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죄
준수는 같은 과 후배였고 나보다 두 학번 아래였다. 하지만 과에서 준수를 만나는 일은 없었다. 준수는 학과 활동을 하지 않는 애였고, (워낙 내가 소문이 좋지 못하기도 했으며) 가끔가다 마주쳐도 '쟤가 잘생겼다고 소문이 돌던 준수라는 애구나'정도로 생각했다.
그를 처음 만난 건, 내가 졸업반일 때 교양수업에서였다. 준수는 당시 2년의 휴학을 끝내고 복학한 상태였다. 그 나이 때 남자애들은 군대를 전역하고 복학하지만, 준수는 군대를 가지 않았다. 군면제를 받았음에도 친구들과 똑같이 2년을 휴학하고 돌아왔다. 학과에 한번 그의 군면제 사유에 대한 소문이 돌았었다. 그의 곱상한 외모 때문인지 게이라서 못 갔다는 소문이 기정사실화 됐다. 내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준수는 하관이 가여워 보일 정도로 뾰족했고 비타민 D 결핍이 의심될 정도로 피부가 하얬다. 왼쪽 눈에만 걸쳐져 있는 느끼한 쌍꺼풀과 아빠가 한기범 선수가 아닌가 의심될 정도로 키가 컸다. 게다가 말랐는데 어깨는 잘 벌어져 있는 그를 보고 있노라면 음악방송에서 끼를 부리느라 애쓰는 아이돌이 떠오르고는 했다. 적어도 그는 인스타그램에서는 10대 후반 ~ 20대 초반의 여성들에겐 아이돌이긴 했다. 스노우로 찍고 보정한 게 분명한 셀카를 올리기만 하면, 수천 개의 좋아요는 우스웠고 5분 안에 댓글은 백개를 넘어섰다. 댓글의 내용은 고양이 필터를 씌운 셀카를 프로필 사진으로 한 여성들이 80%였고 15%는 상의를 탈의한 채 근육을 뽐내는 남자들이었으며, 나머지 5%는 외국인들이었다. 성별과 국적은 달랐으나 그들이 준수에게 쓰는 댓글은 똑같았다.
'오빠 얼굴에 김 묻었어요... 잘생김이요ㅠㅠ'
'오빠 미모 보고 벽 부수다가 우리 집 원룸 됐어',
'틴더에서 봤는데ㅋ 이쪽이에요?'
'@emily This asian hottie makes me horny'
준수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그가 사진을 올릴 때마다 수백 명씩 늘어나더니 결국 가을 중반 즈음엔 20만 명을 돌파했다. 하지만 의외로 학교는 조용했다. 유치한 청춘 드라마처럼 가는 곳마다 선물 세례를 받는다거나 하는 그런 일은 없었다. 준수는 친구도 없이 홀로 수업을 듣고, 적당히 과제를 하고, 적당히 시험을 보는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그와 내가 처음으로 말을 튼 계기는 교양수업 마지막 날이었다. 그동안 수고했다며 교수는 회식을 제안했고, 유난히도 저학번이 많던 수업이라 (개중에 대부분은 준수의 얼굴이 궁금해서 신청했다가 그만 흥미를 잃어버린 신입생들이었다) 회식 참여율이 높았다. 난 취업도 잘 안 되는데, 공짜 술이나 맘껏 먹자는 생각으로 참여했다.
회식 장소는 캠퍼스 후문 뒤 골목에 있는 전과 막걸리를 파는 (기본 안주라고는 색소에 절여진 채 말라비틀어진 노란 단무지뿐인) 술집이었다. 어쩜 교수는 골라도 이렇게 낡아빠진 술집을 고르는지, 그의 센스에 탄식하며 자리에 앉았다. 그 술집의 테이블은 양 옆으로 긴 모양이었다. 열댓 명의 참석자 중, 오른쪽 대각선에는 같은 과 신입생 몇몇이 수근덕거리며 내 옆에 앉지 않으려 하는 눈치였고 왼쪽 대각선에는 개인과제는 성실히 해오고 팀별 과제에는 참석하지 않아서 나와 대판 싸운 우리 팀 사람들이 있었다. 모두가 나를 싫어하는 눈빛이었으니, 적당히 마시면 자리를 옮겨 팀원에게 시원하게 욕 한 바가지 날려주고 가려고 했다. 처음엔 정말로 기분 좋을 정도로만 술 취해 가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술을 마시고 첫 건배를 하자마자 준수가 들어왔다.
준수의 첫 입장은 꽤 재수 없어 보였다. 키도 크면서 높은 워커는 왜 신었는지, 출입문을 들어설 때 배꼽인사를 하는 수준이었다. 들어오자마자 늦어서 죄송하다며 능청스럽게 교수님과 악수하고 반가운 척하는 모습이 가식적으로 보였다. 한 발짝 늦게 들어와 주인공인 척하는 모습도 꼴값으로 느껴졌다. 그래, 남의 관심이 곧 재산이자 삶의 이유인 너 같은 애들은 평판이 중요하겠지- 생각하며 난 내 잔에 막걸리를 채우고 있었다. 그러다 준수가 (아무도 앉으려고하지 않아 텅 비어있고 재킷과 가방 같은 짐들만 쌓여있던) 내 건너편 자리에 앉았다. 준수는 쌓여있던 짐을 능숙하게 다른 의자에 두면서 내게 말했다.
"왜 혼자 따라서 드시고 계세요? 술은 그렇게 마시면 맛 하나도 안 나요~ 제가 드릴게요"
그는 특유의 눈웃음과 능청스러운 말투로 내가 들고 있던 하얀 막걸리통을 뺏어 들어 흔들었다. 활짝 웃으며 막걸리를 흔드는 그의 얼굴은 (인스타그램에 보정으로 떡칠해놓은 사진보다는 못하지만) 반반해 보였다. 왼쪽 눈은 쌍꺼풀 때문에 웃어도 동공이 반쯤은 보였지만 오른쪽 눈은 초승달 같았다. 누가 베어 먹어버렸는지 외롭게 윗부분만 남은 초승달. 하지만 초라하게 보이지 않으려, 어떻게든 밝은 빛을 뿜어내려 애쓰는 그런 초승달.
"막걸리는 흔들어 마시면 더 맛없어요. 첫 잔은 맑은 막걸리의 맛으로 마시고, 끝으로 갈수록 강해지는 맛으로 마시는 거예요."
난 괜히 약해 보이고 싶지 않아서 말했다. 막걸리야 뭐 어떻게 마시든 상관은 없었지만, 능청스럽게 다가오는 그의 모습이 썩 맘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 호의를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세상에, 그거 저만 아는 비밀인데 어떻게 아셨어요? 그걸 아신다는 건 만만찮은 주당이시라는 건데!"
준수는 호들갑을 떨며, 자신의 하얀 라미네이트를 드러내 웃어보면서 내 잔에 막걸리를 따라주었다. 난 그의 인위적으로 하얀 미소를 더 쳐다볼 자신이 없어 시선을 아래로 향했다. 꼴꼴꼴. 난 하얀 막걸리가 울퉁불퉁하게 찌그러진 내 잔 속에 조금씩 채워지는 모습을 바라봤다.
"저는 막걸리가 좋아요. 이렇게 한국전쟁 때부터 썼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울퉁불퉁한 잔에 마시는 막걸리요. 이 잔은 이렇게 구부러지고 다쳤어도, 자기 책임을 다 하잖아요. 눈처럼 새하얀 술을 받아서 누군가에게 전달해야 하는 책임. 그걸 전달받은 사람은 마시고 기분이 좋아지잖아요. 그것보다 멋진 게 어딨겠어요."
준수는 특유의 초승달 눈을 지은 채 말했다. 솔직히 처음 들었을 땐 무슨 3류 인터넷 소설 같은 대사 같아서 오글거렸다. 하지만 인스타그램에 #맞팔 #훈남 #ootd 같은 관심종자 짓만 하는 줄 알았지 이런 비유법까지 활용하는 재주가 있는 줄은 처음 알았었다. 난 준수가 따라준 잔을 받고, 그에게도 막걸리를 따라주었다.
"에이 설마 뻔하게 상처 입은 막걸리 잔처럼, 아파도 남을 위해 애쓰고 책임을 다 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그런 오글거리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니시죠?"
난 그의 갈색 눈동자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흰 피부에 유난히도 밝은 갈색의 눈동자였는데, 나는 단번에 그게 서클렌즈인 것을 알아챘다. 짜식. 아주, 엄청 꾸미고 나왔구만.
"오~ 뭐야 뭐야~ 내 마음 읽은 거 아니야? 비유가 너무 유치했나요? 그런 의미로 짠 한번 하시죠!"
준수는 여느 예능 프로그램의 희극인들처럼 자연스러운 리액션으로 건배를 유도했다. 그가 완전히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SNS 관종에 외모 꾸미는 것에 집착하는 게이라는 소문이 자자한 나보다 두 살이 어린, 하지만 자신이 잘 생긴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재수 없는 모습 외에) 의외의 모습을 보았기에 그와 짠을 셀 수 없이 했다.
교양수업에서 만난 대학생들의 술자리에서 하는 얘기는 으레 비슷하다. 조모임에 성실히 참여하지 않은 개새끼의 뒷담화. 그런데 걔 개인과제는 아주 잘했더라, 뭐 그런 개만도 못한 새끼가 있냐- 같은 얘기들. 그러자 준수는 한 술 더 떠서, 자기는 조원들이 너무 멍청해서 자료조사부터 PPT 제작과 발표까지 전부 도맡아 했다고 말했다. 준수의 조원들은 조모임만 하자고 하면, 삼촌이 돌아가셨대니, 할아버지 제사라느니 온갖 핑계를 댔다고 한다. 듣다가 빡친 나는, 핑계로 성공한 사람은 김건모 말고는 없다 이 새끼들아, 걔네 어딨냐 당장 불러라- 책임감 없는 애들은 다 죽여야 된다. 내가 전부 조져주겠다고 온갖 헛소리를 지껄였다. 준수도 맞장구치며, 맞다- 책임감 없는 놈들은 다 죽어야 한다며- 초승달을 눈에 걸어두며 웃어댔다.
술기운에 시야가 흐려졌음을 차렸을 땐 이미 대부분의 애들은 집에 갔고, 교수는 맞은편에 앉은 최고령 졸업반 학생에게 사회생활에 대해 충고질을 하고 있었다. 나를 보고 수근 대던 같은 과 신입생들은 어느새 내게 팔짱을 끼고, 듣던 대로 언니 너무 멋지고 쿨하다며 내 품에 머리를 비비고 있었다. 놔라 이년들아. 난 솔직하지 못하면 뒤지는 병을 어렸을 때 걸린 몸이다. 가식 떠는 새끼들 있으면 데려와라, 이 언니가 싹 다 갈아엎어주겠다. 이런 허세를 부리니 신입생 중 한 명은 까르르 웃더니 속이 안 좋은 듯 입을 막고 화장실로 뛰어갔다. 나머지는 그가 걱정됐는지 따라 들어갔고, 테이블엔 나와 준수뿐이었다. 준수도 나도 이미 취해 있었다. 빨간색 니베아로 입술 색을 살렸던 준수의 입술은 보라색이 되어 있었으니까. 뭐 물론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입었던 나의 청바지는, 술배 때문에 지퍼가 터지기 직전이었다.
교수가 계산을 하지 못할 정도로 완전히 취하기 전에, 신입생들이 귀찮게 엉겨 붙기 전에 탈출하기 위해 난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백을 챙기고 외투를 챙기려 준비했다. 그때 준수는 울퉁불퉁하게 상처 입은 잔을 뒤집으며 말했다.
"책임감 없는 사람을 단죄할 수 있는 건, 그 책임감의 부재로 피해를 입은 사람뿐이 없지 않아요? 살인자가 누구를 죽였으면, 그의 가족 말고는 그를 단죄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거 아니냐고요."
난 그때 초승달만 걸려있던 그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살기 어린, 근데 조금은 눈물이 차오른 달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