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가을
한창 이런저런 걱정이 많은 날들이 있었다. 지금이야 순리대로 사는 삶을 살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저런 상상과 걱정, 불안이 많았더랬다. 그런 불안의 나날을 보내던 중에 회사 동기와 회사 앞 술집에서 치맥을 하게 됐다.
이 친구가 상남자다. 돌직구도 잘 날리고, 할 말 안 할 말 다 하는 친구다. 그래서 사람들의 평판도 호불호가 많이 갈린다. 애인으로 치자면 듬직하고 리더십 있어 좋아할 수도 있고, 주관이 너무 뚜렷하고 돌직구를 날려서 싫어할 수도 있는 유형의 남자이다.
문득 궁금했다. 이 친구는 고민이 없나? 항상 말하는 거 보면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자주 하고, 뭔가 미래에 대한 이야기나 내면에 대한 불안감, 고민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묻게 됐다.
"넌 고민이나 걱정거리가 없어? 없어 보이긴 한다.."
"고민이나 걱정이 왜 없겠어. 다 있지"
"여자친구한테 그런 거 이야기 안 해? 혼자 끙끙거려?"
"응, 고민이나 걱정이 나 혼자 해도 버거운데 왜 그걸 여자친구한테까지 줘? 그냥 나 혼자 짊어져야지. 여자친구한텐 재밌고 즐거운 모습만 보여줘야지"
그 옆에 있던 동기도 마찬가지였다. 그 동기는 친한 친구한테도 고민이나 걱정 이야기를 하지 않고 혼자 끙끙거리며 짊어진다고 하더라. 솔직하게 사람들과 생각과 감정, 고민을 공유하는 나로선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친구 같은 사랑을 바라는 나에게 공유는 중요한 포인트였는데 친구들 관점에서 보자면 난 내 무거운 짐을 여자친구한테까지 공유하는 남자 였던 것이다.
그 당시에는 그런 짊어짐이 썩 이해가 되지 않았다. 누가 뭐래도 사랑하는 사이라면 많은 걸 공유하고 이해해주고 서로 지지해주고 해야 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이다. 물론 큰 줄기는 바뀌지 않았지만 지금은 생각의 핀트가 조금 달라졌다. 역시나 인간은 항상 변하는 존재인가 보다.
살다 보니 걱정이나 고민은 답이 없는 문제라는 걸 알게 되었다. 최선을 다해 선택하고, 순리에 따라 결과를 수용하니 그렇게 고민이나 걱정을 할 필요가 많이 없어졌다. 물론 고민이나 걱정이 100% 사라질 순 없었다. 하지만 고민이나 걱정으로 보냈던 나날을 생각해보면 걱정의 원인은 나라는 사람 자체가 불안정했기 때문인 것 같다. 계속해서 이런저런 경우의 수를 계산해가면서 오지도 않은 미래를 고민하고, 상상 속의 리스크를 생각하며 조마조마하며, 내가 어디에 기준을 두고 살아야 할지에 대해 휘청거렸다. 그러다 보니 주변에 공유를 통해서 외로운 휘청거림을 임시방편으로 막았던 것 같다.
결국 나의 내면에서 중심을 잘 잡으면 크게 휘청거리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후엔 불안정 해질 정도의 걱정과 고민은 크게 줄었고, 주변에 공유를 한다 해도 안정을 위해서가 아닌 그냥 가벼운 이야깃거리로만 공유하게 되었다. 그게 첫 번째 변화였다.
두 번째 변화는 동기들이 한 말의 일부분을 동의하게 됐다는 거다. 지금 여자친구랑 결혼을 하게 되었지만, 결혼을 하게 돼서 생각이 변한 건 아니다. 왠지 모르게 지금의 여자친구가 걱정을 하거나 슬퍼하는 모습을 보기가 싫어졌다. 거기다가 더 최악은 나로 인해 걱정하거나 고민하게 된다면 너무나 끔찍할 것 같다고 느껴졌다. 32년 동안 그런 느낌을 처음 느껴봤다는 게 내가 참 성숙하지 못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먹고사는게 힘든데 안 좋은 일이 왜 일어나지 않겠는가? 회사에서도 싫은 소리 다 듣고, 자존심 버리고 일을 해야 하고, 기분 나쁜 일도 일어날 수 있다. 예전엔 그런 상황에 처했을 때, 나의 감정이 우선이라 그걸 공유하면서 관계를 형성하고 안정을 추구했다면 지금은 나의 감정보다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감정이 더 우선이 된 것 같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항상 행복하고 즐겁게 웃었으면 좋겠다. 물론 항상 그럴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아이러니하게, 항상 그럴 수가 없는 게 현실이니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걱정이나 고민을 줄여주려고 노력을 하게 되는 게 아닐까 싶다.
사랑의 정의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보다 상대방이 우선이 됐을 때, 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 같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도 싶다. 물론 그 전에 나부터 나 자신을 사랑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주절주절 썼지만 결론은 이렇다.
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되도록 덜 고민하고 걱정했으면 좋겠다.
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로 인해 고민하거나 걱정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많이 웃고 즐겁게 하루를 보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