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1. 채근담을 읽고 점검하는 나의 가치관

음과 양

by 강울이

채근담에서 채근은 나물 뿌리라는 의미로 소박한 것의 근본인 삶의 의미와 행복을 뜻한다. 나는 채근담을 나물 뿌리와 같이 세상을 향해 조금씩 뻗어 나가며 살자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채근 담은 우리의 삶을 관통하는 큰 뿌리에 대해 논한다. 채근담이 말하고자 하는 큰 뿌리란 우리의 인생,‘정도’이다. 신기하게도 인생에 대해 논하는 고전은 각자 다른 시대에서, 다른 사람에 의 해 쓰여졌지만 비슷한 성격을 띈다. 마치 자신의 생각을 공유한 것처럼.


채근담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분명 대단한 것이다. 하지만 책을 읽어보면 분명 당연한 말과 행 동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공감이 된다. 매우 쉬운 것에 대한 이야기 같기도, 이미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은 분명한 내 착각이었다.‘정도’란 고작 글을 읽었다고, 이해했다고 달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생각에 공감했다고 나 또한 대단해 지는 것이 아니다. ‘나’라는 존재는 그렇게 쉽게 변화하는 존재가 아니다. 이때까지 살아온 과거, 내가 뱉었던 말, 실천했던 행동들, 함께 살아온 사람들과 만들어온 주변 환경 이 모든 것들이 ‘나’ 라는 존재 안에 스며 들어있기 때문이다. 인생은 연속적이고 상호작용하는 것으로 나의 생각 나 의 행동 내 주변 환경 모든 것들이 하나의 길을 형성했을 때, 비로소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정 도’인 것이다. 우리는 채근담을 읽으면서 자신의 잘못을 합리화 할 필요도, 그 생각에 동조하는 척 위선을 떨 필요도 없다. 그저 멀리서 스스로를 차분하게 바라 봐야한다. 가지고 있는 위선, 자만심을 내려 두고 스스로를 직시해야 한다. 나태한 나, 뒤틀린 나, 깨닫지 못한 나 그 모든 것 도 ‘나’이니까. 난 아직 살아온 세월이나 생각의 깊이가 얕다. 세상을 표현하기에 너무나도 부 족하다. 하지만 부족하기에 표현해봐야 한다. 표현을 해야 직시하고 고칠 수 있다. 채근담과 함 께 스스로를 직시하며 나만의 '정도'를 찾아보겠다.


어떻게 책을 읽었는가? 란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75. 一苦一樂相磨鍊 鍊極而成福者 其福始久 一疑一信相參勘 勘極而成知者 其知始眞


한 번은 의문을 품고 한 번은 확신했던, 수많은 질문 끝에 얻은 지식이라야, 힘겹게 얻은 참된 지식이고 쉽게 흔들리지 않는 지식이다.


우리는 한 주제에 대해 더 나은 결과값을 도출하기 위해 토론을 한다. 서로의 입장에서 악마의 대변인을 자처하며 의견을 주고 받는다. 채근담을 읽었을 때, 대단한 책이니까 무조건 수용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아니다.


고전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에 찬성하는 ‘나’와 반대의 입장 에서 생각하고 행동했던 ‘나’를 비교해야 한다. 과거 경험을 떠올려 나라면 어떻게 행동했을 까, 채근담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일까 비교하며 사고 해봐야한다. 그렇게 올바름에 대해 자신의 인생과 비교해보고 도출해낸 결과가 비로소 나만의 지식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힘겹게 얻은 참된 지식이고 흔들리지 않는 신념인 것이다.


사치를 부리지 말라고들 말한다. 사치부리는 마음은 그 무엇으로도 가득 채울 수 없기 때문에. 스스로를 망치기 때문에. 하지만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멋진 차를 타고 좋은 집에서 맛있는 밥을 먹는 사람의 삶이 궁금하지 않은가? 한번쯤 그렇게 살아보고 싶지 않은가? 이러한 마음은 자연스 러운 것이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고, 누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해 느끼는 호기심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바로 직접 해보는 것이다. 자신이 가지지 못했기에, 이해할 수 없는 범주이기 때문에 호기심을 느끼는 것이다. 마치 우리가 죽음에 대해 공포를 느낌과 동시에 호기심을 느끼는 것처럼. 막연함 을 없애야 한다는 의미이다. 사치를 부리는 사람의 단편적인 행복만을 보고 평소에도 저렇게 행복하겠지 막연하게 상상하지 말아야한다. 음과 양은 공존한다. 행복해 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그것을 얻기 위해 엄청 힘든 노력을 했을 수도 있고, 사실은 행복한척 하는 불행한 사람 일 수도 있다. 자그마한 사치를 직접 해보고, 그때 느끼는 감정을 세심하게 들여다 봐라. 해보면 부질없고 의미 없는 행동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현재에 일어나는 일을 과거의 것들로 설명한다. 자그마한 사치를 통해 더 큰 사치를 예상 할 수 있게 되고,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욕망을 비울 수 있는 사람은 때론 욕망을 채우려고 노력했던 사람이었을 것이다. ‘정도’를 걸을 자격이 있는 사람은 때론 엇나갔던 사람이 아닐까. 양에 대해 이해하고자 한다면 음에 대해서 도 공부를 해야 하지 않을까.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음과 양의 ‘정도’이다.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 란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8. 君子閒時要有喫緊的心思(군자한시요유끽긴적심사), 忙處要有悠閒的趣味(망처요유유한적취미).


군자는 한가할 때라도 급박하여 긴장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고, 바쁠 때라도 느긋하고 한가로운 멋을 가져야 한다.


이것 또한 음과 양의 이야기와 같다. 음이 있을 때 양이 있고, 양이 있을 때엔 음이 있다. 전쟁이 터져 나라에 혼란이 터졌을 때, 국민들은 스스로 영웅이 되어 행동한다. 반대로 나라가 평화 로울 때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이 된다면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계급을 나누고 차별을 형성하며 스스로의 사회에 혼란을 야기한다. 음과 양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한가할 때 대비하고 위기의 상황에서 침착함을 유지하는 군주의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받아들인 군주의 마음이라 함은 나라를 통치하는 군주라는 의미가 아닌 스스로의 마음의 주인이라는 의미로 해석 했다.


음과 양이 공존한다는 의미는 절대 음, 절대 양이란 것이 우리 눈 앞엔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과 같다. 나에게 달콤한 이야기만을 하는 이가 있다면, 그의 말에 숨겨진 쓰디쓴 의도가 있음을 알고 진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절박한 상황에 미래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하고 새로운 미래를 그려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부족하겠지만 위와 같은 방식으로 군자의 마음가짐에 대해 조금 이해하였다. 하지만 아직 내가 이해한 군자의 마음가짐 일부분조차 내 마음에 실현시키지 못한 것 같다. 우리나라의 현실을 보았을 때, 침착함과 여유로움을 찾지 못하고 우울함과 절망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나라를 좀먹고 있다. ‘민중은 개돼지 다루듯이’ 라는 발언을 한 사람조차 파면 후 1년 뒤엔 복직하는 것을 보았다. 그 후에 현재까지 고위관직에서 일 하는 사실에 나는 낙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슈가 될 때만 분노하고, 시간이 지나면 까먹고, 이를 악용하여 자신의 권력을 되찾고, 똑같은 문제가 반복된다. 이러한 현실을 보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그 사실을 내 주변에 알리고 정치에 대해 관심을 가지자는 관점을 공유하는 것 뿐이다. 그저 성인 1명의 국민으로서 투표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는 것 뿐이다.


우리가 위기에 대비하기 위해선 주변의 분위기를 파악해야 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의 눈을 닫고 사는 것 같다. 모든 사람을 개안 시키려 욕심 부리지 않겠다. 적어도 나와 같은 어린 사람들에게 관점을 공유하고 의견을 나누며 세상을 직시하는 것. 그것으로 나는 나의 위기를 대비하도록 하겠다. 이것이 나의 마음가짐이다.


어떻게 스스로 살아갈 것인가? 에 대한 답변이다.


115. 小處不滲漏(소처불삼루), 暗中不欺隱(암중불기은), 末路不怠荒(말로불태황), 纔是個眞正英 雄(재시개진정영웅).


작은 일도 소홀히 하거나 빠뜨리지 않고 어둠 속에서도 속이거나 숨기지 않으며 끝마무리도 나태하거나 방종하게 하지 않는다. 그래야만 진정한 영웅이다.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다양한 유혹에 마주한다. 양심을 조금만 속이고 행동을 취하면 큰 이득을 볼 수 있는 상황, 조금만 모른척 한다면 해결되는 문제 등. 신은 마치 우리를 시험하듯 우리들을 특정한 상황으로 내몬다. 우리가 이러한 상황을 통제하고 대비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러한 상황을 헤쳐 나가야 할까?


흐르는 물처럼 나아가야한다.

순환하며 끝없이 나아가는 물처럼.


흐르지 않고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다. 흐르는 물은 때론 더럽혀 지기도, 나뭇가지를 헤쳐 나가 며 정화되기도 한다. 그렇게 흐른 물은 큰 연못이나 바다로 흘러 들어간다. 그러한 물 속에는 가재도 살고 물고기도 살아간다. 목이 마른 동물들의 수분을 보충해주기도 한다. 물은 한 곳에 머 무르지 않는다. 산과 바다, 연못과 동물들을 거쳐 끊임 없이 순환한다. 구름이 되기도 비가 되기도 하면서. 물은 자신의 소명을 다할 때, 작은 일이라 해서 소홀히 하지 않고 큰일이라고 해서 유난떨지 않는다. 그저 똑같이, 밤이 되어도 낮이 되어도 그저 흐른다. 처음과 같은 마음가짐으로 끊임없이. 우리는 물과 같이 행동해야 한다. 일희일비 하지 않아야 하며, 사소한 것에 흔들리 지 않고 나아가야 한다.



어떻게 스스로 바라볼 것인가? 에 대한 답변이다.


후집 35. 蓋極高寓於極平(개극고우어극평), 至難出於至易(지난출어지이).


대개 지극히 높은 것은 지극히 평범한 것에 깃들고 지극히 어려운 것은 지극히 쉬운 것에서 나온 다. 뭔가 심오해 보이고 알기 어려운 것을 찾아 헤매지 말라한다. 나는 이것을 나의 삶을 되돌아 보는 방법에 대해 빗대어 생각해보았다.


- 나의 존재(심오한 것)는 사회(지극히 평범한 것)에 깃들어 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할 지, 나의 가치관과 신념을 어떻게 설정할지를 정하는 것은 참 심오하고 이해하기 어렵다. '나'는 나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세상과 상호작용하며 친구와, 사회와 함께한다. '나'라는 존재는 우리 주변에 있는 것들에 투영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의 얼굴을 볼 수 없다. 기껏해야 거울에 비친 상을 볼 뿐이다. 결국 자신을 직접 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자신을 마주하고, 더욱 깊이 이해하는 방법은 자신이 투영된 사회와 주변에 머무는 벗을 통해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것 뿐이다. 올바른 자신을 만들고 싶다면, 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스스로를 올바른 사람들이 많은 곳에 스스로를 내던지고 거기에서 하는 내 행동들을 발전 시켜야 한다. 그 과정에 있어서 남들과 비교하며 상처받지 말고, 스스로를 갈고 닦아야 한다. 자신의 얼굴도 스스로 볼 수 없는 존재가 남과 자신을 비교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지 않을까.


- 신념(지극히 어려운 것)은 삶(이때까지 평범하게 살아온 과거)에서 나온다.


아직은 나의 짧은 생각이지만 나는 삶의 방향을 정하였다. 나의 신념을 향해서.


보잘 것 없는 직사각형 천은 그저 도화지로 쓰이기도 하고 무언가를 닦는 것으로 사용되기도 한 다. 하지만 여기에 3, 4, 5, 6 검은색 선을 긋고 가운데 태극 무늬를 생기면 우리나라를 상징하 는 태극기가 된다. 그리고 그것을 드높은 깃대에 걸어 땅에 단단히 고정시킨다면 깃발이 된다. 이 깃발은 전 국민을 대표하는 국기가 된다. 나의 삶 또한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성인이 되기 전까지 나라는 상징성을 찾고, 그 이후 탄탄한 기반을 다져 신념이란 것을 차근차근 쌓아가 나 라는 존재를 고정하게 된다면, 그 삶 자체가 나를 상징하는 것이 되지 않을까. 비와 바람 에도 끄덕 없는 존재가 되지 않을까.


하지만 스스로가 정한 신념이 내가 살아온 과거의 방향과 다르다면, 어떻게 ‘나’라는 존재를 신념에 맞는 존재로 변화시킬 수 있을까? 나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인생을 포기해야 하는 걸까?


아니다. 지우고 다시 그리면 된다.


과거의 나를 죽이고 새 로운 나를 만들어가는 활동을 통해서 다시 태어나면 된다. 인간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세포의 대부분은 시간이 지나며 죽고 이를 대체하는 세포가 나타난다. '나'라는 존재는 죽어가고 태어남을 반복하는 연결체인 것이다. 그렇게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고 신념에 맞는 이상향을 설정해 나아가며 변화해 가는 것이다. 나는 이 두리뭉실하고 심오한 생각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나에게 적용시키고자 하였다.


그 방법은 바로 하지 않는 것부터 하자는 것이다. 내가 설정한 이상향인 존재를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그의 말과 행동, 생활 습관 같은 것도 상상해 보는 것이다. 그러곤 그 이상향인 존재가 하지 않았을 행동부터 하지 않는 것이다. 나의 이상향은 다음과 같다.


나는 수학과 과학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주식과 컴퓨터 사이언스에 관심이 많다. 딥러닝을 통한 데이터 분석, 이를 주식과 연관 지어 트레이딩에 접목하는 사람을 꿈꾸고 있다. 그러함과 동시에 아이들에게 올바른 철학과 경제, 사회와 정치를 보다 쉽게 가르쳐주고자 하는 신념이 있다. 그런 사람을 롤모델로 설정하였다. 그는 아이들에게 꿈을 펼쳐주어야 하는 존재이므로 담배는 물론 술도 많이 마시지 않을 것이고, 주식을 하기 위해 일찍 일어나야 할 것이다. 바빠서 핸드폰은 할 시간은 커녕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고, 시간관리에 철저한 존재일 것이다. 이런 존재를 설정한 후 그 사람이 하지 않았을 ‘나’의 행동을 찾는다. 의미 없는 sns 활동을 통해 게으르게 시간을 낭비하는 행동, 주말에 누워 멍하게 시간을 보내는 행동. 나의 롤모델이 하지 않는 행동을 하는 '나'를 죽이고, 롤모델이라면 했을 자그마한 행동부터 나를 채워 넣는 것이다. 아주 쉬운 것부터 차근차근 나를 생성해 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끝없이 나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행동하다 보니 남들이 해주는 동기부여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그 롤 모델이란 것도 결국 나로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재밌었다.


나의 롤모델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주의해야할 것이 있다. 롤모델에 집착하면 안된다. 나아간다는 행위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나’의 신념과 하나된 삶, 그것이 나의 길이다.


피하고 싶은 삶은 무엇이냐? 에 대한 답변이다.


후집 106.고요함에 집착하면 움직임의 시초가 된다.


고요함을 좋아하고 시끄러움을 싫어하는 게 극단에 이르면 아예 사람을 피해 아무도 없는 한적한 곳을 찾는다. 지나친 집착이 낳은 잘못된 행동이라 생각한다. 고요함을 좋아하더라도 사람과 어울리고 시끄러운 세상과 접촉하며 살아야 한다. 극단적인 행동으로 자신을 가두면 안된다. 사람이 싫다고 아무도 없는 환경만을 추구하면 그 후엔 자기 스스로에게 집착하게 된다. 자신에 대한 집착은 강박으로 이어지고 극단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최소한의 접촉은 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상엔 자극적인 뉴스들이 다수 존재한다. 뉴스를 보라. 칼부림, 금리 인상, 혼란한 정세. 이러한 것은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우리의 눈을 가리기도 하고, 냉혹한 현실을 알려주기도 한다. 행복하거나 따스한 이야기는 없다. 사람들이 관심이 없기에.


우리가 세상을 접하는 눈이 바로 뉴스들이다. 하지만 조회수나 상업적 목적을 위해 자극적인 뉴스들이 상위에 위치한다. 우리의 이목을 끌기 위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렌즈가 이미 더럽혀져 있기에, 우리는 비관적인 태도에 빠지기 쉽다. 세상의 일들을 알고 싶지도 않아진다.


그렇게 세상으로부터 도피하게 된다면, 도피한 곳에 과연 평화가 있을까. 나는 없을 것이라 생각하기에. 도피하며 살지 않을 것이다.



채근담을 읽고 참 많은 생각들이 변화하였고 그로 인해 수정을 많이 하였다.


처음 글을 작성할 때, 세상의 어두운 면을 한 없이 어둡게 바라 보았고, 세상의 밝은 면을 한 없 이 행복하게 생각하였다. 하지만 마지막 글을 쓸 땐, 어둠을 바라볼 때 어둡지 않은 것들을 생각 하며 글을 보완하였고, 빛을 바라보며 빛나지 못한 것들의 한계를 바라보며 글을 완성한 것 같다. 채근담을 읽으며 더 많은 경험을 해봐야 겠다고 다짐하였다. 반대로 나의 한계를 마주하며 어떤 행위는 절대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하였다. 그저 음과 양의 시선으로 바라볼 뿐이지만 많은 것들이 내 안에서 변화한 것 같다.


끊임 없이 생각하며 살아갈 것이고, 의심하고 질문하여 보완한 다음 내 지식으로 만들 것이다. 그렇게 조금씩 나아가며 내 주변 사람들과 함께, 도피하지 않고 나아가며 살아갈 것이다. 내 주변의 것들을 사랑하며 살아갈 것이다.


세상에 절대란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접하는 것들 중에도 완전한 것이 없다. 이 사실을 이해하니 조금 더 담담하게, 단단하게 나아가는 자세를 가지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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