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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수화 Oct 12. 2024

신(神)의 선택ㆍ3~G

     


 부산한 소리에 깨어났다. 핵전쟁으로 우왕좌왕하던 인간의 무리는 온데간데없고 익숙한 얼굴들이 눈에 띄었다. 남편을 비롯, 피붙이의 배우자와 조카들로 잔뜩 채워져 있었다.

화장실에서 나오니 두 명의 경찰관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의 차를 타고 내린 곳은 읍내 경찰서였다.

철창살로 된 유치장 안에 큰오빠와 언니가 새우처럼 구부린 채 자고 있었다.

“이현숙 씨, 먼저 휴대폰 제출해 주시구요, 여기 앉아보세요. 그리고 신분증 이리 주세요.”

 현숙은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 옆에 서 있는 경찰에게, 신분증은 앞에서 컴퓨터를 두드리는 경찰에게 내주었다.

“이○○와 어떤 관계세요?”

“둘째 오빱니더.”

“어제 형제들과 무슨 모의를 했어요?”

“모의라뇨, 설마 적국 스파이와 내통했는지를 묻는 건 아니죠?”

“지금 장난하는 겁니까?”

“설마 저희가 동생을 죽였을 거라고 의심하나요? 차라리 누가 죽였으면 덜 슬플 것 같네요!”

“그렇게 시치미 떼도 조사하면 다 나옵니다.”

“이미 경찰과 의사가 사인을 확인하고 장례 절차를 밟은걸요.”

“이봐요! 이현숙 씨! 지금 우리가 말장난이나 하자고 이렇게 부른 줄 아세요?”

“저 역시 말장난할 기운도 의욕도 없습니다.”

“어제 형제들과 홍석표를 죽이자고, 모의했어요 안 했어요?”

“네에? 그 사람이 죽기라도 했나요?”

“예, 아니오로 답해주세요.”

“그러한 마음까지 부정하지 않겠지만, 사람의 죽고 사는 문제는 오로지 신의 영역인지라.”

“모의했다고 기록해도 되죠?”

“나라님 없을 때 나라님 욕하는 것까지 법의 잣대로 심판하는 세상은 아닐 테니 알아서 하세요.”

 

 경찰과 언성을 높여가며 싸우고 있는 사이 철문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유치장 안에서 자고 있던 큰오빠와 언니가 눈두덩 부은 얼굴로 현숙의 옆으로 다가왔다.

“좀 잤나?”

“둘째 오빠는?”

 언니와 현숙이 서로 엇박자 질문을 주고받는 사이, 경찰이 현숙에게 고함을 질렀다.

“이현숙 씨! 제 질문에 답하시구요, 두 분은 저쪽으로 가세요!”

“무슨 질문이었죠?”

“지금 뭐하자는 겁니까?”

“경사님, 동생이 어젯밤 수면제를 과다 복용했는지 저희가 아무리 깨워도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저쪽으로 가던 언니가 되돌아와 현숙을 대신해 답해 주자 현숙이 둘째 오빠에 대해 재차 물었다. ‘가마이 있으라’며 언니가 현숙의 귀에 대고 소곤거렸다.     


 경찰관들의 교대가 이루어지는 시간, 형제들을 어느 조사실로 몰아넣고 아침 식사를 넣어주었다. 깍두기 하나 있는 갈비탕이었다. 

 세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언니가 충격적인 소식을 털어놓았다. 둘째 오빠가 차를 몰고 가다 교통사고를 냈는데, 사람이 죽었다는 것이다.

“죽은 사람이 설마 군수야?”

“누가 듣는다, 고마 밥 무라!”


 이틀 동안 밥알이 목구멍에 걸려 도저히 넘어가지 않았다. 냄비에 물을 넉넉하게 부은 뒤 밥을 풀어 걸쭉한 죽으로 만들어 억지로 위장까지 흘려 보냈었다. 죽지 않기 위한 투쟁이나 다름없었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갈비탕과 하얀 쌀밥, 빨간 깍두기에 짐승 같은 식욕이 일었다. 밥공기를 들어 수저로 반 바퀴를 돌림과 동시에 국그릇에 얌전히 들어 앉혀 깍두기 국물을 몇 숟가락 떠 넣었다. 이어 며칠 굶은 사람처럼 입속으로 퍼 올렸다. 고기의 육즙과 쌀알의 달짝지근한 감미, 깍두기의 아삭거리는 식감까지 골고루 느끼는 혀의 섬세한 기능이 감탄스러웠다. 뱃속에서 음식을 끌어당기기는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가뭄으로 쩍쩍 갈라진 논에 물 들어가듯 갈비탕 국물이 순식간에 위장으로 흡수되었던 것이다.


 두어 시간 조사를 더 받은 뒤 현숙은 풀려나고, 오빠와 언니는 아직 경찰서에 붙들려 있었다.     

장례식장으로 돌아오니, 그녀가 나갔던 장소가 맞나 싶을 정도로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주차장을 가득 채운 차들로도 모자라 앞길까지 쭉 늘어서고 있는 데다, 여전히 들어오는 차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경찰과 주차 관리를 하는 사람까지..., 미지의 세계에 툭 떨어진 듯했다.


 출입구 앞에 ‘대한민국 대통령 ○○○’이라는 글귀가 새겨진 커다란 화환이 현숙의 눈을 사로잡았다. 

그 주변으로 TV에 등장하는 알만한 정치인들 이름을 단 화환들이 복도를 빈틈없이 채웠다. 계속 들어오는 화환들은 1층 복도를 꽉 채운 뒤 2층 복도까지 겹겹이 세워졌다. 여전히 들어오는 것들은 더 이상 처치가 곤란한지 이름적힌 꼬리표만 떼고 도로 내보냈다. 

 이상한 에너지로 몸이 붕 뜨는 듯한 기분을 느낀 현숙은 그곳이 장례식장이라는 사실조차 잊은 채, 세계 유명 박물관 관람한듯 곳곳을 누비며 돌았다. 



 동생의 빈소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한줄기 빛조차 소리조차 들지 않던 101호였는데, 우주에서 사람을 쏟아놓은 것처럼 득시글거렸으며, 통곡과 울부짖음이 난무하는 지옥의 풍경으로 탈바꿈돼 있었던 것이다.


 현숙은 그때서야 군수 석표의 죽음을 실감했다. 

 군수 자택이 대구 시내였던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굳이 빈소를 읍내 장례식장에 차린 이유가 뭘까? 아마 관할 지자체 수장으로서 마지막까지 군민들을 사랑했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싶어서였을까? 어쩌면 벌써부터 후임 자리에 군침을 삼키는 자들의 정치적 술수인지도.

 읍내에 있는 단 하나의 장례식장, 그중에서도 가장 크고 호화로운 특실에 동생의 빈소를 마련했었다. 동생이 떠난 자리, 석표가 운명처럼 들어왔다.


 현숙은 경찰에 제출한 휴대폰을 돌려받지 못한 채 나온 탓에 가족과의 연락이 두절돼, 어리둥절한 정신으로 장례식장 사무실을 찾았다. 고(故) 이종현의 빈소는 오늘이 발인이어서 정리했으며, 경찰에서 장례식을 보이콧했기에 시신은 냉동고에 있다고 했다.

현숙은 사무실 전화를 빌려 가족들 위치를 확인하고는, 천천히 장례식장을 빠져나왔다.


남편과 형부 올케, 비속(卑屬)들이 모여 있는 커피숍에서 구체적인 사건의 전모를 들을 수 있었다. 둘째 오빠가 군수 관용차를 타고 퇴근하던 석표 차를 추격하며, 신호등에서 대기하던 그 차를 들이받았단다. 군수 차 앞에 또 다른 차가 있었지만, 차량 뒤 범퍼만 파손되고 큰 부상은 없었다고.


 그날 오후 큰오빠와 언니도 풀려났다. 모두는 대구 큰오빠 집에 모여 ‘동생의 시신을 화장해도 좋다’는 경찰의 연락을 기다리며, 둘째 오빠에 대한 대책을 이어 나갔다.

 면회하고 돌아온 둘째 오빠네 가족들에 의하면 퇴근하는 석표에게 잠시 이야기 좀 하자고 했으나 차를 타고 쌩 가버리기에, 그를 쫓다가 우발적으로 발생한 사고라 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형제들은 똘똘 뭉치기로 했다. 대형 로펌 변호사를 선임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고, 그 일은 전적으로 큰오빠가 맡겠다고 나섰다.


 동생의 죽음 앞에 완벽하게 붕괴되었던 그들이었다. 한 사람의 죽음 앞에 방전되었던 배터리가 다른 한 사람의 죽음으로 다시 살아 움직였다. ‘누군가의 불행이 또 다른 누군가의 행복으로 연결된다’는 내용의 말이나 글귀들을 접할 때마다 인간의 한계가 고작 그 수준이라는 사실에 실망을 금치 못했지만, 인간 저변의 심리를 이보다 잘 드러낸 표현이 없을 듯했다.

 잔치 음식같이 풍성한 밥상에 둘러앉은 이들의, 미처 섞일 새도 없이 목젖으로 넘겨버리는 현란한 혀들의 움직임은 찬란한 행위예술이었다.     


 이틀 후 경찰에서 화장해도 좋다는 연락이 왔다.

장의차를 불러 모두 동생의 시신이 안치된 읍내 장례식장으로 갔다. 냉동고에서 꺼낸 동생은 처음 시골집에서 발견했을 때의 험악했던 모습과는 다르게 오히려 편안해 보였다. 여기저기 꿰맨 자국들이 있었지만, 그의 눈은 잠자듯 평화롭게 감겨있었다. 형제들의 억장이 수백 번 수천 번 무너져 내렸던, 입가로 흘러내린 피 또한 깨끗하게 닦여 원래의 잘생긴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장례지도사에 의해 곱게 화장이 되는 동안 간간이 울음들이 새어 나왔지만, 현숙은 비교적 담담하게 동생의 마지막을 뇌리에 새겼다. 

    

 장의차에 동생의 시신을 싣고 대구의 화장장으로 향했다. 커다란 굴뚝이 서 있는 제조공장 같은 건물로 들어서자 완장을 찬 안내원이 형광봉을 들고 위치를 안내해주었다. 가리키는 곳에 수십 대의 장의차가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긴 기다림 끝에 큰오빠가 내려 접수를 하고 번호표를 받았다. 순번이 무려 수십 번 뒤였다. 죽음 역시 살았을 때의 병원 진료처럼 대기표를 뽑고 기다려야 하는, 삶과 죽음이 쌍둥이처럼 닮았다고 모두들 입을 모았다.

차에서 내린 가족들 모두 대기실로 향했다.


 넓은 대기실은 상복 차림과 일반 복장을 한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 북적거림은 마치 70~80년대의 명절 연휴 귀향·귀성하는 고속버스 대합실이나 고속도로 휴게소 같기도 했다.

 언니가 매점에서 신문을 몇 부 사와 한갓진 구석자리에 장장이 펼쳐 깔고 형제들을 불렀다. 모두는 소풍 나온 듯 그 위에 올라앉았다. 조카들과 현숙의 아이들은 연신 매점을 들락거리며, 역시 소풍을 즐기는 모습들이었다.

 유족들이 득실대는 대기실의 분위기가 어둡지 않은 것을 의아해하던 현숙은 언니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고개가 끄덕여졌다. 대한민국 평균 장례 절차인 2박 3일 동안 눈물이 다 빠졌다는 것이다. 처음 죽음과 맞닥뜨린 후 모두는 진정으로 슬퍼서, 조문객의 발길이 이어지는 동안 그들이 가져온 마중물에 울고, 정작 마지막 작별 시엔 모든 에너지를 소진하여 허탈과 허무밖에 남지 않은….


 소소한 잡음들로 일정한 질서가 유지되던 대기실이 갑자기 술렁거렸다. 구슬픈 통곡 소리가 들이닥쳤기 때문이다. 며칠간의 장례의식을 치르고도 저렇게 울 힘이 남아있는 건 참척을 당하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이기에, 대기실 사람들의 눈길이 일제히 그리로 쏠렸다.

“석표다!”

 헝클어져 쩍쩍 달라붙은 머리카락, 영혼이 빠져나간 듯 희미하게 풀린 눈…. 누가 누군지 구분조차 힘든 석표네 혈육들을 현숙은 카메라 줌 당기듯 클로즈업했다. 한줄기 빛조차 스미지 않는 그 절망의 늪을.


오랜 기다림 끝에 동생의 차례가 왔다. 화장장 앞에서 간단한 제를 지낸 뒤 동생의 육신을 소멸하도록 들여보냈다. 다시 대기표를 받고 기다려야 했다.

간만에 빈자리가 몇 개 나와 형제들이 나란히 앉아 꾸벅꾸벅 졸았다.

“저봐라!”

언니가 졸고 있는 가족들을 툭툭 치며 가리키는 전광판엔 ‘홍석표’란 이름이 선명하게 올라와 있었다. 몇 시간이나 기다린 그들보다 더 빨리 나왔다.

뒤이어 '이종현'도 도자기에 담긴 한 줌 재로 나왔다. 

두 유골함의 부피와 무게는 같아 보였다. 

 신(神)이 처음부터 두 사람을 세상에 함께 내놓았다 함께 데려갔는지 모를 일이다.

가족들은 이 모든 일 또한 ‘신의 선택’이라 믿었다.(끝)

        

(다음주에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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