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위한다는 대단한 착각 혹은 변명
동네 엄마들 소식이 모두 모인다는 그곳, 마을 바닷가에서 담아한 카페를 운영하는 J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카페의 주인은 역시 말투까지 카페를 닮았나 봐요. 여보세요~라고 다정하게 시작하는 인사말을 들으며 심심하게 상상해본 나의 카페는 분위기조차 심심할 것이 분명할 거라는 쓸데없는 생각을 합니다. - 카페라는 곳은 여전히 로망이지 않은가 말이죠 - 말투까지 심심한 나는 전화를 몹시 심심하게 받습니다.
J 언니의 막내와 딸아이는 초등학교 2학년의 같은 반입니다. 지난 반장선거에서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해 준 딸에게 아이스크림이라도 사주고 싶다며, 정성을 다해 감사 인사를 전하더군요. 선거에서 떨어졌음에도 당선이라도 된 것처럼 신이 나게 이야기를 하는 언니의 기술은 이미 보통이 아닙니다. 이어지는 본론이 몹시 궁금해졌어요.
전화 상대로 나라는 사람은 여간 심심한 편이 아니라서 웬만해선 전화를 잘하지 않아요. 걸지도, 걸려 오지도 않는 거죠. 그럼에도 품을 들여 전화를 한 건, 학교 앞 교통정리를 도울 녹색 어머니를 권하기 위해서였어요. 시국이 시국인지라, 지국이 지국인지라, 예전보다 선뜻 나서 주는 엄마들이 없다 합니다. 근래 차량도 많아져서 건널목 위험이 커진 탓에 아이들 등교가 걱정이라며 봉사해 줄 것을 부탁하는 전화였죠.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어요. ‘봉사'라는 말을 들으면 왠지 미안한 마음이 먼저 들기 시작했어요. 내 마음은 이미 함께 할 수 없다는 거절 의사를 자동반사로 내뿜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마음이 모르는 사이, 습관처럼 함께 하고 있었던 거였어요.
교통 봉사 시간은 아이들이 등교할 시각인 8시에서 8시 50분 사이라고 했어요. 찬이와 등교 준비를 하고 등굣길을 함께 걸어야 할 시각과 같은 시간이었죠. 8시 전에 등교를 시키거나, 지각을 하더라도 8시 50분까지 등교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고 있거나, 스스로 등교를 해야만 봉사를 할 수 있었어요. 다른 아이들 등교 걱정보다 찬이 하나 등교시키는 일이 더 걱정이였죠. 생각해볼 것도 없이 고민해보고 연락드리겠다는 말 밖에 나오지를 않았습니다. 찬이 사정을 이해한다며 언니는 그렇게 전화를 끊었어요.
전화를 끊은 후에도 한동한 움직일 수가 없었어요. 마음이 불편했어요. 친절한 언니 말투 때문이라고 핑계를 대고 싶을 만큼 불편한 마음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그 이유를 알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죠. 찬이가 5학년이 되도록 교통봉사를 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뿐인가요, 5학년이 다 되도록 봉사를 권했던 사람 또한 없었음을 알았어요. 봉사 권유 전화를 처음 받아본 터였죠. 찬이 챙긴다고 늘 봉사 대상에서 제외시켜달라는 무언의 말줄임표를 달고 살았던 건 아니었을까. 부끄러웠어요. 사실이 그러하더라도, 내 마음에서 이미 봉사 열외를 외치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부끄럽고 부끄러웠습니다. 부끄러운 이 기분이 오래도록 싫었습니다. 나보다 훨씬 어려운 사정임에도 먼저 나서서 봉사하는 사람은 수두룩 했을 터였죠.
어쩌다 난 이렇게 살게 된 걸까요. 이미 불편한 마음은 떠날 줄을 몰랐어요. 찬이가 아니었다면,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았을까, 찬이는 진짜 이유일 수밖에 없을까, 얼마나 핑계가 되어왔던 걸까, 찬이는 얼마나 자주, 내 핑계로 살아왔던 걸까...
모두 착각이었던 걸까요. 찬이를 재우느라 잠을 잊은 날들이 허다했던 탓이라고, 찬이 건강을 빌미로 스스로 삶을 저당 잡혀 살았던 이유 일지도 모르겠다고 또 다시 변명을 내놓아 봅니다. 그러는 사이, 내 삶엔 이미 공동체라는 의미는 없었음을 깨달아요.
정혜윤의 <마술 라디오>에는 빠삐용(그 빠삐용 말고) 아버지가 나와요. 아버지는 정혜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제일 나쁜 건 제가 장애인의 아버지란 게 아니에요. 제일 나쁜 건 저에게 둘러댈 만한 확실한 핑곗거리가 있다는 거죠. 이 애는 내 삶이 힘들다는 언제나 편리하게 내세울 수 있는 핑계일 수 있다는 거죠. 얘를 보면 누구나 내가 힘들 거라고 쉽게 생각하니까. 저는 힘들면 아들 때문이라고 하면 되는 거죠. 그럼 간단하죠. 그러나 애가 아니어도 사는 건 어차피 힘들어요. 애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에 힘들 때도 많아요. 사는 건 복잡하고 까다롭고 제멋대로이고 엉망진창 뒤죽박죽이죠. 그렇지만 태어난 것을 생각하면 변함없이 낯설 정도로 까마득하게 신기하기만 해요."
빠삐용 아버지에 의하면, 난 정말 나빴어요. 내 삶을 찬이 핑계로 살았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죠. 너무 쉬운 핑계였어요.
핑계에 기대어 퇴사를 했고, 백수 유지 핑계도 그와 같았습니다. 시어머니 부탁도 핑계 하나면 충분했고, 엄마로서 해야 할 일도 같은 핑계로 회피가 가능했어요. 너무 편리하게 살았어요. 열정이 시들어 가는 이유도 이 핑계 하나면 깊은 고민이 필요 없을 지경이 됐어요. 이 핑계 덕에 내 삶은 언제나 힘들어야만 했으니까요. 어쩌면 힘들지 않았음에도 힘들다 내색하며 살았을지 모를 일입니다. 실패 이유는 언제나 찬이였고, 그 외 이유 또한 모두 찬이였어요. 나빴네요. 확실히 나빴어요. 찬이가 아니더라도 내 삶은 충분히 힘들었을 것을 인정할 줄 몰랐습니다. 온통 찬이 때문이라고 그렇게 핑계를 대며 살았나 봐요. 나쁘네요. 이다지도 나쁠 수가 없네요.
핑계에 기댄 일들은 또 얼마나 무서운가요. 착각 혹은 변명이었을지 모를 내 생각들에 오랫동안 갇혀 지냈나 봐요. 결정의 이유를 찬이로 몰고, 혹시나 놓쳐버린 내 삶에 본전 생각이 나버리면 이렇게나 무서운 일은 없습니다. 핑계 삼느라, 찬이에게 본전을 내놓으라 하는 무서운 생각이 치밀고야 마는 것이죠. 아이 때문에 내 소중한 걸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만큼 위험한 건 없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 그런 생각을 이미, 자주, 해왔을지 모르겠어요.
더 이상 찬이를 핑계 삼아서는 안 돼요. 여전히 찬이에겐 나의 24시간이 필요할지언정, 찬이를 핑계는 삼는 일은 이제 그만 해야 합니다. 온전히 내 삶으로 살아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