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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n May 06. 2016

#결혼하면 변하는 것들

문득

 두 가지 이야기가 있다.

연애 중인 커플의 이야기

 사무실에서 야근을 하던 시진이는 여자친구 모연의 연락을 받았다.

"나 신촌에서 친구들이랑 약속이 있는데 나 데리러 와~"

시진은 회사 일을 정리하곤 신촌으로 향했다. 그리고 지하철에서 톡을 보냈는데 연락이 도통 없어서 신촌역을 나와서는 모연에게 전화를 했다.

"나 신촌 도착했는데 역 앞으로 나와"

"응? 나 친구들이랑 더 놀건대?"

 시진은 당황했지만 화내지 않고 침착하게 대응했다.

"아... 그래? 그럼 난 먼저 들어갈게 재밌게 놀아"

 사실 시진은 화가 났다. 오라고 해서 갔더니 더 논다는 이상한 답을 들었기 때문이다. 화를 내진 않았지만 홧김에 먼저 가겠다는 말은 해버렸다. 한 시간 정도 지난 뒤에 모연에게서 전화가 왔다. 화가 많이 난 상태였다.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첫째, 누가 지금 오라고 했냐?

둘째, 왜 그냥 집에 가버렸냐?

셋째, 나는 남자친구 불러놓고 보내버린 이상한 여자가 됐다.

넷째, 기다린다고 했으면 20분 내에 나가려고 했는데 왜 묻지 않고 끊었냐?


 시진은 조목조목 반박할 논리적인 이유는 있었다. 같이 모임에 있던 친구로부터 무연이 피곤해서 금방 갈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었고, 도착하니 더 논다는 말에 생각이 바뀌었나 하고 판단을 했었고, 무연이 다른 이야기를 하기 전에 대화가 다 끝난 줄 알고 전화를 끊었기 때문이다. 오해도 있었고, 약간 홧김에 집에 간 거였다고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진은 화내지 않았다. 그리고 사과를 했다. 자신 때문에 화가 났다면 미안하다고 말이다. 그럼에도 모연은 계속해서 시진을 몰아 부쳤다. 하지만 시진은 계속해서 사과를 하고 모연의 마음을 다독거려줬다.

 시간이 흘러 시진과 모연은 헤어지게 되었다. 서로 헤어지는 마지막 자리에서 무연은 눈물을 흘리며 마지막 말을 했다.

"왜 너는 항상 미안하다고만 해? 사실 그때도 내가 억지 부린 거고 내가 잘못한 건데 다 네가 잘못했다고 하고, 넌 자존심도 없어? 왜 나한테 그렇게 항상 사과만 해.."

시진도 마지막으로 말했다.

"거기서 내가 잘잘못을 논리적으로 따져서 뭐해. 그렇게 너 이기고 나면 내 기분이 좋겠어? 내가 뭘 했던지 네가 기분이 안 좋고, 서운하다면 내가 잘못한 거지. 자존심을 애인한테 세워서 뭐해. 서로 행복하려면 연애하는 건데 문제가 있으면 잘 풀고 잘 지내야지"


중년 부부의 이야기

 하루는 시진이 끊어놓은 헬스장에 가지 않았다. 아내 모연은 그 모습이 보기 싫었다. 그래서 톡 쏘아 댔다.

"뭣하러 정액권 끊었어? 그럴 거면 헬스장 가지마 "

"아니.. 그런 식으로 말하면 기분 나쁘지.."

 그러자 싸우는 데 지쳤던 무연은 미안하다며 방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계속 신경이 쓰였던 모연은 다시 방에서 나와 시진에게 투정을 부린다.

"아니, 나는 그냥 아무 의미없이 재잘재잘한 건데 그게 기분 나빠할 일이야?"

 시진은 폭발했다. 시진 입장에서는 화내지 않았고, 기분 나쁘다고 표현을 좋게했고 그에 맞게 모연이 잘못과 미안함을 인정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나와서 자신을 비난하는 모습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둘은 그렇게 싸움을 시작했다. 모연은 자신의 투정을 받아주지 않는 시진을 이해할 수 없었고, 시진은 말도 안 되게 억지 부리는 무연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된 걸까? 연애를 할 때의 남자는 전혀 이성적이지 않다. 상식적으로, 이성적으로, 합리적으로, 효율적으로 조목조목 반박할 수 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모른 척 이해해주고, 져주기도 한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긴 하다. 연애할 때도 마초끼를 내며 욱하는 남자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생활을 함께하고 서로에게 익숙해지면 그런 배려는 사라지고 현실/이성/효율/합리/논리/객관성을 따지게 된다. 씁쓸한 상황이다. 이런 말을 할 수도 있겠다. "나이 먹고 이만큼 살면 그렇게 해줄 수가 없어" 물론 그럴 수도 있겠다. 사실 난 아직 중년이 아니라서 아니라고 하기는 신뢰성이 떨어지는 것 같다. 다만 같은 남자로서 객관적/합리적/이성적으로 본다면 나이를 먹으면 오히려 더 이해심이 많아지고, 더 관용성이 많아지고, 더 포용력이 많아져야 하는 게 아닐까?


  남자와 여자는 일정 부분 다른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혹자는 남자랑 여자랑 뭐가 다르냐? 똑같은 인간 아니냐 하겠지만 나는 생각이 좀 다르다. 남자는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이성적으로 합리적으로 논리적으로 상황을 보려는 성향이 강하다. 물론 그 기준은 개개인마다 다르겠지만 말이다. 개똥철학도 철학이다. 반면 여자는 감성적이고 투정 부리고 억지 부리며 예민한 경향이 어느 정도 있다. 나쁘다고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다른 거다. 본인이 투정 부린다는 걸 알면서도 남자가 받아주길 바라고, 투닥거리는 상황을 원하는 거기도 한 게 아닐까 싶다. 연애시절 무연이 처럼 여자는 남자가 이해해주고 모른 척 받아준다는 걸 다 안다. 그러니 속으로 고마워하고 그런 거다. (기본적으론 남자와 여자의 차이겠지만 성별을 불문하고 개인차이로 발현될 수도 있겠다)


아무리 그래도 따지고 보면 난 잘못한 게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무연의 말을 들어주면 비효율적이지 않나? 상식적으로 내가 사과받아야 되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든다면 둘이 손잡고 재판장에 가야 할 것 같다. 잘잘못을 따지고 객관적으로 판단을 내리는 건 법원에서 하는 일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생활을 오래한 부부들은 "오래 살다 보면 그게 안돼"라는 말을 분명히 하실 거다. 잘 모르겠지만 내가 죽을 때까지 살면서 되는지 안되는지 확인을 해볼 참이다. 과연 진짜 안되는지 말이다.


 이렇게 조목조목 분석을 하는 나도 어쩔 수 없는 남자인가 보다. 그래도 중년이 되었을 땐 이런 주제에 대해서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남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젊었을 때의 좋은 점을 잃지 않는 아재가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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