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
나는 매일 일기를 쓴다. 그냥 일기는 아니고 감사일기다. 뭐 그리 길지도 않은 감사함에 대한 일기다. 오늘 하루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감사하다는 내용이 전부다. 이런 일기를 쓰게 된 계기는 인간의 본성이.. 아니, 그냥 내 본성이 그리 일관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랄까?
누구는 연애를 할 때 상대방의 장점을 본다고 하고, 누구는 결혼할 때 상대의 단점을 커버할 수 있는지를 본다고 한다. 뭐 사람마다 다 다를 거다. 사실 사람의 장점을 주로 보고 발전시키고, 서로 합심하는 게 가장 건강한 연애이겠다. 이론적으론 말이다. 다분히 이론적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사람은 성악설이기 때.. 아니, 내가 성악설론자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익숙함의 동물이다. 그래서 처음 자극을 받았을 땐 반응을 한다. 근데 익숙해지면 자극의 강도는 동일한데 반응을 하지 않는다. 마음과 생각, 관심의 문제뿐 아니라 심장도 두근거리지 않고, 몸에도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 게 익숙해진 인간의 현실이다. 익숙해지면 몸과 마음, 둘 다 무감각 해지기 마련이다.
장점과 매력을 본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 장점과 매력은 오랜 연애를 거치다 보면 당연한 게 되어버린다. 연애 초기, 혹은 사귀기 전을 생각해보면 얼마나 행복하고 설렜는지... 사소한 것에도 감사하고 기다리게 되는 찌질이가 되어버린다. 데이트 약속을 받아낸 것에 행복해하고, 나에게 먼저 연락을 한 것에 즐거워하며, 처음 스킨십을 할 때 심장의 두근거림에 설레 한다. 근데 익숙해지면 이런 것들이 너무나 당연해지고 가치 절하가 되어버린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로 착각하는 게 사람의 본성인 걸까?
그래서 나는 건방져지지 않기 위해 매일 감사일기를 쓰곤 한다. 사소할 수도 있는 오늘의 경험이 사실 너무나 감사한 일이기 때문이다. 재밌는 영화를 함께 볼 수 있는 것, 함께 저녁의 청계천을 걸을 수 있는 것, 내가 준 선물로 즐거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것. 이 모든 것들이 내 옆에 그 사람이 있기에 일어나는 사건과 감정이다. 종종 싸우는 날이 있더라도 그 날 조차 너무 감사한 날이다. 내 옆에 그 사람이 있기에 질투도 하고, 서운해하기도 하고, 징징거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당연하게 지나칠 수도 있는 모든 일들에 대해 감사함을 생각해보고 글로 적다 보면 오늘도 너무나 다행히도 내 옆에 그 사람이 있는 게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 일인지 깨닫게 된다. 그러면 건방져지거나 익숙해지는 것을 멀리 할 수 있게 된다.
일기를 쓰다 보니 이게 흡사 종교랑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오늘 하루 일어난 일들이, 그리고 내가 경험한 감정과 생각들이 얼마나 고맙고 행복한지를 정리하게 되는데 그 모든 것의 귀결이 내 옆에 있는 사람 덕분으로 되어버린다. "항상 고맙고, 감사하다", "당신 덕분에 오늘도 행복한 경험을 하게 됐다", "질투라는 감정도 당신이 내 옆에 있기 때문에 느껴볼 수 있었어, 내 옆에 있어줘서 고마워" 이런 식을 말이다.
개인적으로 종교를 선호하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과정도 결국 종교와 같은 메커니즘의 과정이 아닐까 싶다.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하고, 모든 일에 감사하고 행복해하고 즐긴다. 그리고 그 행복이 내 옆에 그 사람이 있기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었으면 고마워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랑이라는 종교는 애교라고 불러야 할까?
오늘도 그녀 덕분에 이런 글도 쓰게 됐으니 또 감사일기를 적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