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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미정 Nov 16. 2023

폴란드 자코파네에서, 중학교 친구와 하이킹을

우리가 변했구나

주연이를 다시 만난 건 아마도 8년 만이었다.


크라쿠프 기차역에서 다시 만난 주연이는 반은 그대로였고, 반은 변해있었다. 귀여운 얼굴, 나이에 맞지 않는 뽀얀 피부는 그대로였고, 덥수룩한 헤어스타일과 펑퍼짐한 바지, 머리부터 엉덩이 넘어까지 되는 커다란 배낭차림의 모습은 이전의 이미지와 무척 달랐다. 아마도 이건 4개월째 여행 중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녀의 수줍은 웃음과 목소리 역시 그대로였다. 그녀의 핸드폰이 방전되어 전화로는 연락이 안 닿았었고, 플랫폼의 다른 계단을 오르내리던 우리는 잠시 엇갈렸지만, 아래층의 두 계단이 만나는 곳에서 우리는 마주쳤다. 주연아!! 반갑게 끌어안는데 잠시 눈물이 왈칵 맺혔다. 너무 오랜만이어서, 여기서 이렇게 만나는 것이 감격스러워서, 너무 큰 배낭을 메고 여행 중인 그녀가 너무 멋지고, 한편으로 고생했겠다 싶어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녀도 웃으며 붉어진 눈을 비볐다.


그녀의 짐을 나누어 들었다. 60리터짜리 대형 배낭 말고도 에코백과 묵직한 종이백이 있었다. 그날 밤에 알았지만 그 묵직한 종이백에는 모두 나와 우리 아이들을 위한 선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미국의 조카에게 조언을 얻어 샀다는 예쁜 귀걸이 스티커와 팔찌, 새언니가 추천해 줘서 샀다는 날 위한 화장품, 핀란드에서 맛있다는 초콜릿, 무민이 그려져 있는 예쁜 컵 두 개, 한국에서 아이들에게 핫하다는 산리오 캐릭터 수첩과 보석 십자수... 배낭 여행자가 이 많은 선물을 들고 다니는 것도 너무 수고스러울 텐데, 심지여 몇 달 전 여행을 시작한 한국에서부터 들고 온 선물들까지 있다니... 나라면 꿈도 못 꿨을 일이다. '착한' 주연이. 넌 정말 그대로구나.


배낭을 메고 3개월째 여행 중이었던 주연이


주연이는 중학교 2학년이 시작된 첫날, 짝꿍으로 처음 만났다. 그 당시는 학생들을 키 순서대로 쭉 세워놓고 1번부터 번호를 매겼다. 그게 1년 동안 나를 따라다닐 출석번호였다. 지금이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학생이 무척 많았던 그때는 한 반에 47명~48명 정도 있었고, 주연이는 42번, 나는 43번이었다. 1 분단 맨 뒷줄이었다. 주연이는 말수가 적었고, 수줍음이 많았고, 어떤 이야기에도 잘 웃어주었다. 늘 잘 맞춰주었고, "나는 다 좋아" "너 좋은 대로"라는 말을 많이 했다. 내가 어렸을 때는 가정의 불화와 어려움 등으로 도시락을 종종 싸가지 못할 때도 있었는데, 그때면 그저 조용히 "같이 먹자"라며 자기 도시락을 내어주던 친구였다.


내가 중학교 3학년 때 일본으로 가게 된 후 어른이 되어서까지 한참을 못 보다가 서른 즈음에 다시 만나게 된 친구는 예전 그대로였다. 여전히 조용하고 배려하고 맞춰주는 친구였다. 카우치 서핑이라는 것을 통해 핀란드의 가정에 머물며 여행을 하고 왔다고 했고, 실연의 아픔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 후 종종 만나 데이트를 즐겼지만 내가 좀 더 멀리 이사를 가고, 임신 출산 육아의 세계에 들어온 이후로는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서로의 생일이 되면 생각이 나서 카톡으로 안부를 주고받았다. 주연이의 생일은 9월 6일인데, 폴란드에 오게 된 작년 9월 6일에도 친구 생각이 나서 생일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돌아온 답장에는 아버지가 폐암 4기 진단을 받아서 부모님 댁에 내려가 지내고 있다고 했다. 언젠가 유럽에서 같이 만날 날을 꿈꿔보자며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12월에 다시 연락이 와서는 아버지가 하늘나라에 가셨다며 기도해 줘서 고맙다고 했다.


그러다 봄에 다시 연락이 왔다. 그동안 쌓인 마일리지로 6개 나라를 여행할 수 있게 되었고, 후원하던 아동을 만나기 위해 인도네시아를 시작으로, 미국과 유럽을 돌고 아빠와 함께 가보려고 계획했던 아프리카 보츠와나까지 갈 예정이라고 했다. 유럽에 올 때 나를 잠깐 볼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나 너네 집에 놀러 가도 돼?"라고 하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늘 배려하는 그녀답게 "토요일부터 월요일까지, 미정이 편한 시간에 틈날 때마다 보는 거 어때? 브로츠와프 시내 쪽에 숙소를 잡아두려 하는데, 미정이네 동네 알려주면 가깝게 잡아볼게!"라고 했다.


나는 나를 만나러 와주는 것만으로도 이미 반갑고 고마웠다. 시간도 짧으니 괜찮다면 우리 집에 묵어줬으면 좋겠고, 더 있다가 가도 좋다고 했다. 다행히 그녀는 미안해하면서도 그렇게 하겠다고 했고, 하루를 더 묵기로 했다. 거절하지 않고 수락해 준 친구에게 고마웠다.


바쁜 일상을 지내다 보니, 까마득히 멀 것만 같았던 7월 말이 다가왔다. 남편이 친구 오는데 어디 여행이라도 가야 하지 않겠냐고 말해줬다. 아이들 보고 있을 테니 주말에 크라쿠프나 자코파네에 다녀오라고 했다. 나는 두 아이를 맡기고 가기가 미안해서 먼저 얘기를 못 꺼내고 있었는데 남편이 먼저 선뜻 먼저 이야기해 주어 정말 고마웠다. 문제는, 주연이에게 여행 가고 싶은지 물어봤을 때 또 우리 가족을 먼저 배려하느라 "나는 안 가도 괜찮아"라고 말한다면, 그 진심을 어떻게 파악하고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였다. 하지만 주연이는 변해 있었다. "남편 분께 죄송하지만... 너가 괜찮으면 난 좋아!"라고 배려의 마음과 더불어 명확한 답변을 주었다. 내가 아는 주연이로서는 큰 변화였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크라쿠프 기차역에서 만나게 된 것이었다.


크라쿠프는 바르샤바로 폴란드의 도시가 이전하기 전 수도로, 옛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정말 멋진 도시다. 자코파네는 동유럽의 알프스라고도 불리는 곳이고, 산 정상에 가면 폴란드인의 영혼의 안식처라 불리는 맑고 깊은 호수가 있다. 크라쿠프는 가봤지만, 자코파네는 아이들과 함께는 엄두도 못 낼 곳이어서 아직 못 가봤던 곳이었다. 주연이도 가고 싶다고 해서 그렇게 우리는 크라쿠프 기차역에서 만나게 된 것이었다.


무거운 주연이의 배낭과 선물꾸러미를 숙소에 풀어놓고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선선한 여름휴가철이어서인지, 크라쿠프 중심 광장에는 정말 많은 관광객들이 있었다. 하지만 광장이 워낙 커서 이 많은 사람들이 몰려도 전혀 붐비는 느낌이 아니었다. 중앙시장, 성모마리아 성당, 구시청사, 직물회관 등을 끼고 있는 이곳 광장은 유럽 중세시대의 최대규모 광장이다. 다른 대부분의 도시와 달리 세계대전 때에도 파손되지 않았던 크라쿠프의 중세시대 건축물은 여전히 그 고고한 자태로 역사를 말해준다. 우리는 시간여행을 하듯 중세시대 광장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그곳을 함께 거닐었다. 기나긴 이야기를 나누며 맛있게 저녁을 먹고, 해가 저물어 풍경이 달라진 밤거리를 다시 걷다가 칵테일을 한 잔씩 했다. 둘 다 술맛은 잘 모르지만, 이렇게 멋진 곳에서 이

렇게 오랜만에 만나 이 분위기를 즐기고 싶었다.


크라쿠프 광장의 모습


우리의 메인은 사실 다음 날 있을 자코파네 호수로 하이킹하는 것이기에 너무 늦지 않게 돌아와 숙소에서 잠을 청했다. 어른이 되어서도 종종 만나긴 했지만, 같은 방을 쓰고 같이 잠을 자는 것은 처음이다. 앤틱한 작은 방에서 조금 삐걱 거리는 나무 침대에 나란히 누워 친구와 자기 전까지 수다를 떨다가 잠을 자니, 뭔가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다. 더욱이나 최근 6년 넘게 아이들을 재우다 지쳐 늘 힘겹게 잠들었던 나로서는 정말 동화 속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다음 날 우리는 8시쯤, 호텔의 간단한 조식을 먹은 후 내 차를 타고 자코파네로 출발했다. 자코파네 근처에 다다르자 폴란드의 다른 지역에서는 보지 못했던 높은 산들과 산자락에 자리 잡은 예쁜 마을들이 눈에 띈다. 폴란드에서는 늘 평지만 달렸었는데, 언덕을 오르락내리락 굽이굽이 펼쳐진 길을 달리며 그 예쁜 풍경을 바라보았다. 스위스에서 많이 봤던 풍경과 비슷했다. 아, 그래서 이곳을 동유럽의 알프스라고 하는구나.


우리의 목적지인 산속에 들어오자 국경을 넘나들며 체코로 넘어갔다가 폴란드로 다시 돌아와 등산로 입구의 주차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냥 걸어서 국경을 오갈 수 있는 이곳, 그런 유럽에 산 지 1년 반이 되었지만 아직도 참 신기하다.


주차장에서도 한참 떨어진 곳에 입구가 있었다. 우리는 입장권을 사고, 마차를 탈지 말지 고민했다. 호수까지 가려면 2시간 30분 정도를 걸어서 올라가야 하는데, 여러 명을 싣고 올라가는 마차를 탈 수도 있다. 마차의 가격은 한 사람당 90 즈워티(한화 2만 7천 원 정도), 시간은 1시간 반 정도 걸린다고 했다. 고생을 줄여준다면야 그 정도는 지불할 수 있지만 우리는 이 청량한 공기 속을,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두 발로 걷고 싶었다. 혹시 힘이 들면 내려올 때 타기로 하고 우리는 기분 좋게 걷기 시작했다.


모르스키에 오코 호수를 향해 올라가는 길


날이 흐리고 비예보가 있어서 조금 걱정했는데, 적당히 구름이 덮이고 비는 오지 않아서 오히려 딱 좋은 날씨였다. 올라갈수록 공기가 차가워졌는데 힘겨운 등산으로 높아진 체온을 딱 맞게 식혀주었다. 덥지도 춥지도 않고 해에 탈 걱정도 없는, 우리의 하이킹을 위한 날씨였다. 주연이를 만나지 못한 동안 내가 아이 키우고, 대학원 다니고, 작업실을 열었던 이야기, 그리고 주연이가 아버지의 투병생활에 함께 했던 이야기, 지난 넉 달 동안의 여행이야기, 앞으로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니, 우리는 금세 호수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산장처럼 생긴 레스토랑이 있었고, 울타리 앞에서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진 찍는 모습이 보였다. 앗 바로 여기구나! 나는 "나 눈 가리고 갈래!"라며 두 손으로 앞을 가렸다. 친구는 웃었다. 이런 풍경은 한 걸음씩 걸어가면서 야금야금 순차적으로 나타나는 것보다, 한 순간에 통째로 눈앞에 짠! 하고 펼쳐지는 것이 더 감동적이다. 앞을 가리고 고개를 숙여 발끝만 보고 걸었다. 근처에 다다랐을 때 나는 더 이상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앞을 봤다. 우와, 이렇게 깊고 진한 청록색의 호수. 그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바위산과 아직 남아있는 눈, 산 위로 하얀 구름들.. 이 풍경을 보자마자 이곳을 '영혼의 안식처'라고 한다는 게 바로 이해됐다. 호수의 끝자락은 돌과 흙, 나뭇가지조차 다 보일만큼 무척이나 맑고 깨끗한데, 이 호수의 빛은 수심을 알 수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깊은 빛을 지닌다. 어떨 때는 검게도 보이는 이 짙은 청록빛에 마음이 풍덩 빠지는 느낌이다. 그 깊고 짙은 미지의 호수는 우리 인생의 고통의 깊이를 다 알고 받아줄 것 같다. 이 맑고 깊은 물에서 메마른 영혼이 정화될 것 같다.


처음 마주한 호수 앞에서 감격한 우리


옆길을 따라 조금 더 내려가면 참방참방한 호숫가에 다다를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물 위의 돌이나 바위에 올라서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다. 우리도 멋진 배경으로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조금 한적한 곳으로 자리를 옮겨 호수 바로 앞 작은 바위에 걸터앉았다. 눈앞에 한 오리가 헤엄을 치고 있었다. 이런 곳에 살다니, 너 참 행복한 오리다. 주연이와 나는 그 경치를 바라보며, 와 좋다... 만 연발하다가 말없이 한참 동안 호수를 바라보며 앉아있었다. 한 방울씩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얇은 겉옷을 꺼내 입고 비를 맞으며 계속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짙은 청록색의 호수 위로 가녀린 빗방울들이 차례로 떨어지며 아주 작은 물결을 일으키고 있는 모습이 정말 예뻤다. 주연이와 함께 이 호수를 마주한 것도 감동인데 이곳에서 내가 좋아하는 비를 맞으며 이런 잔잔한 풍경을 마음속에 담을 수 있다니. 우리는 침묵 속에서 그 조용한 행복을 만끽했다.


올라가느라 허기졌던 우리는 산장의 레스토랑에서 따끈한 수프와 핫도그를 맛있게 먹었다. 따뜻한 카푸치노도 마셨다. 엄청난 절경을 눈앞에 두고 마시는 커피는 정말 이루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그때 나는 세상에 더 바랄 것이 없는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된다. 집에 돌아갈 때 네 시간 반이나 걸리기 때문에 늦지 않게 내려갔어야 했는데, 한없이 호수를 바라보다가 시간이 많이 지체됐다. 물론 알면서도 그 호수에서 눈을 뗄 수 없었건 것이지만. 서둘러 가려고 하는데도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뒤돌아서 호수를 한 번 더 보고, 뒷걸음으로 가면서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바라봤다.


빗방울이 떨어지던 호수와 산장에서 바라본 호수


30분 정도 내려오니 아까 올라올 때 봤던 마차들이 기다리고 있다. 시간도 아껴야 하니 이번엔 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심지어 내려가는 마차의 가격은 50 즈워티(한화 만 오천 원 정도), 올라올 때의 거의 절반 값이다. "우와 합리적인데!"라고 하며 우리는 기분 좋게 마차에 올랐다. 마차에 오르자 갑자기 빗방울이 후드득후드득 떨어지기 시작했다. "타길 잘했다!" 여행할 때 모든 것이 착착 맞아떨어지면 더욱 기분이 좋다. 내려가는 마차는 올라올 때보다 훨씬 빨랐다. 두 말들은 착착 착착 발을 맞춰가며 속도감 있게 리듬을 타고 내려갔다. 조금 지나자 거센 비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다행히 마차 위에 천막이 있어서 비를 맞지 않았다. 하지만 바람이 불어와 무척 추웠다. 걸어서 내려가는 사람들은 갑자기 몰아치는 비바람에 당황해했다. 누군가는 커다란 나무 밑에서 비가 그치길 기다렸고, 누군가는 아기를 태운 유모차의 방수 커버를 씌우고, 그리고 대부분은 비에 다 젖은 채 빠른 걸음으로 내려갔다. 마차에 타고 있는 것이 미안해질 만큼 춥고 힘들어 보였다. 그리고 한편으로 '마차를 타서 정말 다행이다' 생각하며 안도했다. 2시간 반 만에 올라갔던 길을, 30분 만에, 비 맞지 않고 내려올 수 있었다.


우리는 자코파네 마을 중심가에 가서 따뜻한 핫초코와 차로 몸을 녹였다. 그리고 오늘을 기억하게 위해 우리가 갔던 호수 모르스키에 오코(Morskie Oko)가 그려져 있는 마그넷을 샀다. 우리가 마을에 도착하자 때맞춰 비도 멈추고 다시 해가 나기 시작했다. 산속 마을같이 아기자기한 중심가도 너무 예뻐서 더 머물고 싶었지만, 나는 밤눈이 어두워 캄캄해지기 전에 출발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내일 아침에 나는 다시 새벽같이 일어나 도시락을 싸서 아이들을 보내야 하고, 바로 출발해서 달려도 자정을 훌쩍 넘길 시간이었다.


아기자기한 숲속마을 자코파네


아쉬움을 뒤로 한채 우리는 다시 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자코파네 마을을 빠져나오는데, 비구름 사이로 노을이 비치고 있었다. "어쩌면 무지개를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내가 말했다. 폴란드는 어딜 가도 드넓게 하늘이 보여서인지, 비가 온 후 개면 무지개를 꽤 자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조금 달리자 예쁜 무지개가 지면에서 구름까지 예쁜 곡선으로 뻗어있었다. 반쪽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았고 반 만 보여서 마치 하늘로 올라가는 사다리같이 보였다. 노을에 비친 무지개니 좀 더 핑크빛을 내어서 더 예뻤다. 동화 속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무지개 사다리다. 자세히 보니 쌍무지개였다. 나는 친구에게 폴란드의 무지개를 보여줄 수 있어서 뿌듯했다. 몇 년 만에 만난 주연이와 여행하며 이런 무지개를 볼 수 있다니!  우리의 오늘 여행, 정말 완벽했어!


비가 갠 후 노을에 비친 무지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우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연이와 함께 했던 중학교 시절, 내가 집에서 겪었던 가정불화, 가정폭력을 겪으며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빠의 술주정에 밤새 시달리고 학교에 가서 쉬는 시간에 잠만 잘 수밖에 없었던 사연, 우리가 도서관에 오갈 때 주연이 어머니가 차로 같이 태워다 주셔서 너무 좋았고 부러웠던 기억, 도시락을 싸가지 못할 때 같이 먹자며 스윽 내밀어주었던 주연이에게 고마웠다는 이야기까지. 주연이는 당시에는 나의 상황을 짐작만 했을 뿐 잘 몰랐다고 했다. 내가 일부러 나를 감추려 한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그 얘길 듣고 보니, 아마 나도 어린 마음에 부끄러운 것들을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겠구나 싶었다.


주연이와 함께 한 풍경들


주연이와 우리 집으로 와서 남은 며칠 동안 아이들과도 즐겁게 놀고, 산책도 가고, 책방도 가고, 시내 나들이도 하며 따뜻한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에게 잘 맞춰주고 잘 놀아주는 주연이를 우리 아이들은 금방 좋아하게 되었고, 가는 날이 되자 무척 슬퍼하며 꼭 끌어안고 놓아주지 않았다. 주연이는 다시 자기 키만 한 커다란 배낭을 메고 오스트리아를 향해 밤기차로 돌아갔다. 다음 날 아침, 친구가 읽었던 내 책을 책상에 올려두고 가서 쓱 펼쳐보았다. 그러자 엽서가 하나 툭 떨어졌다. 작고 예쁜 손글씨. 친구가 남기고 간 엽서였다. '넌 정말 편지도 너답게 남기고 가는구나'생각했다. 엽서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나는 이번에 여기 와서 자코파네도, 여기도 너무 좋고, 또 가족들과 예쁘게 지내는 것도 봐서 다 너무 좋았는데, 개인적으로 제일 감사한 것은 나 또한 '미정이의 이야기'를 들어서였어. 여지껏 무슨 일이 어떻게 있었는지 알아도... 그 감정들에 대해서는.. 나 솔직히 처음 들어본 것 같아.. 그래서 참 감사하고 '찐하게' 같이 있다 가는 느낌이야. 항상 똑 부러지고 단단한 미정이에서... 슬프기도, 아프기도, 기쁘기도, 재밌기도 한 것들... 내 앞에서 표현해 준 게 고마운 시간이었어."


엽서를 읽는 순간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 내가 그랬구나. 그리고 내가 지금 그렇게 변했구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 말도 맞는 것 같다. 그리고 정말 그렇다면 난 정말 멋지게, 사람답게, 잘 변해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반갑고 고마운 말이었다. 그리고 이 여행의 많은 것 중에 나의 이야기를 가장 값지게 여겨준 친구에게 진심으로 고마웠다.


늘 배시시 웃으며 "다 좋아", "괜찮아"하던 주연이도 부드럽지만 명확하게 자기표현을 하게 되었고, 마음을 닫고 강한 척 살아왔던 나도 빗장을 풀고 자유롭게 감정을 표현하는 사람이 되었다. 우리 어른이 되어도, 마흔이 넘어도 계속 자라고 있구나. 하루종일 짝꿍으로 앉아 쑥쑥 성장했던 열다섯 살 그때처럼, 우리 계속 자라고 멋지게 성장하자. 그래서 다음에 어딘가에서 또 만났을 때, 서로의 멋진 변화를 또 알아봐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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