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단편소설

주위에 한 명씩 있는 쎈 누나 - 완결

그 누구도 갖지 못한, 준수

by 류련

준수가 자살한 날. 난 평소처럼 퇴근하고 나의 정신과 주치의와 상담을 하러 갔다. 그날따라 이상하게도 카톡에 대답이 없었던 준수가 난 못 마땅했고, 전 날 싸웠던 것 때문이려니 생각했다. 주치의는 대화는 새로 복용한 신경안정제는 괜찮은지, 항우울제 때문에 소화불량이 심해지지는 않았느냐고 물었다. 대화는 곧 자연스럽게 준수와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ㅡ 준수 씨는 여전히 집에서 작곡을 하나요? 저번 주에는 그가 한심하게 느껴진다고 하셨는데. 그 생각은 여전한지 궁금하네요.

ㅡ 어휴 선생님 말도 마세요. 옛날에는 불쌍하다는 마음도 조금 있었다고 말씀드렸죠? 암울한 가족사를 겪은 사람들은 결국 혼자 남겨지는 거 같다고요. 근데 걔는 심해도 너무 심해요. 벌써 6개월이 넘게 기타만 튕기고 있다니까요.

ㅡ 준수 씨가 만든 곡을 들으면 어떤가요. 처음에 들었던 느낌과 지금의 느낌이 다른가요?

ㅡ 처음엔 그래도 얘가 뭐라도 하는구나 싶어서 기특했어요. 돈도 안 되는 걸 하지만, 그래도 호빠에서 술 따르는 것보다야 훨씬 나으니까. 그런데 이제는 잘 모르겠어요. 솔직히, 누가 들어주지도 않는 곡 써봤자 뭐하나 싶고. 밖에서 버스킹이라도 하던가. 그럼 누가 들어주기라도 할 거 아니냐고요. 왜 쟤가 저렇게 무기력하게 집에만 있는지. 그러니까 걔가 더 나약해지는 거라니까요.

ㅡ 그럼 거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보셨나요? 수영 씨의 마음을 준수 씨에게 털어놓은 적이 있는가 궁금해서요.

ㅡ 바로 어제요. 전에는 자기가 쓴 곡 들어보라며 들려주고는 했는데, 한동안 제가 싫은 티를 내니까 눈치 보면서 혼자 조용히 읊조리더라고요. 아, 쭈뼛 대면서 소심하게 행동하는 그 모습이 너무 찌질해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솔직하게 말했죠. 도대체 왜 그렇게 사냐고요. 6개월 넘도록 무력하게 지내는 걜 보면, 그 무기력이 저한테도 전이되는 거 같아요. 그래서 요즘은 그것 때문에 많이 싸워요. 좀 나가서 뭐라도 하라고요. 그런데 꿈쩍도 안 해요. 자꾸 술이나 같이 마시자고 하고. 저는 솔직히 그 무력한 모습 보기도 싫고, 그런 무거운 얘기만 할 거 같아서 술맛도 안 나거든요. 그래서 그냥 안 마셔요.

ㅡ 좀 더 자세하게 들려주시죠.


준수가 죽기 전 날, 난 야근을 했고 밤 10시가 다 돼서야 집에 도착했다. 준수는 들어오는 내게 밥은 먹었냐고 물었고 난 생각 없다고 답하고 씻으러 들어갔다. 난 씻은 후에 침대에 누웠고 준수는 의자에 앉아 기타를 소심하게 치고 있었다. 보름 동안 혼자 흥얼거리던 그 노래를 거의 완성한 모양이었다.


『그대가 날 사랑하는 건 아는데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건 아는데

우리가 웃고 있다는 것도 아는데


나는 그냥 여전히 다정함이 그리워

날 안아주는 다정함이 그리워』


ㅡ 언제까지 그렇게 아무도 안 듣는 노래나 할래.

ㅡ 누나가 듣잖아.

ㅡ 아니 안 들어.

ㅡ 옛날엔 자기 전에 항상 불러 달랬으면서.

ㅡ 우리 얘기 좀 하자. 너 상황 진짜 심각해.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식탁 의자에 앉았다. 맞은편에 앉아있던 준수는 일어나 냉장고에서 막걸리를 꺼냈고, 우리가 자주 따라 마시던 스뎅 그릇에 막걸리를 가득 따랐다.


ㅡ 오랜만이네. 이렇게 누나랑 마주 보고 술 마시는 거. 요즘 회사 때문에 많이 힘들지.

ㅡ 나 지금 내 회사 얘기하려는 거 아니고. 네 얘기하고 싶다고.

ㅡ 아무리 들어도 김 과장이랑 서 대리는 미친놈들이야. 정신이 나가도 오백 년은 더 나갔지.

ㅡ 야, 내 말 안 듣니.

ㅡ 누나, 나 사랑한다고 말 한마디만 해주라.

ㅡ 너 자꾸 말 돌릴래?


준수는 막걸리를 들이켰고, 다시 기타를 잡았다.


ㅡ 너 진짜 언제까지 이럴래. 어린 시절 지독하게 겪은 사람들? 많아. 나만 봐도 안 그렇니. 근데 나도 꾸역꾸역 살아내잖니. 더러워도 어떻게든 돈 벌고 살잖니. 준수야. 삶이 이래. 그냥 어떻게든 걸어가야 하는 게 삶이야. 너 언제까지 자기 동정에 빠져 살래. 너 얼마나 내가 더 솔직하게 말해야 하니. 왜 이렇게 나를 독하게 만들어.

ㅡ 수영이 누나. 나 요즘 많이 불안하다.

ㅡ 뭐?

ㅡ 누난 내가 집에 가만히 있으면서 쓸모도 없는 노래나 만든다고 생각하나 봐. 틀린 건 아닌데. 이건 내가 날 보호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최선이거든.

ㅡ 뭐가 불안한데. 너 그거 심하면 약 먹어야 해. 나도 정신과 다니면서 약 먹는 거 알잖아.

ㅡ 어, 아는데. 그냥 거기까지도 못 가겠어. 집 밖에 나가면 햇살이 너무 죄책감이 들어. 햇살에 내리쬐지는 게 너무 수치스러워. 그냥 쓰레기처럼 사는 내가 만천하에 까발려지는 거 같아. 사실 마트에 장 보러 갈 때도 너무 어지럽고 힘들어서 화단에 토한 적도 많아. 누나가 술 취해서 들어오면 그럴 때처럼.

ㅡ 내일 당장 병원 가자. 예약해놓을게, 무조건 가.

ㅡ 아니, 누나 난 지금 병원을 가고 싶은 게 아니라, 누나랑 얘기를 하고 싶은 건데.


준수는 그제야 기타를 놓고. 다시 막걸리를 한 잔 마셨다.


ㅡ 누나, 나 호빠 다닐 때도 이랬어. 손님들 술 따라 주면서, 노래를 부르면 내 가슴팍에 꽂아주는 팁을 받으면서, 2차로 모텔을 가면서도 불안했어. 언젠가는 부서져버릴 거 같아서 불안하고 무서웠어. 그런데 누나를 만난 거야. 나랑 비슷하게 살아온 누나를. 누나랑 불쌍하고 거지 같았던 옛날 얘기를 하는 게, 난 그때가 좋았어. 세상에 누나랑 나랑 둘만 남겨진 기분이 들었거든.

ㅡ 난 싫어. 난 내 주치의한테도 옛날 얘기하는 거 힘들어. 넌 좋았을지 모르겠는데, 난 싫어. 네가 가끔 함부로 나의 과거를 호출하는 게, 나한테 그게 힘들어. 난 네가 그럴 때마다 널 다그쳤던 거야. 나약한 소리 하려고 하지 말라고.

ㅡ 왜 이제야 말해줬어. 솔직 담백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조수영께서.

ㅡ 우리 엄마처럼 될까 봐. 나의 약함을 말하면 내가 약하다는 걸 인정하는 거고. 우리 엄마는 약했으니까. 난 어떻게든 이걸 숨겨서 강해져야 했거든. 엄마랑 다르게 살아야 하니까.

ㅡ 왜 어머니를 불쌍하게 만들어. 왜. 왜 그렇게 생각해.

ㅡ 힘든 소리 하면, 그만큼 힘들어지는 거야. 원래 그래. 사람이란 게.

ㅡ 왜 이 걸 지금에서야 말해줘. 왜.

ㅡ 그만하자. 나 내일 병원 가는 날이야. 에너지 빼기 싫어. 내일 네 진료받을 수 있는지 물어볼 테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난 침대로 가 누웠고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썼다. 멀리서 식탁 의자에 앉은 채 들릴 듯 말 듯 준수의 말이 들렸다.


ㅡ 누나, 나 작곡하는 거 그만둘까 봐.


난 이불 안에서 들릴 듯 말 듯 대답했다.


ㅡ 그러던가.

ㅡ 재능이 없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어. 난 그냥 내 불안함을 죽여줄 무언갈 하고 싶었고, 내 이야기를 어떻게든 하고 싶었고, 누가 들어줬으면 했고, 누가 반응해줬으면 했어.


무언가 말하고픈 게 있었지만, 가만히 듣기만 했다.


ㅡ 그게 누나였으면 했고. 누나가 날 안아줬으면 했어. 다정함이란 거. 우리같이 소중한 관계에서는 바랄 수 있는 거잖아. 소중한 관계라서 모든 게 완벽해야 하는 게 아니라, 좀 불완전 해도 다정하게 감싸줄 수 있는 거잖아. 나도 그거 기대해볼 만도 한 거잖아. 나도 다정함을 받아볼 자격은 있는 거잖아. 애인에게 그걸 바라는 게 큰 욕심은 아니잖아 누나.

ㅡ 내일 얘기하자.


더 말하고 싶은 게 있었지만 참았다. 나의 모든 고통을 상세히 말해버리면. 그리고 내 고통을 준수가 자기 말마따나 다정하게 감싸 안아 버리면, 내가 나약한 사람이란 걸 나 스스로가 인정해버릴 거 같았으니까. 그리고 어떤 사람에게 의지해버릴까 봐. 엄마처럼, 남에게 의지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멍청한 사람이 될 거 같았으니까. 난 그게 불편했다. 내 모든 부분을 준수가 알아버릴까 봐. 나의 연약함이 들켜버릴까 봐.


ㅡ 잘 자, 누나.


준수는 말없이 막걸리를 들이켜는 거 같았고, 나는 이불 안에서 잠이 들었다.


난 출근을 위해 7시에 일어났다. 준수는 늘 그랬듯 먼저 일어나 우리의 아침식사를 준비했고 그날은 된장찌개와 계란말이였다. 평소보다 호화스러운 반찬이었다. 난 아침을 먹고 샤워를 하러 욕실에 들어갔다. 욕조에 서서 샤워기를 틀어 샤워를 했다. 그런데 늘 있어야 하는 준수의 면도기와 칫솔이 없었다. 새로 바꾸려고 기존에 쓰던 걸 버렸나 생각했다.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땐 준수가 쓰려고 새로 사둔 쉐이빙 크림이 분리수거 함에 넣어져 있었다. 벌써 저걸 다 썼나 싶었다. 방에 가니 준수는 나의 옷을 잘 다려 준비해놓았다. 이런 친절함들의 이유가 어젯밤에 다툰 것이 미안해서 그런 건가 싶었다. 난 옷을 입고. 현관문을 열고 나가기 전, 준수에게 키스했고 준수는 평소보다 좀 더 진하게 혀를 움직였다.


ㅡ 오늘 내가 다니는 병원에 한 명 더 예약 가능한 지 물어볼게. 병원 다녀야 돼 너 진짜로.

ㅡ 아니야. 내가 알아서 정리할 거니까. 괜찮아.

ㅡ 또 말로만.

ㅡ 아니야, 오늘은 진짜로. 내가 다 정리할 거야.

ㅡ 그래. 믿을게. 나 오늘 병원 갔다가 지영이랑 한 잔 할 거야. 좀 늦을지도 모르니까 기다리지 말고 먼저 자.

ㅡ 응.


준수는 짧은 대답과 함께 날 꼭 껴안았다.

ㅡ 사랑해. 알지. 정말로. 사랑해. 고맙고. 사랑해.


준수는 가루가 돼 옥색 항아리에 담겼다. 184센티가 넘는 그 큰 몸이, 그 작은 항아리에 다 담겼다. 장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준수와의 마지막 대화를 계속 곱씹었다. 침대에 누워 이불을 뒤집어쓴 날 원망하고 저주했다. 집에 도착해 문을 연다. 싱크대는 깨끗이 정돈되어 있고, 분리수거 함에는 여전히 준수의 새 쉐이빙 크림이 있다. 깊숙한 곳에는 그의 면도기도 있다. 정리한다는 게 이런 거였을까. 방에 들어가 옷장을 연다. 준수의 옷들이 가지런히 걸려있다. 셔츠 하나를 빼서 걸친다. 덩치가 커서 그런지 내 어깨를 전부 덮고 허벅지까지 감싼다. 준수의 냄새가 난다. 준수가 날 안아주는 거 같다. 아, 준수가 원했던 건 이런 거였을까. 그냥 따뜻하고 다정하게 안아주는 거. 이런 걸 원했던 걸까. 눈물이 흘러서 준수의 셔츠 소매가 젖을까 봐 무섭다. 내 눈물 때문에 준수의 냄새가 사라져 버릴까 봐 무섭다.


문 옆의 책상엔 준수의 핸드폰이 놓여 있다. 인스타그램에 좋아요가 눌렸다고 알림이 뜬다. 희미하게 미소를 띤 얼굴 사진과 #안녕 이라고 적혀 있는 그의 마지막 게시물에는 수백 개의 댓글이 달려 있다.


'요즘 많이 힘들어 보여요.'

'오늘도 화이팅'

'다음 셀카도 어서 올려주세용'

'우리 서로 소통해요'


난 왜 다정하지 못했지. 난 왜 다정함을 나눌 수 있는 환경에서 자라지 못한 거지. 난 왜 내 나약함을 나누려고 하지 않았지. 그게 준수에게는 다정함이었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난 왜 안 그랬지. 그냥 나도 나약한 사람이 될 걸. 좀 의존할 걸. 준수에게 좀 기댈 걸.


핸드폰을 켜서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ㅡ엄마, 나야. 보고 싶네. 엄마처럼 안 살 거라는 거. 그렇게 말해서 미안해. 엄마, 나는 왜 이러지. 나는 왜 이모양이지. 엄마, 엄마. 나 어떡하지 엄마.


난 엎드려 울었고 준수의 셔츠는 그런 나를 덮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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