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간이 살아가는 거였습니다

장애가정의 탄생

by 반짝이는먼지

"치료실에 가보세요."



의사 선생씩이나 된다는 사람이 왜 이따구로밖에 이야기를 못 했는지 이제는 압니다. 그 선생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내가 못 알아들은 탓입니다.



'아드님은 그 정도의 기능밖에 할 수 없는 뇌와 육체를 가지고 태어났으니, 이건 병원에서도 처방해 줄 약이나 수술법이 없네요.'라는 말을 꽤나 돌려한 셈입니다. 의사선생 자리에 내가 앉았다 생각을 하니 정말 해줄 말이 없네요. 쩔쩔매지라도 않으면 다행입니다.



느리게 걸을만해서 늦었고, 빨리 걸을 수 있는 약이라도 있었다면 처방을 해주었을 테니, 내가 잘못했어요. 말을 빨리 터지게 하는 약 또한 들어본 적이 없으니, 내가 잘못한 게 분명합니다. 줄넘기 못하는 아연이를 데리고 병원에 갈 일은 아니니까요. 그런 셈이었어요.



내가 낳았으므로 당연히 제대로 태어났을 나의 아들은 무언가 잠깐!! 잘못되어 껍데기가 씌워졌을 뿐이니, '이 껍데기만 벗으면 다 죽었어!'라는 나름 야무진? 생각을 했어요. 얼른 껍데기 벗고 남들처럼 누리며 살리라 생각을 했습니다.

다만, 이 껍데기의 원인을 아는 사람이 없었어요. 어떻게 하면 벗길 수 있는지 일러주는 사람도 없었고, 누가 알려줬으면 좋겠다며 매일 밤 일기장에 대고 하소연을 그렇게 했습니다.



어느 날, 이렇게 해보자며 손을 잡아줬던 분이 있었으니, 치료사 선생님이셨어요. 그분이 처음 건네주셨던 게 포테이지 발달검사였는데, 몇 장의 종이를 본 순간 눈이 휘둥그레지더라고요. A4 다섯 장에 빼곡히 적혀 있는 체크리스트만 다 해내면 찬이의 껍데기가 모두 벗겨질 것만 같았어요. 뭐가 됐든 다른 아이들과는 달라 보였던 이 껍데기를 벗기는 데 모든 시간을 바치기로 했습니다.






대포동 일대를 골목마다 돌며 산책을 했고, 치즈 한통 들고 중문동에서 컨벤션센터를 지나 대포동까지 그렇게 산책을 다녔습니다. 주상절리 해안 도로의 언덕배기는 찬이의 최대 난코스였고, 고근산은 뭐 껌 씹듯 드나들었으며, 가끔 군산엘 갔어요.


서귀포휴양림과 붉은오름 휴양림에선 휴양 아닌 극복 훈련을 했고, 중문 관광단지 해안 계단길에선 머리에 둘러맨 손수건이 흠뻑 젖을 정도로 극기훈련을 했지요. 여유로운 훈련코스로는 돈내코 놀이터, 칠십리 공원, 걸매 생태 공원, 예래 생태 공원을 드나들었으며, 서부 체육관 수영장 물을 2리터쯤 마실 때쯤 물속에 얼굴 담글 정도가 되었습니다.


여름이면 예래 생수천에서 얼음물 극기 훈련을 하였고, 금능해수욕장의 소라게 떼는 공포의 담력 훈련 코스가 되었죠. 나도 모르게 두 시간을 걷게 된다는 한림공원은 찬이의 두 다리를 튼튼하게 해 주었는데, 올레길 7코스에서 8코스가 죽음의 원정 훈련쯤으로 생각될 즈음, 드디어 껍데기가 조금 벗겨지는 것 같았어요.




벗겨 놓고 보니 수포자 혹은 영포자쯤으로 해석될만하달까요. 기초가 튼튼해야 정복 가능하다는 수학으로 비교를 해보자면,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죽어라 학원도 다니고 과외도 해보다 결국 3학년 1학기쯤 현실을 알게 되는 그런 느낌. 그냥 재수를 하던가, 그도 아니면 적성 찾아 삼만리를 다시 출발하는 딱 그런 기분입니다. 껍데기를 벗겨야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던 거죠.



이미 느리게 출발한 아이가 보통의 아이를 따라잡는다는 건 느리게 걸어온 길을 만회하기 위해 훨씬 빠른 발달 구간을 만들어야만 가능한 일이었어요. 더하기 빼기를 배웠으면 마이너스에서 어떻게 하면 플러스가 될지를 계산할 수 있어야 했는데 말입니다.


지금의 찬이를 보며 과연 보통의 발달 속도보다 빠른 구간의 발달을 이룰 수 있을까 의심이 드는 걸 보면, 내 눈에 씌워졌던 껍데기가 먼저 벗겨진 모양입니다.



그리고 내 눈에 씌워진 껍데기를 완전히 벗기고 나니, 찬이에게 씌워졌던 껍데기가 없었어요. 아니 처음부터 껍데기 따윈 없었나 봐요. 내가 낳은 나의 아들은 진작에 제대로 태어난 거였어요.





10년이 지나 알게 된 이 진실을 두고, 누구를 탓할 생각은 없어요. 의사 선생님이 돌려 이야기하지 않았어도 내가 곧이듣진 않았을 테니까요. 어찌 됐든 돌아와야 할 길은 꼭 돌아와야 하는 게 인생인가 보다며 도를 닦을 뿐입니다. 독독 독독 독도로로로.


먼 길을 돌아와야 깨달을 수 있는 일이기에 아무도 내게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던 거네요. 심지어 나의 엄마조차도요. 스쳐 지나간 엄마의 표정을 떠올려 보니, 엄마는 이미 알았어요... 허이고. 당신 딸이 아등바등하는 시간을 지켜보며, 이제 그만하라는 말조차 하지 못했던 이유는 그 게 엄마로서 살아야 할 내 몫이기에 입을 닫았을 뿐이에요. 당신 딸이 원하는 삶이라서, 이리 살기를 바라는 딸의 모습에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던 거예요.



지름길로 빨리 도달한들 찬이와 나의 삶은 여전히 가빴을 테니까요. 어디가 끝인지도 모르게 계속 달려가려고만 했을 테니까요. 빨리 왔든 더디 왔든 어차피 살아내야 할 시간은 같고 누려야 할 희로애락의 양도 같을 테니 억울할 일은 아니네요.





돌고 돌아온 이 길 위에 드는 생각은, 이 길이 바로 “장애인의 길”이었다는 거예요. 찬이가 장애인이라는 생각은 장애등록증을 발급받을 때조차 하지 못했어요. 의식적으로 생각을 했을진 모르지만, 마음으로는 하지 못했어요.


이 일은 다른 사람들에게나 펼쳐지는 특별한 일이라고만 생각을 했어요. 나에겐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장담하며, 곁눈질했던 과거의 마음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난 건지 모르겠습니다.



펭귄 분장을 하고 찬이의 날개 파닥임을 도와했던 학예회, 찬이 덕분에 조바심이 났을지 모를 운동회, 돗자리 한 번 다시 깔아줘야 하는 손 많이 가는 친구와의 소풍 모두 그냥 살아가는 시간들이었네요. 특히 맹구 같다고 각별하게 이야기해 준 현빈이! 이모가 잊지 않을 거야! 하하하.


덤덤하게 살아가면 그만인 거예요. 그렇게 지나온 시간들이 삶 자체로 남는 거였어요.





찬이 껍데기 먼저 벗기고 난 후에, 꿈꾸는 대로 살리라 생각했던 마음을 이제는 지워야 할 때라는 생각을 합니다. 나에게 주어진 이 시간을 놓치지 말며, 원하는 지금을 살아야 할 때라고요.



나의 이야기가 발달장애 아들을 둔 한 엄마의 이야기이길 원하지 않아요. 내가 살아가는 이야기 속에 발달장애를 만나 의외의 재미난 여행을 하게 된 이야기이길 원해요. 나의 삶에서 발달장애가 차지하는 비율은 딱 그 정도로만 내어줄 생각입니다.



그러니까 찬이야. 오늘 언어 선생님이랑 신나게 놀다 와라. 그래야 우리의 시간을 즐거움으로 기억할 수 있잖아. 엄마는 좋아하는 글 좀 쓸게. 그러자 우리. 그렇게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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