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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약 Mar 28. 2020

난 대한민국 하위 1%의 교육을 받은 건가요?

82년생 육아대디


언젠가 햄버거로 유명한 M사에서 값싼 커피를 내놓으며 블라인드 테스팅을 광고로 때렸다. 름만 들으면 누구나 다 아는 유명 커피회사의 제품명과 M사의 제품명을 가리고 일반 사람들에게 맛을 비교토록 하는 단순한 내용이다. 결론은 '가격은 거품, M사 커피가 가성비 갑'이라는 것인데 개인적으로 매우 유감스럽게 봤다.


무작위 시민을 대상으로 테스팅 비교하는 것 자체가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 만약 그 시민이 '설탕프림 봉지커피'를 좋아하고 아메리카노에는 일절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당연히 그 사람에겐 가격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냥 먹어보니 이게 좀 나은 것 같다 하는 걸 먹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잘 먹었다. 커피는 내가 살게 / 어 그래' 하는 사람들에게 커피는 밥과 사실상 동급이다. 아니,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맛있는 밥집만큼 맛있는 커피집을 찾아다닌다. 에게 커피는 맛뿐만 아니라 맛에서 비롯되는 분위기까지 모두 값에 매겨져 있다. 그게 테이크아웃이건 인이건 이미 그 구분도 중요한 게 아니다. 그 사람의 강력한 취향저격 상품이라는 사실만 중요하다.


만약 그런 사람들을 테스팅 자리에 앉혔다고 하자. 명확한 커피관이 혀에 박혀 있는 사람에게 아무리 견장 떼고 물건 내밀어도 한 모금 마셔보면 원두 상태, 추출 상태 영수증 뽑아내듯 읊어낸다. 어디서 약을 팔어?


 M사는 결국 유명 커피회사의 '아성'을 넘지 못했다.


내가 만약 M사의 마케팅 직원이었다면 '가격보다 속도'를 타이틀로 내걸었을 것이다. 빨리 먹고 자리를 빼야 하는 M사 가게 특징상 '기차 시간은 다가오고 커피는 먹고 싶고.. 아 이럴 때 어디 없나? 짜잔 여기 있습죠~' 치고 빠지는 식의 기동성 있는 슬로건을 내 걸었다면, '아메리카노 다 거기서 거기지' 하는 취향의 고객들을 보다 많이 확보했을 것이다.


아무리 값이 비싸도 맛이 없는 건 맛이 없고, 아무리 값이 싸도 맛있는 건 맛있다고 이야기하는 게 '묵은' 사람의 특징이다.


술의 감별사 내 친구는 말한다. 아무리 조니 시리즈 최고등급을 가져다줘도 본인은 코○ 매장의 값싼 커클랜드 위스키를 마시겠다고 한다. 이유를 물었더니 그의 말,


조니는 개성이 없어.


코○매장이 국내에 많이 없는데 만약 구할 수 없다면 뭘 마시겠냐 물었더니 그다음은 치바스란다. 영화 '내부자들'에서도 이병헌이 말하지 않았는가.


이슬로 사 오라 해! 후레쉬로!


이슬, 처음, 한라산, 씨원, 잎새, 린 등등 소주꾼들은 다 안다. '소주 맛은 다 똑같다'는 연구결과는 틀렸다는 것을.



얼마 전 SNS에서 "일반인들 못하는 미국 상위 1% 재벌의 가정교육"이라는 제목으로 "여유가 있으면 저런 것도 가능하구나...ㅎㄷ" 이란 부제를 달아 주요 영상을 띄운 걸 본 적이 있다. 내용은 이렇다.


딸의 고등학교 진로를 두고 부부가 의견이 나뉜다. 엄마는 W, 아빠는 M. 그래서 딸의 최종 의견을 듣고 결정하는 자리를 마련한다. 아빠가 어디 가고 싶니 묻고 딸은 여길가고 싶어요 말하고, 아빠는 근거를 대보렴 하고 딸은 이런 근거에서에요 하는 식이다. 게스트들은 '아빠랑 저런 이야기 나누기 쉽지 않은데요', '전 평생에 아버지랑 대화한 게 몇 시간 안돼요', '저도 아버지가 노동일 때문에 얼굴 보기도 힘들었는데...' 하며 부러움을 표현한다.


스스로 계급사회를 인정하고 부추기는 저 꼬락서니는 뭐지?


대학교 1학년이 끝나갈 즘, 나는 학과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었다. 가 학과를 갈 것이냐, 나 학과를 갈 것이냐? 아빠한테 가 학과를 가고 싶다 했더니 이유를 물으시더라.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곳이 얼마나 많겠어요?"

"그렇지. 근데 그만큼 경쟁도 치열하지 않겠어?"

"좋잖아요. 많은 사람들과 경쟁하면서 실력도 늘고. 연구할 수 있는 범주도 넓고. 전국에 학과도 많고."

"그 분야가 포화상태라면?"

"???"

"뭐든지 공급과 수요가 있는 거야. 봐봐. 공명이 왜 조조에게 가지 않고 유비에게 갔을까? 조조한테는 이미 엄청난 인력풀이 있었지. 가봐야 도찐개찐이야. 그런데 유비는? 영웅호걸은 많은데 큰 그림 그려줄 책사가 없는 거야. 나 학과는 아직 미개척 분야가 무궁무진해. 너가 깃발 꽂으면 거긴 니 성이 되는 거야."

"더 돋보일 수 있다는 거죠?"

"당연하지. 가 학과는 너무 많아. 실력을 떠나서 다른 장애물도 많지. 그리고 있잖아? 전공을 가로 하던 나로 하던 나중엔 다 하나로 만나게 되어 있어. 시냇물에서 하나의 강으로 만날 때 내가 어느 위치에 있느냐? 그걸 생각해봐야지. 결정은 너가 하는 거니까... 내 의견일 뿐이야."


결국 나는 나 학과를 택했다. 아빠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가 학과는 승승장구하여 지금은 당당히 TV 단골로 나오는 반면, 나 학과는 '인문학 통폐합' 덫에 걸려 없어졌다. 대신 나는 전공을 살려 취업하는 데 성공했다.


전의 글에서도 말했지만 아빠는 중졸이었다. 거기에 신용불량자였다. 당시 우리 집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급박한 처지였다. 계량 수치로 따지면 대한민국 하위 1%에 속하는 그야말로 쫄딱 망한 빈민가정이었다.


내용상으로 까보자. 과연 미국 대재벌과 한국 최빈민의 가정교육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나는 아무런 차이도 느끼지 못한다. 그냥 그 집은 그 집 사정대로, 우리 집은 우리 집 사정대로의 경제 차이만 있을 뿐이다.


대한민국 아빠들이 모두 그렇게 가부장적이고 돈만 벌어오고 집구석엔 관심도 없고 하지 않는다. 통계 수치를 따져보자는 게 아니다. 집집마다의 캐릭터에 따라 교육방식이 있는 것이지 그걸 돈에 딱 견주어서 '있는 놈 집은 역시 달라' 하는 식은 곤란하다는 점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82년생 육아 대디로서 말하건대, 적어도 내 주변의 82 아빠들은 가정에 충실하고 아이에게 사랑 듬뿍 최선을 다하는 자들이 너무나 많다. 돈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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