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하나 얻어먹을 그 날을 기다리며
2년만 육아에 올인하기로 했습니다.
“닥치지도 않은 노후를 위해 젊음을 낭비하지 말라”, “아이 인생에 부모 인생을 저당 잡히지 말라”, "부모의 인생도 중요하지요."라는 말에 이견은 없어요. 단지, 반하는 결정을 하게 된 데에는 적당한 변명을 내둘러 둬야 할 것 같네요. 딱 2년만 육아에 집중하기로 결정을 했기 때문입니다. 후의 일은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하기로 하고 말이죠.
다 커버린 찬이를 돌봐야 하는 상황보다, 아직 작은 찬이를 혼자 서게 하는 일이 늙어버린 미래의 나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의 선물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를 위한 투자인 셈이었죠. 남편과 살갑게 손을 잡고 산책하는 꿈을 그리는 나의 옆에, 찬이가 아닌 남편을 세우기 위해선 그래야 할 것 같았어요.
결정을 할 당시의 찬이는 40개월이었는데, 말을 못 했엉. 보통의 아기라면 12개월 전후로 걸었어야 할 인륜지대사를 29개월에 했습니다. 두 배 이상이 느렸죠. 두 가지 외에 다른 발달 상황까지 브리핑하려면 입 아프고, 대략 그런 아이였다고만 둘러대려 합니다.
돈이 많이 들 거라고 했어요. 그래서 '엄마가 능력 있을 때 돈 많이 버세요.'라는 말까지 들은 터였는데, 이상하게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엄마가 키우지 못하면 누가 더 잘 키워줄 수 있단 말인가.', '대체 어느 누구에게 이 아이를 맡길 수 있단 말인가.' 오기에 오기가 더해졌습니다. 일을 그만둘까 고민하려는 내게 그러지 말고 돈을 벌어 찬이를 잘 키워줄 수 있는 전문가나 기관에 맡겨보는 게 어떻겠냐는 대안이 쏟아졌지만, 선택받지 못했습니다. 가려운 등은 직접 긁어야 하는 나를 알았기 때문이었어요. 무엇보다 엄마 얼굴은 쌩~ 하고 무시하는 찬이가 서운했어요. 찬이와 친해질 기회를 만들지 못하면 이대로 영영 찬이의 눈 맞춤은 받아보지 못할 것 같았어요. 게다가 내가 벌 수 있는 돈의 최대치보다 맡겨 써야 할 돈의 최소치가 더 컸어요. 훨씬.
다들 노후 준비로 열심히 돈을 벌 때, 나는 찬이의 홀로서기를 노후 준비로 삼았습니다. 홀로서기가 안 되더라도 투자한 시간만큼은 덜 힘든 노후가 보장될 것이란 확신이 있었어요. 미래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지만, 살짝궁 그려지는 삶의 곡선에 따르면 찬이 밥을 평생 지어줘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어요.
'아들이 끓여주는 라면 하나만 얻어먹어보자'라는 게 목표가 됐어요. 라면 딱 한 그릇 얻어먹는 그 날이 오면, 내 노후는 풀만 뜯어먹어도 행복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