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단편소설

주위에 한 명씩 있는 쎈 누나 - 4편

다정함이 없는 솔직함

by 류련

준수는 멍청하리 만큼 순진했다. 아빠의 폭력을 피해 독립을 했고, 돈이 없으니 호빠에서 일을 했고, 자기의 어두운 과거를 나한테 술술 털어놨다. 내가 어떤 사람인 줄도 제대로 모르면서, 같은 폭력의 피해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준수는 그렇게 사람을 잘 믿어버리는 아이였다. 자신의 아빠에게 받지 못했던 사랑을 타인들을 통해서 얻으려 했다. 교수에게, 학과 친구들에게, 말 한번 섞어본 적 없는 인스타그램 팔로워들에게. 준수는 그들에게 과도하게 친절했다. 언론을 통해 알려진 준수의 가정상황을 안타깝게 여겼던 법학과 김 교수는 준수에게 밥과 술을 한번 사준 적이 있었다. 준수는 그 후로 그 교수에게 안부 메일을 격주에 한 번씩 보냈다. 별 내용은 없었다. 시시콜콜 자신의 일상을 글로 적어 보내 거나, 새로 쓴 곡이 있으면 녹음해서 보내 거나. 잘 답장해주던 교수도 어느샌가 스팸처리를 했는지 답장이 없었다. 그래도 준수는 메일을 꾸준히 보냈다. 누군가 자신의 일상을 읽어준다는 느낌이 좋다는 게 이유였다.

솔직히 준수의 순진함을 무시한 김 교수는 양반인 축에 속한다. 준수의 과 동기 차혁재는 더 악랄한 놈이었다. 혁재는 160센티의 작은 키에 깡 말랐는데, 과 회식 때마다 준수의 옆에 앉아 은근히 허벅지나 어깨를 만지는 스킨십을 하던 놈이었다. 혁재와 준수는 각자 술자리를 주도하는 성격으로 코드가 잘 맞았고, 1학년 개강파티 때 막걸리 잔을 부딪히며 도원결의를 한 사이였다. 렇게 인생의 절친이라도 될 거 같았던 그들이었다. 하지만 준수는 군 면제를 받았고 혁재는 현역으로 입영했다. 자연스레 연락은 뜸해졌고 사이는 소원해졌다. 복학하고 나서 만난 둘은 어딘가 모르게 많이 변해있었다. 혁재는 말랐던 몸에 다부진 근육이 붙었고, 준수는 호빠에서 번 돈으로 시술을 받아 더 잘 생겨졌다.


준수는 복학생이지만 잘생긴 얼굴 덕분에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고, 혁재는 혼자였다. 유난히도 남학생 수가 적었기 때문에, 그 둘은 학과 사람들 사이에서 자주 비교당했다. 복학하고 어색해진 그들은 그 어색함을 해소하려고 술자리를 자주 가졌다. 혁재는 준수에게 술을 먹이고 자기는 술을 버리는 전법으로 준수를 자주 인사불성으로 만들곤 했다. 그리고 준수의 카드로 술값을 결제했다. 나 같았으면 다음 날 일어나서 그 자식 목을 비틀어서라도 n빵을 받아냈겠지만, 순진한 준수는 그와의 만남을 조금씩 줄이는 전략을 취했다. 끊어낼 거면 확실히 끊어내야지 왜 그랬냐는 나의 물음에, 준수는 사람을 버리는 건 손가락 마디 하나 잘라내는 것만큼 힘들다-라고 대답했다.

자신과의 술자리를 조금씩 피한다는 걸 눈치챈 혁재는 어느 날 준수에게 연락해, 자기가 산다고 말하며 단 둘이 술을 마시자고 했다. 물론 도둑놈 같은 새끼답게 안주가 2900원부터 시작하는 값싼 포차형 술집으로 준수를 데려갔다. 그날 둘은 막걸리를 10통 마셨고, 준수는 술에 떡이 돼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혁재는 그런 준수를 자신의 자취방에 데려가 옷을 벗기고 자신의 아랫도리를 준수의 입에다 가져다 댔다. 준수는 술 취한 와중에도 자신이 누군가의 아랫도리를 빤다는 걸 느꼈고, 혁재를 발로 차는 데에 성공했다. 한바탕 뒷구르기를 한 혁재는 화장실에 들어가 샤워를 했고, 준수는 그 사이에 잠들었다. 샤워를 마친 혁재는 핸드폰으로 알몸이 된 준수의 사진을 열 장은 더 찍었다. 다음 날 집에 돌아간 준수에게 사진을 보내며, 게이 호빠에서 일하던 더러운 새끼-라며 500만 원을 보내지 않으면 인터넷에 뿌리겠다고 협박했다. 순진한 준수는 50만 원씩 10개월에 걸쳐서 주면 안 되겠냐며, 제1 금융권 신용카드 할부 긁듯이 부탁했다.


당연히 난 이 소식을 듣자마자 혁재의 집에 쳐들아가 연신 뺨을 때리며, 남성 동성애자 망신시키냐 이 개새끼야-라고 말했다. 당연히 그 자식의 핸드폰도 받아냈다. 난 정신머리가 나가도 5천만 년은 더 나간 거 아니냐-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딴 짓을 했냐고 따져 물었다. 그러자 혁재는 원래 비겁한 애들이 그렇듯, 자신이 준수에게 느꼈던 열등감과 소외감은 준수 책임이라며 헛소리를 지껄이며 울어댔다. 난 가볍게 무시하고 걔 핸드폰에서 준수의 사진과 연락처를 지웠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서는, 누나가 다 처리했다- 걔 다시는 연락 못할 거야. 걱정하지 마 이제-라고 준수에게 말했다.


이렇게 사건이 종결 나서도 준수는 한 동안 우울해했다. 그래도 좋은 친구였다며, 그와의 좋은 추억까지 훼손하고 싶지는 않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었다. 그럴 때마다 난 속에 열불이 났고 순진하게 살다가 인생 좆되는 건 한순간이라고 그를 항상 다그쳤다.

내가 준수에게 솔직한 질책을 쏟아내는 날엔, 준수의 인스타그램이 업데이트되는 날이었다. 준수는 금방이라도 울 거 같은 표정의 사진에 #우울 #힘들다 #삶이란 이따위 오글거리는 해시태그들을 붙여 게시물을 업로드하고는 했다. 난 인스타그램에 사진 낭비할 시간에 취업이나 해라, 아니면 되지도 않는 서정적인 어쿠스틱 작곡하지 말고 끝내주는 아이돌 곡을 쓰라고 조언했다. 준수도 당연히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고 그의 인스타그램엔 울 거 같은 표정의 사진들이 올라가는 날들만 더 많아졌다. 그런 게시물이 보기 싫어 난 인스타그램에 잘 들어가지 않게 됐고 준수와의 섹스도, 대화도 점차 줄어만 갔다. 난 나의 정신과 주치의에게 이런 준수와의 트러블을 털어놓았고, 어떻게 하면 다시 준수와 가까워질 수 있을지 고민했다. 가끔은 술에 취해 준수의 누나에게 전화해 하소연을 하기도 했다. 언니 동생 왜 이래요. 왜 내 맘을 몰라줄까요. 내가 뭐 틀린 소리 했나요. 다 자기 잘 되라고 그런 거잖아요. 언니는 다 아시죠. 아 그럼. 내가 다 알지. 우리 준수가 좀 애 같은 면이 있잖니. 이놈의 호적메이트 이거 어떡하니. 우리 엄마 아들 이놈의 자식, 가끔 나도 이해가 안 간단다. 어머 언니 너무 웃겨요 제가 언니 때문에 웃는다니까. 다음에 또 통화해요 언니.


그래도 준수는 매일 아침 출근하는 나의 아침을 차려주는 걸 빼먹지 않았고, 나도 그런 준수에게 키스하는 걸 잊지 않았기에 난 우리가 커플들이 겪는 흔한 권태기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준수가 죽었던 날, 준수가 차려준 아침은 평소와 다르게 너무 근사했고, 키스할 때 준수의 혀는 평소보다 더 세차게 움직였으며, 그의 인스타그램엔 희미한 미소를 띤 얼굴 사진과 #안녕 이라는 해시태그가 첨부되어 있었다.


다음 날 준수의 장례를 치렀다. 경찰은 자살로 추정하고 있지만, 내게 경찰에 출석해 조사는 한동안 받아야 한다고 했다. 준수의 어머니는 준수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혼절하셨다. 나와 준수 누나는 장례식장을 급하게 알아보고 장례를 준비했다. 장례식장에서는 많은 것들을 선택해야 했다. 수의, 제단, 납골함, 염습 인건비, 꽃값, 상복의 가격 등... 수많은 선택지 앞에서 나와 언니는 정신이 없었다. 언니는 어머니의 상태를 살피며 원무과와 통화를 하며 병실 수준을 선택해야 했다. 나는 회사에 전화해, 남은 연차를 전부 소진하고 추가로 무급휴가를 신청할 건지 선택해야 했다. 그때 난 슬픔에도 여유가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우리가 선택할 수 없었던 게 하나 있었다. 바로 상주라는 자격이었다. 장례식장 직원은, 직계 남자 가족이 없으니 남자 사촌이 상주를 서는 게 맞다고 했다. 언니는 무조건 자신이 상주가 되겠다고 말했다. 한 평생 교류도 별로 없던 사촌들은, 장례식에 괜한 소란 만들지 말고 며칠뿐인 장례식 동안만 네가 참으라고 언니를 다그치듯 달랬다. 언니는 절대 그럴 수 없다며 그제야 울부짖었다. 그러자 귀찮은 듯 장례식장 직원이 나지막하게 혼잣말을 했다.


"상갓집에서 여자가 이렇게 소리 내는 거 아닌데..."


그 소리를 듣자 하니 솔직함의 유전자가 들끓었다.


"당신이 남의 상갓집에서 뭐라도 된 것마냥 떠들 일도 아니지."


난 최대한 재수 없고 차갑게 말했다. 그리고 난 상주 완장을 뺏어서 언니의 오른팔에 달았다.


"언니. 누가 뭐래도 언니가 상주예요. 검정 치마를 입던, 검정 양복바지를 입던 언니 마음대로 하세요."


그러자 준수의 사촌들이 한 마디씩 거들었다. 동거녀가 왜 이렇게 나서냐- 아들이 아빠 죽였다고 안 그래도 얼굴도 못 들고 다니는데 네 엄마 불쌍해서 어떡하냐- 이래서 집안에 남자가 있어야 한다- 아이고 집구석이 제대로 돌아가는 부분이 없다-


나는 빈소를 지켰고 언니는 손님들을 맞이했다. 름 언론에도 오르내린 로얄(?)패밀리라 그런지 의외로 조문객이 많이 왔다. 언니가 직장생활을 끝내주게 잘했는지 언니의 전 직장, 현 직장 동료들이 제일 많았다. 그 많은 사람들을 전부 웃으며 반기는 언니를 보며, 정말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까지 친절할 수 있을까- 아니면 친절하게 살 수밖에 없었던 걸까-하고 생각했다. 나는 쉴 새 없이 조문객과 맞절을 해야 했고 (나를 보며 쟤가 동거녀인가 봐-하는 뒷얘기를 못 들은 척해야 했다.) 언니는 쉴 새 없이 조문객들을 응대해야 했다. 난 그런 우리 꼴을 보며 바쁜 벌꿀은 슬퍼할 겨를도 없다던 누군가의 명언이 생각 나 웃음을 터뜨릴 뻔 서 허벅지를 꾹 누르며 참기도 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입관식 해야 하니까 영안실로 들어오라는 장례지도사의 말을 듣고 그를 뒤따라갔다. 그곳엔 가지런한 수의를 입고 준수가 슬픈 눈을 감은 채 누워있었다.


준수. 아빠에게 맞아 휘어버린 코끝이 컴플렉스였다며 호빠에서 받은 첫 월급을 코수술에 전부 써버린 준수. 충치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해 썩어버린 앞니가 싫어서 라미네이트를 한 준수. 처음 만났을 때 눈에 상현달을 걸어두고 날 보며 웃던 준수. 그런 준수가 차가운 스테인리스 테이블 위에 누워있었다.


그제서야 난 눈물범벅이 됐고, 그제서야 난 나와 키스하던 그의 입술을, 보형물 움직이니까 만지지 말라던 그의 코를, 나 또한 가정폭력 피해자라고 말하자 나를 달처럼 바라보던 그의 눈을 만졌다. 그제서야 난 그의 수의에 내 눈물을 뿌리며 그의 얼굴을 껴안았다.


그리고 난 그제서야 그가 죽기 전 날 함께 밥을 먹으며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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