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나답게 만드는 균형
역설은 옳고 그름의 것이 아니라, 대립되는 두 가지 모두가 참일 때 역설이라 했다. 내 삶속에도 존재하는 수많은 역설들.
그동안 나의 삶에서는 고통으로 인한 성장, 외로움과 상처 후에 찾아온 함께하는 행복, 아이를 낳는 고통과 아이를 만나는 기쁨, 일의 보람과 자유의 기쁨 등 여러 가지가 있었다.
지금 나의 삶에도 하루에도 여러 번 팽팽하게 긴장과 갈등을 유지하는 것들이 있다. 홀로 있는 것과 함께 있는 것, 육아와 나의 일, 고요히 내면을 향해 성장하고 싶은 마음과 세상에서 화려하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 온전한 자유로움과 스스로에게 한 약속과 책임. 도와주고 싶은 마음과 내 시간을 더 갖고 싶은 마음.
내면/외면, 나/우리, 고독/세상, 글쓰기/책 내기, 내면의 성장/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삶, 침묵/자기표현.
어느 것도 포기하기 힘든 이 팽팽한 대립과 긴장을 한참 바라보다 보니,
‘균형’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이 역설들이 내 삶의 균형을 잡아주고 있었구나. 나를 지탱해주는 힘이 되었구나.
나를 더 온전하게, 더 강하게, 둘 다 할 수 있게, 지혜롭게 해주었구나.
만일 내가 어느 한쪽만 정답이라 생각했다면 나는 극단의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규율에 얽매인 엄격하고 딱딱한 내가 되었거나,
주변 사람들이 힘들어할 만큼 자유로운 사람이 되었을지 모른다.
나의 삶이 더 소중하다며 아이를 낳지 않았거나,
아니면 육아에 희생하며 피해의식 가득한 엄마가 되었을 것이다.
혼자 고립돼 나만의 세계에 갇혀 살거나, 남들의 시선과 명예에 집착하며 살았을지 모른다.
아이를 돌보며 나 자신을 잃거나, 아니면 가족 없이 여행자로 살았을 지도 모른다.
나만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기주의자가 되었거나,
무조건 희생하고 퍼주며 자신을 챙기지 못하는 공허하고 불행한 이타주의자가 되었을지 모른다.
대립되는 양극을 놓고 끊임없이 갈등하고 고민함으로 인해 나는 한쪽으로 쓰러지지 않고 더 단단한 힘을 기를 수 있었다. 이것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더 온전한 나를 향해 갈 수 있었다. 쓰러지지 않고 버티고 버티느라 단단한 근육이 생겼다. 둘을 품을 수 있는 지혜가 생겼다.
역설을 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재미있는 작업을 해 볼 기회가 있었다. 양 손에 자신에게 다가오는 두 가지 역설을 놓는다. 예를 들어, 오른손에 도전, 왼손에 안정을 생각하며 놓고 눈을 감는다. 준비가 되면 양 옆의 각 한 사람씩 양 팔을 있는 힘껏 잡아당긴다. 세 번을 하는데 첫 번째는 양쪽에서 당기는 힘에 저항한다. 끌려가지 않으려고 애쓰며 버틴다. 나는 첫 번째 당길 때 엄청 힘을 주며 버틸 수는 있었지만 너무 힘들고, 이리저리 휘청거렸다. 두 번째는 저항하지 않고 끌리는 대로 끌려가보는 것이다. 몸의 힘을 빼자 나는 이리저리 휘청휘청 끌려 다녔다. 곧 쓰러질 것 같았다. 마지막 세 번째는 저항하지도 말고 끌려가지도 말고, 내면의 힘을 가지고, 다리로 깊게 뿌리를 내린다 생각하고 버티는 것이다. 그리고 양 손에 올려놓은 두 가지 역설을 모두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마음을 가져본다. 나는 오른손에 두었던 ‘고독과 내면을 향한 성장’, 그리고 왼손에 두었던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명예로운 삶’을 모두 소중히 바라보며, 두 다리로 굳게 뿌리를 내리는 마음으로 양팔을 벌렸다. 양쪽에서 있는 힘껏 잡아당기는데, 내가 뿌리를 내리고 굳게 서있으니 흔들리지 않았다. 힘도 들지 않았다. 양쪽에서 힘껏 잡아당기는 내 팔이, 쫙 뻗어나가는 가지로 느껴졌다. 굳게 뿌리내린 단단한 기둥, 팽팽하게 당길수록 멀리 뻗어져나가는 굵은 가지, 그리고 그 가지들이 또 가지를 내며 무성하게 뻗어나가는 모양. 초록 잎, 그 속에서 피는 꽃, 그리고 열매... 너무나 아름답고 풍성한 나무가 보였다. 몇 초였을까. 아주 짧은 시간에 눈을 감고 보았던 잊지 못할 나무의 이미지였다.
역설의 힘이 엄청나구나. 두 가지가 균형을 이루어 뻗어나갈 때, 내면으로 깊게 뿌리내리고, 바깥으로 가지를 치고 열매를 맺으며 이렇게 아름다운 나무가 되는 거구나. 그것이 역설이 주는 축복이고 약속이구나.
그동안 대립된다고 생각했던 것들, 내안에서 일어났던 많은 갈등이 참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것은 함께하기에 온전한 것이다. 함께 품을 때 성장하는 것이다. 그 균형이 지금의 나를 서있게 하는 것이다.
나무의 이미지가 생생하게 남아서 바로 그림으로 그려보았다. 두 팔로 한아름 안아도 다 안을 수 없는 굵고 듬직하게 균형 잡힌 기둥, 양쪽으로 힘차게 뻗어나가는 가지, 또 그 가지에서 뻗어 나온 수많은 줄기들. 무성한 연둣빛, 초록빛 잎, 꽃과 열매. 그리고 아래로 넓고 깊게 내리고 있는 위엄 있는 뿌리. 그리고 그 나무를 ‘역설나무’라 이름 지었다. 작은 그림 하나가 깊은 나의 깨달음을 온전히 보여주고 있었다.
함께 했던 사람들은 그림을 보고 깨달았던 그 역설의 이미지가 이 그림에서 정말 살아있는 것처럼 보인다며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공감해주었다. 누군가는 위로를 얻고, 이 그림을 통해 또 다른 깨달음을 얻었다. 아마도 이것 역시 가지가 뻗어나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순간이 아닐까.
그동안 내 삶을 힘들게 했던 많은 대림과 갈등에 감사하게 되었다. 그 어느 것도 틀린 것이 아니었음을, 두 가지의 참 속에서 애써 균형을 잡으며 힘겹게 버텨낸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음을 감사하게 되었다. 이제는 애써 버티기보다, 양쪽을 모두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 둘을 모두 품어냄으로서 더 굳건하게 뿌리내리고, 더 힘찬 가지로 뻗어나가고 싶다.
작은 종이가 아쉬워 나중에 큰 전지에 다시 그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