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단편소설

주위에 한 명씩 있는 쎈 누나 - 3편

공감과 동감은 다르다

by 류련

나는 준수의 말을 듣고 당장 외투를 챙기라고 말했고, 내 방에서 술을 더 마시자고 했고 술에 더 취해버리자고 말했고, 그와 잠을 잤다.


내 방에서 준수와 술을 마시며 그에 대해 많은 걸 알게 됐다. 준수는 부모님과 누나와 같이 살았으며, 아빠의 폭력에 시달렸다. 아빠는 술만 취하면 준수의 엄마를 때렸고, 그 폭력은 누나에게로 이어졌으며 곧 준수에게까지 뻗쳤다. 여느 평범한 가정폭력의 피해자답게, 그들은 아빠가 술이 깨기만을 기다리면서 폭력을 버텨내는 삶을 살았다. 준수는 스무 살이 되자마자 고시원에 들어가 나가 살았지만, 엄마와 누나는 그대로였다. 가끔씩 집에 들를 때마다 가구가 하나 부서져 있거나, 엄마나 누나의 몸에 멍이 들어 있고는 했다. 드물게 두 사람의 몸에 멍이 들지 않았거나 가구가 부서져 있지 않았을 때도 있었지만, 두 사람의 마음은 이미 부서져 있어 보였다고 했다.


준수는 음악이 하고 싶어서 기타를 배우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책도 읽고 싶었고, 영화도 배우고 싶었으며, 여행도 가고 싶었고, 맘껏 술을 마시고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러기엔 돈이 없었다. 성인이 되자마자 집을 나가버린 아들에게 그의 아버지는 돈 한 푼 보내주지 않았다. 가끔 엄마와 누나가 용돈을 쥐어줬지만, 그 돈을 받을 때마다 그들의 멍과 상처만 떠올랐다고 한다. 그는 유난히도 하얗고 반반했던 얼굴과 쎈 주량을 살려 호스트 바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타고난 가창력과 아빠의 비위를 맞추면서 길렀던 서글서글한 성격 덕분에 그는 강남 호빠 일대를 주름잡는 에이스가 되었다. 준수는 한 달에 3백만 원을 벌기 시작하면서 배우고 싶은 것들을 배워나가기 시작했다. 기타를 샀고, 교보문고에서 책을 사서 읽었으며, 친구들과 술을 마셨고, 엄마와 누나에게 용돈을 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여행을 갈 정도의 돈은 모으지 못해서, 언젠가 꼭 자신의 엄마와 누나를 데리고 여행을 가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 날은 준수가 자신의 엄마와 누나에게 용돈을 주려고 오랜만에 집에 간 날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아빠는 또 술에 취해 왔고 자신의 인생이 망가진 건 너네 때문이라는 욕을 하며 의자를 부수기 시작했다. 이미 스물두 살이 된 준수는 그의 아빠보다 체격도 커지고 힘도 이미 더 셌다. 하지만 그는 그런 폭력적인 모습 앞에서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었다. 학습된 무기력함은 184센티미터가 넘는 키를 가진 스물두 살의 남성조차, 비겁하고 깡 마른 중년의 폭력에 어쩔 방도 없는 존재로 만들었다. 그의 아빠는 아들 새끼가 집 나가서 이제야 들어오냐며 의자를 준수에게 던졌다. 그때 그의 엄마가 막아섰고 날아간 의자는 엄마의 이마에 부딪혀 그녀의 이마를 찢어놓았다. 철철 흐르는 피를 익숙한 듯 소매로 닦아내는 엄마의 모습을 보던 준수는 이성을 잃었다.


준수는 그의 아빠에게 달려들었다. 아빠를 눕히고 그에게 올라타 그의 갈비뼈를 주먹으로 수십 번 내려쳤다. 갈비뼈가 몇 개는 부러졌는지, 그의 아빠는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준수는 그 소리가 듣기 싫어 그의 얼굴을 후려갈겼다. 그러니 그의 코가 휘고 입술은 터졌다. 준수는 피를 흘리던 엄마의 찢어진 이마 위치도 기억했다. 자기 아빠의 똑같은 부분을 주먹으로 내리찍었고 그의 이마는 움푹 파여버렸다. 결국 그의 아빠는 의식을 잃었고, 엄마와 누나가 뜯어말린 후에나 준수는 이성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의 아빠는 금방이라도 죽을 듯 숨을 헐떡였다. 몸은 부르르 떨었고, 얼굴은 피칠갑이었다. 호기롭게 의자를 집어던지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그저 생사를 오가는 하찮은 고깃덩어리 하나가 놓여 있을 뿐이었다. 준수는 그제야 심폐소생술을 했고, 구급차를 불렀다. 구급차가 올 때까지 준수는 심폐소생술을 멈추지 않았다. 15분 뒤에 구급차가 왔고, 근처 대학 병원으로 그의 아빠는 옮겨졌으나 죽었고, 준수는 경찰에 의해 존속폭행치사죄로 법원에 넘겨졌다.


1심에서는 자신의 아버지를 잔인하게 폭행하여 죽인 죄질이 나쁘다며 19년의 징역형을 받았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와 누나가 눈물의 증언을 했고, 이는 뉴스에 한 꼭지로 보도됐다. 여론은 준수의 편으로 돌아섰고, 검사와 판사는 한 발짝 물러나 2심에서 5천만 원의 벌금형과 사회봉사 200시간의 판결을 받았다. 당장 생활비도 구하기 힘들었던 준수네에게 거액의 벌금을 낼 여력 따위 있을 리 없었다. 그래서 준수는 강남의 호스트 바에서 더욱 열심히 손님들의 비위를 맞추고 술을 마셔줬다. 결국 그는 이태원의 한 게이 호스트 바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준수는 고민하고 망설일 여유 따위 없었다. 엄마의 정신은 하루가 다르게 피폐해져 갔고, 전자회사의 고객센터에서 일하던 누나의 사정 또한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는 바로 이태원의 게이 호스트 바로 이직했고 남자 손님들의 전폭적인 인기를 끌며 에이스로 등극했다. 그는 전에 벌던 월급을 주급으로 벌었고 벌금도 1년도 채 되지 않아 전부 냈으며, 엄마와 누나에게 작은 전세방을 마련해주었다.




그의 이야기가 한 편의 우울한 독립영화를 본 것처럼 다가와서, 숨이 턱 막혔다. 무조건 솔직하게 살아야 한다고 내 자신에게 다짐한 이유가, 솔직하지 못하게 자라왔던 내 삶을 보상받고자 하려는 심리임을 잘 알고 있었다. 거지 같은 아빠를 만나서 힘들게 살다가 그가 죽어버렸다는 공통점을 가진 준수. 오랜 시간 폭력에 시달린 가족을 가진 준수. 난 그런 준수도 나처럼 솔직함이 부족한 삶을 살아왔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상하게 나와 닮은 그에게 이끌렸고, 우린 잠을 잤다.


그때부터 우린 사귀기 시작했고 내 방에서 동거를 시작했다. 나와 동거하기 시작하면서 준수는 호스트 바 일을 그만두었고, 작곡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우린 마트에서 같이 장을 보고, 밥을 해 먹었다. 카페에 앉아 책을 읽었고, 밤에는 투박한 스뎅 그릇에 막걸리를 따라 마셨다. 준수는 그럴 때마다 한낱 이 스뎅 그릇도 자기 책임을 다 하는데, 책임 지지 못하고 죽어버리는 것들을 마음껏 미워하자고 말했다. 그러면 난 그래그래- 우리들의 아빠나 조모임 튀어버린 새끼들이나 전부 미워하자-말하고는 했다. 난 잠들기 전에 항상 그에게 기타와 노래를 들려달라고 했고, 그는 자작곡을 내게 들려주고는 했다. 난 어디서 들어본 멜로디인 거 같은데- 그 코드는 너무 흔한 거 아니니- 뭐 이런 평을 했고, 준수는 포장도 안 해주고 솔직한 평을 하는 건 뮤지션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둥 받아쳤다. 우리는 그렇게 시시껄렁하지만 소중한 일상을 보냈다. 난 그렇게 서로가 안정을 찾아가고 있는 줄로만 알았다.




정말로 그렇게 준수가 스스로 죽어버릴지는 몰랐다.

그날도 평범했다. 난 정신과 상담을 받아서 내 과거 트라우마와 준수와의 트러블을 털어놨고, 친구와 만나 술을 마셨으며 노래방에서 소찬휘-김현정 메들리를 불렀다. 택시를 타고 내려서, 나와 준수가 동거하는 집 화단 앞에다 속을 비웠고 안색을 확인하고 나서 집에 들어갔다. 그리고 손목을 그은 채 레드 와인 빛 물이 가득한 욕조에 싸늘하게 빠져있는 준수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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