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구구절절

29. 토론

20170421_pm05:19

by 강민선

합평이나 토론은 내게 꽤 익숙하다. 대학에 들어가서 처음으로 책을 읽고 토론하는 수업을 들었으며 심지어 각자 자신이 쓴 작품을 가지고 합평이란 것을 처음 해보았는데 그 수업에서 나는 나름대로 내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쑥스러워하거나 쭈뼛대지 않은 정도였지 정곡을 찌르는 논객까지는 못 되었다. 아니 오히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생각 없이 했던 쪽에 더 가까웠던 것 같다. 평가라는 이름으로 타인이 공들여 쓴 작품을 별 것 아닌 것으로 치부한 적도 있었다. ‘나라면’이라는 쓸데없는 단서를 붙여 가며 타인의 작품을 함부로 고치려 했던 적도 있었다. 그땐 그렇게 전투적으로 토론에 임하는 것이 열심히 하는 것이고 문학을 대하는 진지한 자세라고 여겼던 것 같다. 직설적이고 과격하기까지 한 내 성격이 그때만 드러났다. 무슨 자신감이었을까.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무지와 무식이 불러낸 공격성이었고, 그걸 알고 난 지금은 그때의 내 모습이 몹시 부끄럽다. 지금의 나라면 그런 말은 하지 않았을 텐데, 좀 더 발전적인 이야기를 했어야 되는데, 그저 상대를 깎아내리기만 한 것은 아니었는지 등등. 그때로부터 십오 년이 훌쩍 지난 어제, 나는 사서 자격으로 서울의 각 공공도서관 사서들과 함께 책에 대해 토론을 하고 왔다. 지금은 늘 조심한다. 너무 직설적이지 않게, 누굴 공격하지 말고, 겸손! 겸손하게. 그래서인지 꿀 먹은 벙어리가 되기 일쑤고, 내가 추천한 책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해 사서들을 설득시키는 데에 실패하고, 청산유수의 언변으로 책을 소개하고 변호하는 사서들을 보며 놀라기만 하고 있다. 특히 가장 놀라운 것은 앞으로 보나 뒤로 보나 참 별로인 책인데도 무시하거나 헐뜯지 않고 그 책이 지닌 장점을 최대한 이야기하는 방향으로 논리를 전개해 나가는 그들의 화법. 그 책이 도서관에서 어떻게 활용될 수 있을지, 이용자에게 어떻게 다가갈 수 있을지를 먼저 생각하는 그들의 방식. 바로 그것이었다. 딱 봐서 싫은 책은 펴기도 싫고 언급하기도 싫은 나와는 차원이 다른 사서들의 너그러움이랄까. 그런데 그게 참 따뜻하고 품위 있어 보였다. 그들은 사서였다. 괴팍하고 고독한 예술가, 평론가가 아니었다. 이십 대의 나는 어쩌면 후자를 흉내 내고 싶었던 거였는지도 모른다. 채운 건 없는데 흉내만 내려 했으니 얼마나 어설프고 요란했을까.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 나는 사서일까, 여전히 괴팍하고 고독한 예술가를 흉내 내고 싶은 지망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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