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자는 가면 뭐 하나요?
2025년 3월 초.
아빠의 자가이식 2차 입원일이 됐다.
입원 전날, 다행히 미뤄지는 것 없이 입원날짜에 맞춰서 병동으로 오라는 원무과의 안내 전화를 받았다.
1차 입원 때는 동생을 제외한 온 가족이 병원에 왔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2차 입원에는 나와 엄마만 동행했다.
캐리어에 넣을 수 있는 것은 테트리스하듯 맞춰 넣고, 남은 것들은 엄마와 내가 나눠 들었다.
눈이 많이 온 날이라 택시 타고 가면서도 길이 미끄럽지 않아야 할 텐데 하면서 걱정한 기억이 난다.
병원비 자체도 부담스럽지만, 그것 외에도 돈 쓸 곳은 차고 넘쳤다.
주보호자는 엄마였고 이번에도 나는 짐꾼으로 차출된 것이라 여겼는데, 조혈모세포 병동에 들어가는 것은 내가 되었다.
그 이유는 엄마 역시 유방암 치료 이후 팔이 붓지 않게 조심해야하는 환자였고, 병원에서도 무거운 것은 절대 들게 하지 말라고 당시 주치의에게 경고를 단단히 들었기 때문이다. 또, 무릎 관절을 주의해야 하는 상태이기도 했다. 바닥에 캐리어를 펼쳐놓고 쪼그려 앉아 사물함에 물건을 정리하는 게 무리가 될 거라는 판단 하에 내가 들어가기로 했다.
암 병원을 10년 넘게 다녔는데도 여전히 길을 헤맬 곳이 남아 있었다. 이건 추후에 병동에서 아빠 간병하는 동안 지리를 전부 외우게 됐는데, 익숙해졌다는 게 전혀 달갑지 않았다. 그만큼 자주 왔다 갔다 했다는 뜻이니까.
조혈모세포 이식 병동으로 올라가니 아빠는 간호담당 직원분과 먼저 병실 쪽으로 들어갔고, 엄마는 병동 휴게실에서 잠시 대기하기로 했다. 직원 분께서 아빠 짐이 있는 캐리어를 받아주셨다.
나는 직원의 안내로 들어간 보호자 대기 구역에서 신발을 벗고 신발장에 내 신발을 잘 넣어둔 뒤, 구비된 슬리퍼로 갈아 신었다. 비치된 세면대에서 손을 꼼꼼하게 씻고 그 옆에 보이는 문을 열고 나가니 직원분께서 기다리고 계셨다.
일회용 가운을 입어야 한다고 하셔서 옷 위에 그 비닐(?) 가운을 걸쳤다. 3월이 되어 마치 당장 봄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여전히 겨울 날씨였다. 두꺼운 맨투맨 위로 비닐 가운을 입으니 매우 더웠던 기억이 난다. 그 뒤로는 직원의 안내에 따라 아빠의 병실로 따라갔다.
조혈모세포 이식 병동에서는 보호자 상주가 허용되지 않으므로 필요한 물품은 전부 개인 사물함에 보관해야 한다. 환자가 직원분께 필요한 것을 말하면 사물함에서 가져다주는 방식이라고 직원에게 설명을 들었다. 사물함의 아빠 자리에 캐리어를 펼쳐놓고 좁은 사물함 안에 가져온 것을 테트리스하듯 쌓아 올렸다.
시간제한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때 나는 이 작업을 빨리 해치우고 나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서두르는 모습에 직원 분께서 천천히 해도 된다고 했다. 이곳은 환자들이 나올 수 없는 구역이긴 하지만 그래도 최대한 머무르는 시간을 줄이고 싶었다.
가져온 캐리어에는 병실에서 짐 정리를 마치고 난 뒤, 아빠가 입고 온 옷을 넣어두었다. 사물함엔 캐리어를 넣을 자리가 없어서 의아했는데, 캐리어만 보관하는 공간이 따로 있었다. 직원 전용 공간이라 내가 들어가진 못했고 커리어째로 문 앞에 두고 나가면 정리하겠다는 말을 듣고 나왔었다.
사물함에서 당장 쓸 물품만 골라서 병실로 가져왔다. 이 단계를 모두 찍었던 이유는 조혈모세포이식병동에 나 혼자 들어왔기 때문에 가족들이 궁금해할 것 같아서였다.
침대 옆 자리에 트롤리가 있어 여기에 물품을 정리해 두고 아빠에게도 하나하나 설명했다.
조혈모세포이식병동은 일반 병실과 다르게 두툼한 비닐 커튼이 쳐져있고, 조명은 매우 어둑하다. 누워있는 환자들 역시 고된 치료과정에 많이 지친 듯해 보였다.
트롤리에 짐을 정리한 이후에는 직원 분의 설명이 이어졌다. 병실에 딸린 화장실에 대한 것, 샤워 일정에 대한 것―깔끔 떠는 아빠에게는 매일 샤워할 수 없다는 게 매우 곤욕스러웠을 것이다―, 찜질팩을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대한 것.
마지막으로는 공용 냉장고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냉장고엔 가져온 음료와 물을 대부분 넣어뒀는데, 트롤리에 몇 병 꺼내두기도 했다. 내가 나가고 난 뒤에는 본격적으로 고용량 항암이 시작될 텐데 그러면 냉장고까지 가기도 힘들 것 같아서였다.
음료 외의 식품 중 반입이 가능한 것은 멸균제품인데, 우리 집은 레토르트 식품을 잘 먹지 않는 집이라 오랜 검색 끝에 컵밥 몇 개와(개중 그래도 건강식처럼 보였음) 과일 통조림을 넣었지만 이건 그대로 다시 가져왔다.
아빠가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여러 서류에 직원이 설명한 내용을 잘 들었다는 뜻으로 서명하는 것을 바라봤다.
침대 한 편에 아빠가 벗어둔 사복을 챙겨 들고 나오기 직전 아빠에게 치료 잘 받고 나오라며 응원의 말을 했다. 아빠는 걱정할 것 하나도 없다고, 얼른 엄마 챙겨서 집 가라는 말을 듣고 병동을 나오는 데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늘 부모님이 내 보호자였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역전된 관계가 여전히 적응되지 않기도 했고, 면회가 안 되는 곳이다 보니 걱정이 걱정을 낳아서 그런지 불안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보는 것만으로도 지긋지긋한 주사액이 주렁주렁 걸린 링거 폴대.
입원항암 예후가 좋아 조혈모세포 이식 전 맞는 고용량 항암도 잘 이겨낼 거라는 예상과 다르게 이 과정이 아빠의 몸에 큰 무리를 주었고, 퇴원은 예상보다 훨씬 늦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