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구구절절

7. 읽기

20170324_am01:02

by 강민선

어릴 땐 학교라는 곳에 다녔고 그곳에서는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시키면 혼자 자리에서 일어나 교과서의 일정 부분을 큰 소리로 읽어야만 했다. 선생님들은 나름의 기준으로 책을 읽을 아이를 골랐고 지목된 아이는 잘 읽든 못 읽든 어쨌든 읽었다. 누구도 “싫은데요?”라고 하지 않았다. 그랬다면 어땠을까? 싫은데요? 저 읽기 싫은데요? 저 혼자 조용히 읽고 싶은데요? 키득키득. 그런 일은 없었다. 성인이 되어서는 사람들 앞에서 뭔가를 읽는 일이 많지 않은데 간혹 그럴 일이 생기기도 한다. 도서관에서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행위야 흔하고 잦은 일이니 차치하고, 성인 여럿이 모인 곳에서 혼자 책의 일정 부분을 큰 소리로 읽는 일. 오늘 그것을 하고 왔다. 여러 도서관의 사서들이 모인 자리였다. 한 권의 책을 정해서 돌아가며 소리 내서 읽는 모임을 만들자고 어떤 사서가 주도했고 다른 사서들이 그 뜻을 따랐는데 내가 어영부영 그곳에 속하게 된 것은 ‘싫다’는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초반부터 거절을 못했고 거절할 시기를 놓쳤다. 거절할 시기가 따로 있는 게 아닌데도 왠지 놓친 기분이었다. 그렇게 생각해야 편했다. 기회를 놓쳤으니 그냥 해보자. 경험 삼아 해보자. 어쩌면 쓸 거리가 생길지도 몰라. 첫 모임은 그냥 빠졌고 오늘 두 번째 모임에 참여한 후기는 이렇다. 역시 처음부터 싫은 건 그냥 싫은 거구나. 아무리 노력해서 좋아해보려고 해도 싫은 것을 좋아할 수는 없는 거구나. 창문 없는 작고 밀폐된 공간에서 두 시간을 내리 있자니 꼭 회의실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시간이 갈수록 공기가 탁해지는 게 절로 느껴졌다. 도서관 직원 회의실에도 창문이 없다. 공기가 통하지 않아서 회의를 시작하고 한 시간이 넘어가면 숨이 막힌다. 참지 못해 중간에 나와 버린 적이 있었다. 그런 일이 있고부터는 회의 하자는 말이 가장 무서웠다. “싫은데요?”라고 말하진 못했다. 말하면? 그만 두라고 하겠지. 무엇보다 책은 역시 혼자 읽는 게 좋았다. 소리 내서 읽든, 묵독을 하든, 읽다가 생각에 잠기든, 생각의 갈래를 따라 글을 써보든 역시 혼자가 좋았다. 혼자서 할 수 있는 가장 기쁘고 충만한 일이 바로 읽고 쓰기인데 오늘 그 시간을 낭비한 것만 같았다. 시간을 낭비한 모든 일의 결과가 그렇듯 몹시 피로했다. 함께 읽은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솔직한 마음이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그것을 좋아했다면 좋았을 텐데. 아니다. 좋아하는 것을 발견할 때와 마찬가지로 싫어하는 것을 발견하는 일 또한 충분히 가치 있다. 내가 그걸 싫어한다는 사실을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가.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되짚어볼 수 있으니.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불가침 영역이 내게 있다는 것을 확인했고, 그걸 이곳에 썼으니 그걸로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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