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구구절절

30. 택배

20170421_pm10:23

by 강민선

기다리던 책을 드디어 택배로 받았다. <10. 사람> 편에서 언급한 적 있는 독립출판 제작자의 책이다. 그때가 지난 3월 27일이었으니 3주가 지난 셈이다. 3주 전에 입금을 해 놓고 무던하게 기다릴 수 있었던 것은 입금 후 바로 양해 문자가 왔기도 했고 책이 무사히 잘 완성되기를 응원하는 마음도 있었다. 자꾸 물어보면 방해 되니까. 세상 누구보다 초조하고 조급해할 사람은 1인 多역을 하는 작가님 아니겠느냐고. 기다리는 나는 기분이 좋았다. 기다릴 수 있어서 좋았고 기다릴 만한 게 있어서 좋았다. 기다리면 그것이 곧 도착할 거란 사실도 좋았다. 그래서 택배 오는 소리를 가장 좋아한다는 가수도 있었는데. 이 책은 심지어 택배를 보내는 사람도 제작자다. 글을 쓰는 사람도, 디자인하는 사람도, 인쇄소에 넘기고 견본을 받아 상태를 체크하는 사람도 다 제작자다. 이것이 이 책에 특별히 정이 가는 첫 번째 이유. 두 번째 이유는 이전 제작물을 통해 이미 신뢰를 쌓았기 때문이다. 많은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그 책이 그 사람의 전부이진 않겠지만, 단 한 면을 보아도 보이는 것이 있다. 보이는 그 부분이 내 마음에 와 닿았고, 마음에 와 닿은 그 부분이 내가 지금껏 보지 못했던 세상의 문을 열게 해주었다. 너무 거창한가. 좀 거창하게 말했지만 그게 사실이다. 실제로 내 삶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지금까지 썼던 글들을 모아 편집을 하고 책으로 묶을 수 있었다. 물론 세상에 한 권밖에 없는, 앞으로도 없을 책이지만 작업을 하는 동안 즐거웠다. 책으로 묶여 나왔을 때 내 글이 과연 어떨지 객관적으로 보게 되는 계기도 되어 주었다. 두껍고 재미없구만. 그렇다면 일상적이고 가벼운 글을 써보는 건 어떨까. 그래서 쓰기 시작했다. 매일 조금씩 꾸준히. 한편의 소설을 완성하기까지는 그것이 단편이라도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한데 일상의 짧은 글은 앉은 자리에서 끝을 보는 쾌감이 있었다. 쓸 것이 많아졌고 다 쓰고 싶어졌다. 내가 원래 읽고 쓰는 것을 즐거워했었지 하는 첫 마음을 생각나게 해주었다. 언젠가는 다시 천천히 소설을 쓰고도 싶어졌다. 손가락을 길게 뻗으면 한 뼘도 채 안 되는 이 작은 책이 그렇게 했다. 언젠가 친구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흰 종이 위에 검은색 활자뿐인데 대체 이게 뭐라고 이것만으로도 인간이 여러 가지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게 너무 신기하다고.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 말을 떠올리며 그래, 글을 쓰는 건 신기한 일이야, 나도 누군가에게 여러 가지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글을 써야지,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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