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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수화 Oct 18. 2024

인간 등급-1

단편소설


  


 지수네는 연매출 200억을 상회하는 중소기업 M사를 운영하고 있다. 회사는 자체 원천특허기술을 보유한 국내에서 비교적 규모가 큰 환경사업체다. 벽돌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모든 생산설비를 그들 부부가 직접 개발하고 제작하여 오늘날에 이른, 명실상부한 성공 신화의 주역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변에서 코스닥에 상장하라고 부추기는 이들이 많지만 굳이 그럴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회사 재무구조가 튼튼한 데다 주주들에게 휘둘리기 싫어하는 남편의 근성과 자식들에게 물려주어 가족기업으로 발전시키고 싶은 지수의 마음이 일치했기 때문이다.

 이만한 기업으로 발전하기까지 M사만의 특별한 기술력을 무시할 수 없지만, 지수는 남편의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고 깊은 점을 또 다른 성공 요인으로 꼽는다. ‘사업도 결국 사람장사’라며 직원 관리를 최우선하는 경영방식이다. 회사는 영리를 바탕으로 존재하고 영리는 인간이 바탕하기에, 직원 이직률이 낮다는 자체로 큰 소득이 아닐 수 없다.


 회사 규모가 커짐에 따라 직원 수가 늘어나며 지수의 역할이 점점 줄게 되었다.

- 당신 이제 쉬면서 취미활동이나 할래? 인생에서 가장 재미있는 게 골프와 딸 키우는 거라는데, 딸이 없으니 골프라도….

 그동안 회사일 집안일, 육아 등, 전천후 삶을 살아온 아내에 대한 속 깊은 배려에서였지만, 자칫 경영에서 손 떼라는 말로 들리지 않을까, 남편의 말은 어느 때보다 조심스러웠다.


 뼛속까지 서민의식으로 가득 찬 사람이 서민 대통령이 되겠다는 공약(公約)을 내걸고 자리에 올랐지만 공약(空約)으로 증발해 버리는 이유는, 수장을 축으로 자연발생적 권한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회사 대표가 제아무리 직원을 가족처럼 생각한다 해도 직원들이 느끼는 위화감을 없앨 수 없는 이유와 마찬가지다.

 직원들이 두 시어머니를 모시는 것 같은 분위기에 지수 역시 생각이 많았다. 나라님 없을 때 나라님 욕도 하고, 대표가 없는 자리에서 그를 욕할 수 있는 분위기라야 건강한 사회며 회사라는데 부부의 이견이 없었기 때문이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회사를 물러나게 된 지수는 처음 무한정 주어지는 자유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몰라 우두커니 하루해를 넘기기 일쑤였다. 공장을 놀이터 삼아 자란 아이들도 성인이 되어 엄마의 잔 손길을 필요로 하지 않는데다, 낮이면 줄곧 혼자 있는 집에 가사(家事)가 많을 리도 없었다.


 남편과 주변의 권유로 골프를 시작했다. 연습장을 찾고, 운동에 적합한 패션을 갖추기 위해 백화점 명품관을 들락거리고, 필드에 나가는 날은 멤버들과 저녁까지 먹고 오기 예사여서 집을 비우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다.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 줄 모른다는 표현이 딱 맞아떨어지는 나날이었다. 무슨 일이든 한 번 꽂히면 미친 듯이 빠져드는 그녀 성격도 한몫했다.

 

 종일 바깥을 쏘다니다 오는 날엔 현관 구석의 배달 음식 빈 플라스틱 용기들이 그녀를 노려보곤 했다.

 쌓여가는 백화점 쇼핑백, 골프용품 등, 스스로 도가 지나침을 인식할 무렵 남편이 먼저 입을 열었다.

- 회사에 정기적으로 출근하지 않고도 당신이 좋아하고 할 수 있는 일이 뭐 없을까? 초·중학교 시절 백일장 나갔다 하면 상(常)을 받았던 것 같은데, 그 달란트로 우리 회사의 설립 배경부터 성장 과정을 기록하는 거 어때? M사는 물론 가문의 역사서가 되리라 믿어.


 그들 부부는 초·중학교 동기동창이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지수를 짝사랑했던 남편은 그녀 주변을 그림자처럼 어른거린 끝에 결국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아내의 학교 생활에 대해 가끔 지수 본인보다 더 자세하고 세밀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지수는 기꺼이 남편 의견을 받아들였다.

 

 호기롭고 의욕적으로 시작한 프로젝트에 제동이 걸린 것은 2019년 말미에 일어난 전염병 때문이었다. 남편은 회사와 직접적 연관이 없는 외부 인사를 통제하며, 지수에게도 자신의 연구 노트와 업무일지를 전해주며 집에서 하도록 했다.


 뒤숭숭한 지구촌의 위기가 M사라고 피해가지 않았다. 코로나에 감염된 고령의 직원 몇 명이 회사를 떠난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회사 설립 초기, 핵심 인력이었던 용접, 전기, 배관 기술자들을 구하기 힘들어 타기업체나 기관 등에서 퇴직한 고령자들을 채용했었다. 현장 일을 기피하는 추세로 그러한 기술자의 수효가 적은 데다, 그마저 이름 없는 중소기업에 관심을 두는 이가 적었던 까닭이다. 원년 직원들은 본인들이 원하는 한 종신고용 하겠다고 공언해온 터였지만, 시대의 불운에 감염된 그들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예전 같지 않게 비어진 자리는 금세 채워지고, 총무부장 자리만 공석으로 남아 있었다.     


 어느 날, 퇴근한 남편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 총무부장이 좀….

- 어머, 채용했어?

- 응.

- 그래에? 어떤 사람이야?

- 경력직 채용하려고 M고 밴드에 올렸더니 수 명이 지원했더라. 그중 한 명이 회사로 찾아왔기에….

- 당신 고등학교 동창이라고?

- 맞아. ‘은행 등지’를 두루 전전한…. S대 출신이야.

- S대에? 보나마나 재원일 것 같은데? 그리고 ‘은행 등지’에서는 무슨 말이야?

- 여기저기 많이 옮겨다녔더라구.

- M고등학교 동창, S대…. 이름이 뭐지?

- 당신이 내 동창 중 S대 들어간 사람을 다 알아?

- 두어 명 정도 알고 있어.

- 그중 썸 탄 친구가 있었나?

- 썸이라… 미모 보고 다가서더니 학벌 보고 돌아섰다고 할까, 일방적으로 차인 셈이지.

- 어떤 놈인지 큰 실수를 했군. 당신과 결혼했으면 M사가 그의 것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 누가 아니래. 나는 남자가 나보다 똑똑하지 않다고 생각되면 마음이 열리지 않았어. 아마 사람보다 명문대 타이틀에 더 집착했던 듯….

- 나는 돈은 내가 벌면 된다고 생각했지, 맹세코 여성의 조건에 관심을 둔 적 없어. 그래서 당신과 결혼했지만. 흐흐.

- 야! 류재성! 초·중학교 시절 나보다 공부 잘한 적 있어? 으어? 말해봐! 내 눈 한 번 똑바로 바라본 적 없잖아?

- You’re right. 당신 눈이 그렇게 사나운 줄 결혼하고 처음 알았지.

- 히히히히, 다들 내 눈이 독사 내지 지옥이라고 해. 열등감이 높은 사람일수록 타인을 통해 대리만족 느끼려는 심리가 강하잖아. Yes, I was!

- 세상사 절대 선(善)도 악(惡)도 없을뿐더러, 높은 곳을 오르려고 하는 인간 심리는 본능이니 그런 마음을 꼭 나쁘다고만 할 수 없겠지. 수학 과학 쪽과 문화 예술 방면으로 발달한 두뇌를 획일적 잣대로 재단한 우리 시대의 교육에 오류가 있었던 점은 분명하지만.

- 인정! 1, 2, 3 등으로 줄 세운 틀 안에 들어가려고 안간힘을….

- 그렇다고 당시의 교육 관행을 모두 부정할 수는 없지. 무슨 지식이든 사회와 만나며 뇌의 확장성이 이루어지기 마련이므로. 단지 그 틀 안에 스스로 갇히는 걸 경계해야…. 총무부장처럼….

- S대 출신이라고 어지간히 잘난 척하나 보군, 이름이 뭐냐니까?

- 이○○, 혹시 아는 사람인가?

- 생소한 이름이네.

- 나도 동창회에서 두어 번 마주친 게 다야. 고등학교에서도 문·이과로 나눠져서 같은 반인 적이 없었거든.

- 그래서 어떻게 하려고?

- 어쨌든 우리 회사와 인연 맺은 사람이니, 두고 봐야지.

- 뭐가 문제지? 일을 못 하나?

- 다른 직원들과 융화가 안 되는 눈치야.

- 당신 혹시 S대 출신에게 열등감 느끼는 건 아니지?

- 허허허허… 지방대도 겨우 들어갔던 실력에 S대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했던 건 사실, 그러나 부모님 생선 가게에서 일손 보태며 학업 이어간 일이 우리 사업의 모태가 되었으니…. 인생의 어느 마디에서나 최선을 다하고 살아왔다는 데 스스로 점수를 주고 있어.

- 키이야아아! 누구 신랑 참 멋지다!      


 2022년도 중순으로 접어들었다. 코로나가 여전히 지구인을 위협했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를 차단하는 일이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우세하다는 여론으로 바뀌며 정부가 거리두기를 폐지했다. 경기 침체와 자영업자들의 한숨이 깊어지며 노약자를 제외한 일반인들은 조심스레 일상을 회복해가고 있었다. M사도 슬슬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 내일 ○호기 ○단계 공사… 100톤 크레인을 불러 캐스타블 내화물(castable refractories) 설치작업… 당신 와서 보면 좋을 거야.

 저녁 식사를 끝낸 후, 후식으로 과일을 먹으며 남편이 말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코로나 발발 이후 2년여 동안 회사에 발을 들이지 못해 회사의 제반사항이 궁금하던 터였다. 특히 총무부장 자리에 앉은 ‘S대’란 단어가 그녀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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