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언어가 내게로 다가온다

내 언어의 변천사

by 강미정


어릴 적 나는 언어의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다.

청각이 예민한 나는 외국어의 발음과 억양과 톤을 예리하게 받아들였다.

중학교 때 일본에 가서 일본어를 꽤 빨리 습득했고,

1,2년 후에는 사람들이 원어민으로 생각할 만큼 자연스럽게 구사했다.

영어도 쉽고 재미있게 잘 익혔고(그때는..)

미국인들은 내 영어 쪼가 없다며 칭찬해주었다(그때는..,)

영어, 일본어와 한국어를 비교하며 공부하다보니 우리말에도 더 깊은 관심을 갖게 됐다.



대학교 때는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을 좋아했다.

무대에서 연극을 하고

토론대회에 나가 열띤 토론을 하고

학교행사에서 사회를 보고

대중 앞에서 말하는 것을 즐기는 나를 보고 나는 자연스럽게 아나운서를 꿈꿨다.



아나운서가 되면서 배려하는 말을 많이 배웠다.

더 부드러운 표현, 더 긍정적인 단어, 상대의 마음을 열 수 있는 대화,

명료한 발음, 편안하게 느낄 수 있는 목소리,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쉽고 간결한 말, 상대를 바라보는 몸짓,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으나, 내가 아닌 상대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는 언어를 배웠다.



상담심리를 공부하면서 입은 다물고 마음으로 상대의 언어를 듣는 훈련을 했다.

섣부른 공감, 비슷한 경험의 내 이야기, 조언, 영혼 없는 맞장구를 지우는 연습을 했다.

굳이 목소리로 ‘맞아, 맞아’를 외쳐주지 않아도

온 마음을 다해 그의 모든 언어에 집중하면

눈빛으로, 손짓으로, 단어로, 머뭇거림으로, 침묵으로

상대는 내게 진심을 말하고 있음을 배웠다.



글을 쓰면서 나는 내 안에 파편처럼 흩어진 생각과 경험들을 언어로 정리하게 되었다.

매 순간의 스쳐갔던 말과 생각, 느낌의 구슬들을 주섬주섬 주워 담아

그것을 실에 꿰어 소소한 것들에 의미를 부여한다.

어린 아이들이 비즈를 꿰어 반지도, 팔지도, 목걸이도 만들며 좋아하듯

글쓰기는 나비 반지가 되었다가, 알록달록 구슬팔찌가 되었다가, 토끼목걸이가 되기도 한다.

남이 뭐라든 내게는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예쁜 작품이다.



침묵하면서 나는 내 페르소나 안에 있는 참자기와 대화하게 되었다.

고요히 홀로 걸으며, 때로는 낙엽을 마주하고, 때로는 눈을 감으며 귀를 기울이면

종종 말을 건네 온다. 내가 나를 잃지 않도록, 질투나 경쟁 따위 던져버리고

내가 원하는 삶, 내가 진짜 바라는 행복에 다가설 수 있도록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답답했던 마음이 무슨 의미였는지

슬며시 알려주며 평온을 선물해준다.



나에게 언어는 외국어이기도 했다가, 대중스피치이기도 했다가,

배려의 말이기도 했다가, 경청이기도 했다가,

글쓰기이기도, 침묵이기도, 내면의 대화이기도 했다.

나의 삶을 만들어온 언어는

내 마음의 지문과 같다.

앞으로 또 어떤 언어들이 내게 다가올지,

나는 어떤 언어들로 내 삶을 채워갈지.

모든 언어들이 내게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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