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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화'에 대한 몇 가지 고찰

엄마도 사람인지라. 미안하다 사랑한다.

by 워킹맘

'세상에서 제일 예쁜 아이들(?)'의 엄마로서 아낌없이 사랑을 주리라 마음먹은 어린이날의 끝은 '화'였다. 나는 하루 종일 있었던 사소한 일들로 화가 잔뜩 났고, 그냥 소리를 한번 지르면 풀리는 그런 화가 아닌 마음속에 단단히 자리 잡아 매운 고추를 먹을 때처럼 전신을 울리는 그런 화를 내며 하루를 마무리하고 말았다. 그리고 엄마의 '화'에는, 특히 아이들에 대한 엄마의 '화'에는 몇 가지 패턴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1. 엄마의 '화'는 아이들이 '잘못할 때'가 아닌 아이들이 '엄마의 마음처럼 되지 않을 때' 발생한다.


어제의 상황은 이러했다. 오전에 언니와 조카들이 집에 놀러 왔다. 평소에도 조카들과 우리 아이들이 잘 놀기에 언니와 수다 보따리를 가볍게 풀면서 "얘들아~ 너희들은 놀아라" 하며 소파에 우아하게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평소와 달리 큰 아이가 자기와 놀자며 이방 저 방으로 나를 불러댔다. 그리고 이를 수상하게 여긴 둘째가 언니를 쫓아오면서 두 자매가 서로 "엄마는 내 거야~"라며 실랑이하는 상황이 시작됐다. 큰 아이는 결국 가지고 놀던 비즈아트 장난감이 엎어지면서 떼를 쓰기에 이르렀다. 아이들을 조카들과 놀리고 언니와 근황 토크를 하려던 나의 첫 번째 계획이 미스가 나며 약간의 짜증이 몰려오는 순간이었다.


두 번째 계획은, 오후에 백화점에 가서 아이들 장난감을 사주고 나도 몇 가지 쇼핑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둘째는 가기도 전에 잠들어 버렸고, 원하는 장난감을 손에 쥔 큰 아이는 빨리 집에 가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싶은 욕구와 장난감 쇼핑으로 인한 피로감으로 발을 질질 끌며 더 이상의 쇼핑을 거부했다. 아이의 '이기적인' 태도에 나는 분개했지만, 피곤해하는 아이를 어쩔 수 없어 번쩍 들어 안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나는 사소한 쇼핑조차 할 수 없는 나의 처지에 분노하며 씩씩거리기 시작했다.

자, 이 상황에서 아이들이 잘못한 게 무엇인가. 사실 없다. 아이들끼리 놀리고 잠깐의 휴식을 취하려고 했던 계획과 아이들을 데리고 쇼핑을 하고자 했던 나의 계획이 좌절되었을 뿐이다. 조카들과 함께 놀기보다는 엄마와 놀고 싶었던 아이들의 마음을 잘못된 것이라 할 수 없으며, 엄마가 쇼핑하고 싶은데 안 따라와 준다고 해서 이기적이라고 비난할 수도 없다. 결국 나는 당초에 내가 독단적으로 짠 계획에 아이들이 따라와 주지 않자 화가 난 것이다.


나의 어린 시절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위법'한 행동이 아니고서야, 어떤 아이가 '잘못'된 행동을 했다고 부를만한 일은 사실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아주 어릴 때는 행동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니 화를 내기보다는 가르쳐줄 수 있을 뿐이고, 조금 커서는 밥을 잘 안 먹든 공부를 못하든 인사를 안 하든 아이가 공부를 잘하고 인사를 잘하고 밥을 잘 먹었으면 하는 엄마의 마음처럼 되지 않아서 엄마는 화가 나는 것이다. 만약 정말 아이들이 심각하게 잘못된 행동을 했다면, 엄마의 마음속에는 화보다는 걱정과 두려움이 앞서게 될 것이다.

2. 엄마의 '화'는 엄마의 체력 상태에 반비례한다.

나는 어제 이미 체력적으로 지친 상태였다. 전주에 연휴를 앞두고 업무도 많았을뿐더러 그 전주 주말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근교로 여행도 다녀오고, 연휴에는 세종시에 있는 시댁에도 다녀오는 등 계속해서 풀로 가득 찬 스케줄을 소화했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놀자고 매달려도 제대로 놀아줄 수 없었고, 조금만 내 뜻대로 안 돼도 짜증이 몰려왔다. 누군가 몸과 마음은 하나라고 했던가, 강인한 체력이 좋은 엄마를 만든다.

3. 엄마의 '화'는 엄마의 감정 표출일 뿐 아이에게 어떠한 긍정적인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화내는 엄마의 보습을 보고 아이가 진정으로 뉘우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아직 어려서 그런지 우리 딸들은 내가 화를 내면, '엄마가 왜 저러지'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언성이 조금 높다 싶으면 무서운지 바닥을 보고 있거나 도망갈 때도 있다. 결국 화를 가라앉히고 아이에게 엄마가 왜 화를 냈는지, 앞으로 어떻게 행동했으면 좋겠는지 설명해주면 그때서야 약간의 듣는 척을 할 뿐이다.


4. 엄마는 '화'를 낸 후 몰려오는 죄책감에 두 번 괴롭다.

아이들에게 화를 내고 난 후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 화를 낸 이후에 죄책감이 밀려오기 때문이다. 내가 화를 냈을 때 아이의 표정이 생생하게 떠오르고 나의 화로 인해 아이가 엄마를 미워하거나, 성격 형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까 봐 걱정이 된다. 혹시 내가 화를 낸 행동을 아이가 하게 된 계기가 나한테 있지는 않은지 곱씹고 또 곱씹어 본다. 자식을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 이런 뜻이었을까. 아이에게 화를 내는 것은 이렇게 엄마 스스로가 아픈 일이다.

5. 엄마의 '화'는 결국 풀린다.

자기 배 아파 낳은 자식이다. 내 뜻대로 되건 내 뜻대로 되지 않건 이 아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엄마도 인간인지라 화가 날 때도 있지만, 엄마에게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조금 주면 엄마는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물론 주변 인물(대표적으로, 남편)이 옆에서 잔소리로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다.


결국, 엄마 '화'에 대한 장고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화내 봤자 나만 손해니 미리미리 체력관리를 잘하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주 이상적이기는 하지만, 화가 날 때는 아이에게 바로 표출하기보다는 약간의 시간을 가지는 게 좋을 것 같다. 그 사이에 생각도 정리가 되고 아이에게 전달해야 할 메시지가 있다면 보다 명확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덧붙여 내가 내 자식에게 화낼 때마다 이렇게 괴로울 줄 알았더라면, 때때로 내게 화를 냈던 우리 엄마에게 조금 더 잘해드릴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좋은 엄마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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