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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킹맘 Jun 01. 2020

결혼이 무슨죄야..

결혼은 팀플레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시대의 흐름이 그런지 내가 전문직이라서 그런지 내 주변에는 미혼여성이 많은 편이다. 이미 아이도 낳고 다소 안정적인 결혼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나로써는 누군가가 '결혼'이 어떻냐고 묻는다면 썩 괜찮다고 대답하는 편인데, 어느 날은 질문을 했던 여자분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진짜요? 다른 사람들은 다 말리던데.. "


결혼 후 지인들과의 모임을 가질 때도 이런 종류의 대화는 쉽게 오고간다. 특히 결혼을 앞둔 친구가 청첩장을 나눠주기 위해 모인 경우에는 다들 측은한 눈으로 그 친구를 바라보며, 특히 남자들끼리는 "너도 이제 고생좀 하겠구나..최대한 늦게가지"라며 예비신랑에게 막말(?)을 서슴치 않는 걸 보았다. 결혼이라는 제도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글들이 난무하는 이 시대, 도대체 뭐가 잘못된건지..


곰곰히 생각해보면 결혼은 계약이다. 보다 상세히 살펴보면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팀플레이'를 하겠다는 내용의 계약이다. 누군가와 연애를 할 수도, 사랑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그 모든 사람과 결혼하지 않는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지만, 사랑이 반드시 결혼을, 결혼이 반드시 사랑을 뜻하지 않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결혼'계약'에서, 다소 덜 중요한 조건들을 모조리 날려버리고 나면 딱 두 가지 쌍방 의무가 남는다. 첫째는 독점적인 애정관계를 서로에게 약속하는 것이고, 둘째는 각자의 인생에 있어서 배우자와 함께 팀플레이하겠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람을 피우는 것도, 결혼생활을 유지하면서 배우자를 고려하지 않은채 제 멋대로 인생의 결정을 내리는 것도 모두 결혼계약에 위반하는 행위이다.


다행히도 우리는 이 결혼이라는 계약의 상대방을 내가 직접 고를 수 있다. 물론 부모님이 정해주는 사람과 결혼하던 그런 시대도 있었지만, 적어도 현대 사회에 있어서는 본인이 스스로 배우자를 결정한다. 배우자를 결정하는 것을 나는 흔히 추락하는 비행기에서 무인도에 뛰어내릴 때 함께할 사람을 고르는 것으로 비유하는데, 이때 잘생긴 사람을 고를 수도 있고, 돈이 많은 사람을 고를수도 있으며, 대다수의 사람이 하는 것처럼 계약 체결당시 가장 사랑하는 사람으로 고를수도 있다. 그렇게 골라서 결혼을 하고 나면 저 아래 무인도로 떨어졌을 때 그 사람과 어떻게 고립을 극복해가야할 지의 문제가 시작되는데, 결혼의 승패를 결정짓는 요소는 이제부터 시작인 셈이다. 안타깝지만 누구를 골라도 인생이라는 무인도에 떨어진 이상 항상 완벽하게 편안한 그런 상황은 도래하지 않는다.  나와 함께 어려움을 잘 견디고, 위기를 잘 극복하며, 언젠가 탈출에 성공했을 때 함께 기쁨을 만끽할 수 있는 사람을 골라서 씩씩하게 헤쳐나가는 길만이 있을 뿐이다.


변호사로서 일을 하다보면 대체적으로 나쁜 계약은 없다. 고리대금업자와의 계약이나 노예계약같이 뉴스에 나올법한 무시무시한 계약들은 제외하고, 정상적인 절차를 걸쳐 체결된 계약들은 내용이 조금 엉성하거나, 다소 일방에게 불리한 조항이 있더라도 큰 틀에서 말이 된다. 하지만 이러한 계약들이 일방 당사자에 의해 불이행되거나, 본래의 의도와 달리 악용될 때 분쟁이 발생한다. 결국 나쁜 계약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쁜 계약당사자들만이 존재하는 셈이다. 나는 결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일생에 있어 한 사람을 사랑하며, 홀로 견디기 지 않은 인생에서 그 사람을 동반자로써 맞이하고 때로는 어깨를 내어주고, 때로는 배우자의 어깨에 기대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게 어떻게 나쁠 수 있을까. 결혼의 유일한 단점은 결혼을 한 이상 더이상 결혼하지 않은 것처럼 살 수 없다는 것, 그것 하나일 뿐이다.


결혼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한번 생각해보라고 권해보고 싶다. 무인도에 홀로 있는 것보다는 둘이 있는게 낫지않냐고. 허기를 채우기 위해 바나나를 딸때도, 낚시를 할때도 캄캄한 밤에 나뭇잎을 베고 잠들어야 할 때도 홀로 있는 것보다는 둘이 있는게 낫지 않냐고. 당연히 편안한 집에서 혼자 발닦고 누워있을때보다는 불편하겠지만 인생은 살다보면 별의별일이 다 있고 어떻게 될지 모르니 거기다 비교하는 것은 좀 그렇지 않냐고. 그러다 내가 사랑했고 정들었고 이젠 의리마저 생겨버린 그 사람을 꼭 닮은 아이를 낳아 함께 키우며 그 아이가 자라나는 것을 함께 보는 것도 썩 괜찮지 않냐고 말이다.


주말에 아이둘울 데리고 긴시간 지하철을 타고 지인의 결혼식에 갔었다. 한창을 걸었고 땀도 났고 아이를 안아서 어깨도 아팠고, 구두를 신어서 발도 아팠다. 주말에도 일이 있어 처음부터 함께오지 못했던 남편이 빨리 데리러오기만을 간절히 바랬다. 시간이 지나 점점 지쳐가던 내 앞에 남편이 짠하고 나타나 둘째를 척 하고 안아들었을때, 연애할 때도 좀처럼 비치지 않았던 후광이 비쳤다. 결혼도 서로 성실히 이행만 해준다면 결코 나쁜 제도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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