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를 일처럼 했습니다.

성과주의에 길들여진 엄마의 오류

by 반짝이는먼지

“엄마! 나 달리기 꼴찌 했어. 힝~ 속상해서 울었어. 힝~” 운동회 연습을 하고 왔는지 잔뜩 울상인 아연이를 보니 배시시 웃음이 납니다. 엄마는 아이의 경험치가 +1 될 때 웃음이 나고, 아이는 감정 쓰레기통 엄마를 통해 울분이 -1 될 때마다 웃음이 납니다.



급기야 나를 본 아연이는 울상을 넘어 속상으로 넘어가고 있네요. 실컷 엄마 쓰레기통에 버리는 중입니다. 구구절절 이토록 울분이 상할 수가 없어요. 소심하게 위로하는 나의 말은 허공을 왕왕 돌뿐, 엄마 쓰레기통은 몸집을 불려서라도 모두 받아줄 수밖에 없네요.



지난 몇 년간 찬이 덕에 장착이 된 능력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등수불감능력(等數不監能力)"입니다. 찬이랑 있을 때는 모르다가, 아연이와 있을 때면 유난하다 싶을 정도로 능력을 발휘해요.


“최선을 다했는데 꼴찌가 된 거야?”

“응. 열심히 달렸는데 꼴찌였어. 나연이는 항상 일등인데...”


찰나의 기특함을 뒤로한 채 딸아이의 뛰는 모양새를 상상하니 피식 웃음이 나요. 허우적허우적. 공중에 힘없이 팔을 휘저으며 뛰는 나의 딸은, (필시) 아빠를 닮아 운동에는 영 재능이 없을 것으로 단정 지은 지 오래거든요. 엄마가 이미 접은 종목에 딸이 나서서 욕심 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이없는 웃음만 날 뿐이네요.



“아연아, 등수에 상관없이, 최선을 다하면 그게 최고인 거야!”

진정으로 이해를 했는진 알 수 없으나, 벌겋게 울상이던 얼굴엔 이미 안도감 섞인 미소가 가득합니다. 남겨둔 감정 없이 다 쓸어내렸나 봐요. 후련하게 돌아서는 딸의 모습이 가슴에 남았습니다. 등수가 그렇게 중요했던가 생각합니다.



운동회 당일, 긴장하는 아연이에게 등수 상관없이 최선만 다하면 엄마가 많이 칭찬하고 안아주겠노라 약속을 했어요. 마음을 비우면 뭐라도 된다 하였지요! 꼴찌만 했다던 아연이가 눈앞에서 1등을 하지 뭐예요. 와우! 모두가 놀랐어요. 아연이도 나도 아빠도 이게 뭔가 싶은 황당한 행복 앞에 눈물이 날 지경이 되더라고요. 1등을 해서 좋기도 하였지만, 최선을 다하려고 애쓰며 성장해 가는 딸을 보니 '아! 사는 맛 나네!' 싶었습니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어요. 아이 스스로 애쓰며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맛이, 아주 그만이었어요.



인생을 돌아보면 참 성과주의적 삶을 살았어요. 공부에 온 정신을 담아 학창 시절을 보내고 대학을 가고 졸업 후 취업을 해서는 또 성과주의에 흠뻑 젖어 살았습니다. 성과를 내는 게임에서 이겨야만 행복이 오는 줄 알았어요. 그렇게 길들여졌네요. 성취하는 즐거움에 빠져 다른 즐거움은 누릴 줄 모르는 사람이 되었어요. 그렇게 길들여진 나라는 사람이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또 성과를 내려했습니다. 길들여진 시간이 30년 이상이었으니, 나의 오류가 수정이 되려면 수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어요.




나의 아들이 ‘장애’라는 어려움을 가진 덕?! 에 더 성과를 내려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금방이라도 목적 달성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아이를 키우는 기쁨보다 아이가 이뤄내는 대리만족 속에 성취감을 느끼며 다른 곳에서 느껴야 할 “잘못된 행복”을 육아에서 느끼고자 했어요.



이만큼 치료실을 다니고, 이만큼 걷기 운동을 하고, 이만큼 연습에 연습을 하며, 몇 개월이 지나 할 줄 아는 게 몇 개나 되는지 체크를 하며 찬이를 키웠어요. 블로그에 찬이의 발달을 기록하며 공감과 조회수 증가에 더없는 성취감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러다 보면 금세 장애를 벗어던질 수 있을 것만 같았죠. 머지않아 행복이 짠!!! 하고 나타날 것만 같았어요.



심지어 지능검사 수치까지 올릴 수 있을 거라 자만했던 나를 돌아보니, 이렇게나 성취지향적 엄마가 없었습니다. 실제로 지능지수 13점을 올린 이가 저란 사람이거든요.



백 개를 채우든, 천 개를 채우든 ‘궁극의 행복’과는 큰 차이가 없다는 걸 몰랐습니다.






찬이는 어땠을까 싶어요.

찬이 4살 이후의 삶을 내가 다시 산다 생각을 하니, 이렇게 미안하고 불행한 삶이 없어요. 미안해요. 미안해 죽겠어요. 모든 게 찬이를 위한 것이라는 미명 하에 성과주의 엄마는 달리고 또 달렸으니 말이에요. 솔직히 지금 이 순간도 달려야만 할 것 같은데 잠시 멈춰 선 이유는, 목표에 맞게 가고 있는지 중간 점검을 해야 하는 못난 습성 때문입니다. 육아를 참 일처럼 해요.



육아는 성과를 내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에요. 행복하기 위해 찬이를 낳았으니, 행복하기 위해 육아를 하는 거예요. 성과주의가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육아는 일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행복하기 위해 하는 거란 말이죠. 육아는 성취가 목적이 아니라 행복이 목적이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성취로 얻는 즐거움 말고, 다른 것으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 충분히 많아요.



아이를 키우며 커 가는 모습 속에 느껴야 할, 하루의 기쁨이 중요하고 찬이의 웃음이 중요합니다.



찬이를 키우며 내가 느끼는 모든 감정이 보상이고 행복임을 잊어버릴 때가 많아요. 찬이와 함께한 “이 시절의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를요. 제발 좀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기억하자고 나에게 쓰는 편지 같은 글입니다.


글을 쓰는 이 순간의 내가 얼마나 즐거운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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