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해가는 풍경 속, 사라진 이야기
게스트하우스.
배낭여행자의 낡은 지도처럼, 오래된 기타의 선율처럼, 왠지 모르게 낭만과 자유로움이 스며 있는 단어다.
저렴한 가격에 낯선 이들과 어깨를 부딪치며 하룻밤을 보내고, 각자의 여행 이야기를 안주 삼아 밤늦도록 웃음꽃을 피우는 곳. 호텔의 정갈함과는 다른,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공간.
이것이 내가 오랫동안 품어왔던 게스트하우스의 정의이자 매력이었다.
하지만 며칠 전 여행지에서 마주한 게스트하우스는 익숙했던 풍경과는 사뭇 달랐다.
거실에 모인 이들은 낯선 청춘들이 아닌, 가족 단위의 여행객들이었다.
그렇다.
이틀을 머무는 동안, 매일 열 팀 남짓한 투숙객 중 혼자 온 여행자나 커플, 친구끼리 온 팀은 손에 꼽을 정도였고 그 외의 대부분은 가족 단위 여행객들이었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들과 부모들이 함께 게스트하우스를 찾은 것이다.
늦은 저녁시간과 조식 시간의 풍경은 그 낯섦을 더욱 두드러지게 했다.
마치 작은 운동회라도 열린 듯, 삼삼오오 모여 앉아 분주하게 식사를 하는 가족들의 모습은 이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광경이었다.
이러한 변화를 마주하며 문득 나 혼자만 이질감을 느끼는 건지, 아니면 시대의 흐름에 따라 나의 생각 또한 과거의 것이 되어버린 건지 곱씹게 되었다.
이제는 낯선 이들과 눈을 맞추며 여행의 설렘을 나누던 이전의 게스트하우스의 풍경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가족이라는 튼튼한 울타리 안에서 그들만의 시간을 보내는 모습만이 가득했다.
문득 ‘여행자 간의 소통과 교류의 장’이라는 게스트하우스 본연의 의미가 희미해져 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물론 가족 여행의 형태가 다양해지고, 저렴하면서도 편안한 숙소를 찾는 이들이 늘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변화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낯선 길 위에서 우연히 만난 인연들과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문화를 공유하며 새로운 영감을 얻었던 게스트하우스의 낭만은 이제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려워진 것일까.
변화는 늘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어쩌면 지금의 게스트하우스는 또 다른 형태의 소통과 교류를 만들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족이라는 더욱 끈끈한 관계 속에서 새로운 추억을 쌓고, 함께하는 여행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모습 또한 게스트하우스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쩐지, 조금은 그리웠다.
낯선 도시의 밤공기에 기대어 아무 말 없이 앉아있던 누군가와, "여기 와 본 적 있으세요?"라고 조심스럽게 말을 걸던 그 시간들. 지역도 다르고 사는 방식도 달랐지만, 같은 이유로 같은 공간에 머물렀던 이방인과의 짧고 깊은 만남.
이제는 그런 만남이 사라지는 걸까?
아니면, 그 자리를 새로운 형태의 여행자가 채우고 있는 걸까?
게스트하우스라는 이름은 그대로지만, 그 속의 풍경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나도, 이제는 변해가는 여행의 방식 속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기다릴 때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