. 캐나다에서 왔다고 했다. 우리말을 조금은 알아듣는 것 같았지만 우렁찬 목소리로는 영어만 했다.


그는 돌아갈 생각도 없이 책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있느냐고 재차 물었다. 교보문고에도 가보았는데 그곳 직원이 재고가 없으니 도서관에 가보라고 안내를 했다는 거다. 교보문고 직원이 그렇게 말했다고 하니 교보문고에 가보라고 할 수도 없고, 일단 검색을 해보았다. 그가 적어준 영어 문장을 구글 창에 넣자 책 정보가 나왔다. 어? 책은 희한하게도 한국인 작가가 쓴 외국 책이었다. 원서지만 한국어로 번역된 책도 있었다. 그는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고 했다.


상황이 이 정도 되자 책의 위치를 추적해나가는 과정이 재밌기도 하고, 정말로 이 책을 책임지고 구해줘야 할 것만 같았다. 혹시나 하면서 알라딘에 접속해보았다. 검색하니 번역본 중에 중고로 올라온 게 있었다. 이런 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었구나. 내심 신기해하면서 그에게 화면을 보여주었다. “당신이 찾는 책이 여기 있다. 여기서 사면 된다.” 나는 중고 가격까지 알려주었다. 그는 갑자기 지갑을 꺼내더니 나더러 책을 사달라고 했다. “그런데 내가 지금 현금이 없다. 이곳에 ATM기는 없느냐.” 그가 물었고 나는 없다고 했다. 체구도 크고 얼굴에 수염이 덥수룩한 캐나다 남자는 큰 눈으로 말했다. “지금 돈이 없다. 회원가입을 하려면 외국인 등록증이 있어야 하는데 나는 없다. 저 책을 사 주면 다음에 돈을 주겠다.”


이럴 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했을까. 내가 유창하게 영어를 할 줄 알았다면 어땠을까. 나는 그러지 못했고, 고개를 가로 젓거나 부정적인 표정을 짓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일 텐데 그러기는 또 싫어서 알았다고 말했다. 내가 주문을 하고 책이 도착하면 연락을 줄 테니 그때 찾아오라고 했다. 그는 언제쯤 책이 오는지 물어보고는 자신의 연락처를 적어주고 만족스러워하며 돌아갔다. 나는 그 책을 주문했다.


책은 나흘 뒤에 도서관에 도착했다. 약간은 촌스러운 표지에 내용도 궁금하지 않은 책이었다. 누군가 머나먼 타국에서 서점과 도서관을 종횡무진하며 애써 찾을 만한 책인가 이게? 싶었다. 그래도 누군가 한 명은 그토록 찾았던 책이다. 나는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았다. 잠시 뒤에 한 번 더 걸어보았다. 받지 않았고, 나는 문자를 보냈다. 책이 도착했다는 내용과 금액까지. 그에게서는 어떤 답도 오지 않았다. 아직도 그 책은 도서관 한곳에 꽂혀 있다. 궁금하지도 않고 되팔 수도 없는 책인 채로.


알라딘 회원가입 화면을 보니 외국인 등록번호를 기입하는 칸 같은 건 없었다. 더 확실하게 알아보고 가입을 도와주었어도 되었을 거다. 직접 주문할 수 있도록. 더 이상은 내가 도와줄 수 없다는 것을 알렸어야 했다. 도서관 사서라고 해서 사비를 들여 책을 사줄 수는 없다. 외국인이기 때문이었나. 낯선 곳일 테니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에? 알라딘 중고 사이트에서 구할 수 있다는 정보를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참고봉사의 의무는 다한 셈이다. 그런데 왜 사주기까지 했을까. 그가 책을 찾아갈 줄 알아서였겠지. 잊어버렸을까. 책값은 안 받아도 되니 책만이라도 찾아갔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는 다시 오지 않을 것 같다. 설마 다른 도서관에서 또 그 책을 찾고 있는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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