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사서함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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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4_am01:47

by 강민선


휴관일에 도서관 가는 길. 진짜 도서관에 가는 기분이랄까. 휴관일에는 사람도 없고 전화도 없다. 회의도 없고 야근도 없다. 일하러 가는 거지만 온전히 내 일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도서관에 가는 것 같고, 온전히 내 일만 할 수 있다면 도서관 근무도 꽤 괜찮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시간이기도 하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도서관에서 긴 시간 홀로 책을 읽거나 무언가를 썼던 먼 지난날이 떠오르는 시간. 원래 나에게 도서관이란 이런 곳이었지, 생각나게 하는 시간.


예전 생각을 하면 명치 쪽이 아파오는데, 이게 그냥 기분이 그런 게 아니라 정말 통증이 느껴지는 것 같다. 홀로 견디던 많은 시간들이 한꺼번에 생각나서일까. 그렇게까지 혼자였던 적은 없었을 텐데, 잠깐이든 오래든 곁에 있어주었던 사람들에 관한 기억은 별로 없다. 생각나는 건 짧든 길든 언제나 혼자였던 시간. 혼자서 무언가를 잊으려 했던 시간. 잊지 않으려 했던 시간. 어딘가로 나아가고 싶어 했던 시간. 숨으려 했던 시간. 뭔가를 절실히 원했던 시간. 혼자서 슬퍼하고 기뻐하고 웃고 울던 내 모습.


도서관 가는 지하철 역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청소하는 아주머니를 보았다. 젖은 걸레를 네모로 접어서 에스컬레이터 벽면에 붙인 채 계단에 앉아 있으면 에스컬레이터가 자동으로 올라가면서 벽면이 닦이는 방식이었다. 저렇게 하면 계단을 오르내리지 않아도 벽면을 닦을 수 있다는 것을 눈으로만 아는 게 아니라 나는 경험으로도 알고 있었다. 나도 저걸 해봤으니까. 그때를 생각해도 가슴에 통증이 느껴진다.


늦게 들어간 대학이었고 아르바이트를 해서 학비에 보태고 싶었을 것이다. 골라도 어디서 그런 고생스러운 일을 골랐을까. 자정부터 시작해서 아침 여덟 시에 끝나는 영화관 청소 아르바이트 때문에 내 생활 리듬은 이상하게 돌아갔고 친구들도 만나기 힘들었고 오랜만에 나를 본 사람들은 왜 이렇게 얼굴이 망가졌냐며 걱정했다. 누구도 내게 그 일을 하라고 한 적도 없을뿐더러 돈을 벌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나는 뭔가에 이끌리듯, 마치 꼭 그래야 하는 것처럼 그 일을 택했고 매일 새벽마다 그 일을 했다. 지금 생각나는 것은 그것뿐이다. 내 선택이 미숙하고 어리석었다는 후회뿐이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자 차츰 편한 일을 구하기 시작했다. 세상에 편한 일이 어디 있겠냐마는 야간 청소에 비해서는 다들 괜찮았다. 자기소개서를 채우던 그 많은 이력들 중에 버리고 싶은 것들이 태반이지만 야간 청소에 비하면 괜찮았다. 처음부터 일의 기준을 낮게 잡았기 때문일까. 처음부터 나 자신을 돌보지 않았던 걸까. 스물셋 먹은 대학생이 새벽에 나가 청소를 한다는데도 엄마 아빠는 왜 한 번도 나무라거나 말리지 않았을까. 지금 생각하면 그게 참 신기하기도 하고 그만큼 사정이 어려웠을까 싶기도 하고 이 생각 저 생각이 든다.


세상에 아무 날은 없다.


오늘 떠오른 말이다. 사실 이 말은 오늘따라 아무것도 쓸 게 없어서 생각한 말이기도 하다. 아무것도 쓸 게 없으니 오늘도 공을 쳐야겠고, 이렇게 자버리면 역시 오늘도 아무 의미 없는 하루가 되어버리는 걸까 생각하다가, 그래도 세상에 아무 날은 없을 거라고, 쓸 게 없으면 다음에 쓰면 되지 뭐, 하는 약간의 타협이고 포기였다. 그런데 막상 오늘의 생각들을 적어 놓고 보니 저 말이 단지 오늘 뿐이 아니라 내가 외면하고 싶던 과거의 모든 우울한 날들까지 다 말하고 있는 것 같네.


그래, 세상에 아무 날은 없다. 한 사람이 태어나 성장하는 모든 과정들 중에 아무가 될 수 있는 것은 없다. 모든 것들이 어딘가에는 남아 있을 것이다. 불쑥불쑥 생각날 것이다. 그게 반드시 좋지는 않겠지만 꼭 좋은 것만 기억하고 살 수는 없으니까. 좋은 것만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은 아닐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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