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구구절절

31. 독립

20170424_pm09:42

by 강민선

요즘처럼 더할 나위 없이 핫하고 상큼하고 재기발랄한 두 글자, ‘독립’이라는 말을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익히 듣고 자랐다. 우리 아버지한테서였다. 내가 어릴 적부터 아버진 그 말을 입버릇처럼 하셨다. 아버진 오랫동안 외삼촌 가게에서 일을 봐주는 사람이었다. 외삼촌은 을지로에서 큰 도매상을 하고 있었다. 어릴 때도 그랬고 지금도 외삼촌댁하면 큰 집이 생각난다. 크고 넓고 맛있는 음식과 피아노가 있던 집. 어릴 때 잠깐 우리 네 식구가 외삼촌댁에 얹혀살았던 적이 있었다. 피아노가 있는 방이었다. 사촌 언니가 가끔 변진섭 노래를 피아노로 쳐주었다. 큰 집엔 책도 많았는데 사촌 언니가 이것저것 추천해줘서 많이 읽었다. 어떤 책을 권해주면서 이 책은 무척 슬픈 책이니 읽고 난 다음에 다 읽었다는 증거로 눈물을 담아 오라고 했던 말이 기억난다. 아마도 동화책이었는데 주인공 남자 아이가 친구를 불 속에서 구해주다가 숨지고 마는 정말 슬픈 내용이었다. 그 집에선 얼마나 살았을까. 원래는 사람이 묵는 곳이 아니었기 때문에 밤마다 사촌 언니 또는 다른 사람들이 피아노 방으로 이불을 갖다 주었다. 누우면 벽 쪽으로 켜켜이 쌓인 물건들이 코앞에 있었다. 그때 아버지 기분은 어땠을까. 얼마 뒤 우린 다시 집이 생겼지만 아버진 계속 외삼촌 가게에서 일해야 했다. 아버진 독립하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술에 취하면 가게에서 쌓인 온갖 불만을 엄마한테 다 쏟아 부었다. 아버지가 일하는 곳이 외삼촌의 가게였고 아버지의 사장은 외삼촌이었으니 엄마에게 쏟아 붓는 불만의 대상은 외삼촌, 엄마의 오빠. 엄마는 묵묵히 들어주기도 했고 같이 흉을 보기도 했고 때로는 듣기 싫어서 한소리 하다가 싸움이 나기도 했다. 내 어릴 적 기억의 79퍼센트는 비슷한 패턴으로 벌어지는 그 둘의 싸움이다. 피하려야 피할 수 없는 단칸방이었다. 아버지가 독립으로 소원 성취한 것은 그로부터 한참이 지나서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였다. 같은 을지로 모퉁이 작은 가게에 아버진 드디어 터를 잡았고 간판을 달았고 아버지만의 가게를 꾸려 장사를 시작했다. 아버진 열심히 일했다. 전 국민의 침체기였던 IMF도 새내기 사장이 된 아버지의 의욕을 무너뜨리지 못했다. 새벽에 나가서 한밤중에 들어온 아버지 때문인지, 당시 고3이었던 나 때문인지 우린 서로 만날 일이 없어서 그 당시 아버지 얼굴은 잘 생각나지 않는다. 스무 살엔 신도림 신축 아파트 단지로 이사를 갔다. 그 돈이 다 빚이었다는 건 8년이 지나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갈 때서야 알았다. 8년 동안 아버진 열심히 버텼다. 눈치 없는 두 딸의 사립대학교 등록금까지 밀리지 않고 벌었다. 엄마의 비상금까지 탈탈 털어가며 가게 운영에 온힘을 쏟았다. 비상금은 남편 모르게 꼭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엄마의 조언은 경험에서 비롯됐다. 엄마의 금쪽같은 비상금이 때로는 엉뚱하게 쓰였기 때문인데, 아버지가 친구나 친척 누구에게 얼마를 빌려줬고 얼마를 받지 못했고 그때 그걸 받았으면 지금 돈으로 얼마고 하는 이야기는 지금까지 이어지는 엄마 한탄의 주 레퍼토리다. 아파트의 추억은 잠시 뿐 불어나는 이자 빚의 무게에 눌려 우리는 다시 이사에 이사를 거듭했고, 아버지의 오랜 숙원이자 마침내 이룬 꿈이었던 을지로의 작은 가게는 2014년 1월에 문을 닫고 만다. 이 글은 아버지의 창업기이자 폐업기이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적당히 지지고 볶던 날이었는데 아버지가 뜬금없이 “오늘이 무슨 날인 줄은 알아?”하시며 씁쓸하게 웃던 표정은 잊을 수가 없다. 무슨 날인 줄 몰랐다. 곧 정리할 거란 사실은 알았지만 그날이 그날인 줄은, 그날이 아버지에게 어떤 날인 줄은 알지 못했다. 사진 한 장 남은 게 없다. 철이 좀 더 일찍 들었다면 아버지의 작은 가게, 평생소원이었던 독립을 이룬 그 가게의 풍경을 사진으로든 뭐로든 남겨뒀을 텐데. 서른이 넘어서는 서너 번쯤 가본 적이 있었다. 그랬기에 희미하게나마 가게의 이미지가, 그 안에서 재게 움직이던 환갑의 아버지가 기억에 남아 있다. 근처 식당의 돈가스가 맛있다면서 갈 때마다 꼭 시켜주셨던 것도. 구석구석 정리정돈 된 채 가득 차 있던 포장자재들, 아버지 글씨로 빼곡한 회계장부, 한쪽에는 엄마의 뜨개질로 만든 아기자기한 수세미까지. 왜 몰랐을까. 이 모든 것이 언젠가는 사라지고 말 풍경이라는 걸. 사진 한 장, 딱 한 장이라도 남겨둘걸. 이제와 불가능한 일이기에 가능하게나마 이 글로 남겨본다. 언젠가 한 줄의 기록마저도 아쉬운 날이 올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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