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바란 건 아니지만, 기대는 있습니다

내가 자라 온 기억으로 아이를 키운다

by 반짝이는먼지

“부모는 자신이 자라 온 기억으로 아이를 키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꽤 당연한 얘기처럼 들리는 이 이야기는 사실 제가 지어낸 말입니다. 흔한 격언이라도 되는 양, 믿고 싶은 염원으로 적어봤습니다.


말 못 하는 찬이를 다른 이에게 맡길 수가 없었어요. 기대와 다른 아들의 발달 걱정에 목 끝까지 위기감이 차오를 때쯤 선택을 해야 했죠.

올가 토카르추크의 <방랑자>에는 장애를 가진 아들을 보살피는 엄마 아누슈카가 나옵니다. 매일같이 얽매여 있는 집안의 삶에서 도망치듯 나온 아누슈카가 며칠 동안의 방황 끝에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듯, 저도 아이와 별개일 수 없는 나를 직감하며 인생의 “꿈”이라 생각했던 것들에 자문을 해야 했습니다. 삶의 가치가 어디쯤 있었는지 찾아야 했어요.

나는 아이를 직접 키워야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를 맡겨두고 남 탓으로 돌릴, 어리석은 나를 알아 버렸습니다.



직접 키우기로 결심하게 된 배경엔 어릴 적 기억이 큰 자리를 차지했어요. 30여 년이 지나도 또렷하게 기억이 나는 일들 같은 거였죠.

어릴 적 저는 그리 눈에 띄는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 지금도 눈에 띄는 인물은 아니지만 - . 보통의 숫기 없는 여자애였어요. 소극적이고, 부끄러움이 많고, 학교 가는 게 부담으로 가득한 어린 시절을 기억합니다. 노는 것도 그냥저냥, 공부도 그냥저냥, 외모도 그냥저냥, 무리 속에 있으면 존재감조차 없는 아이랄까요. 평범한 학교 생활을 해오다 초등학교 3학년의 3월, 학력평가에서 올백점을 맞았어요. ‘초등 때는 누구나 올백이지...’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워낙 이해력이 뒤졌던 저에겐 큰 사건일 수밖에 없었어요. 선생님이 유난히 놀라워하던 모습이 기억이 납니다. 아마도 믿지 못하셨던 게 아닐까 싶어요.


내 눈에 또렷하게 정답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숫자를 보기만 해도 뱅글뱅글, 이해가 되지 않던 문제를 읽으면서 답이 보이기 시작했던 그때의 신비함은 저만 기억하는 일입니다. 누군가 간밤에 마법을 걸어놓고 간 것처럼 하루아침에 일어난 신기한 일이었죠. 그 후로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 틀린 문제는 열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가 됐어요.


이야기의 요는, 한순간 머리가 맑아지듯 깨치는 경험에 대한 이야기에요. 누구나 그런 시기가 있다고 생각을 했고, 찬이에게도 그런 시기가 올 거라는 믿음이 있었죠. 후에, 내가 겪은 이 일이 뇌 발달의 결정적 시기였을 거라는 걸 알게 됐고, 여전히 믿음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마법 같은 경험이 저에게는 아주 신비로운 것이어서 강력한 믿음까지 주었습니다. 찬이에게 기적을 바라진 않지만, 기대하는 마음이 있는 이유입니다. 작은 마법이 어느 날 올 것을 믿기 때문에요.




더 많이 안아줄 걸. 다섯 살의 찬이


어릴 적 기억은 아이를 키우면서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서른을 지날 때까지 지난 일들을 돌아보는 일이 적었어요. 앞만 보며 달리기에도 바빠서 추억할 수 있는 기억이 많지 않은 시절을 보냈어요. 가끔 친구들을 만나면 과거 이야기에 놀랄 정도 였으니까요. 그랬던 제가 아이를 키우며 어릴 적 기억을 되짚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제 자신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서울의 어느 초등학교에도 찬이를 보내고 마음 편할 자신이 없었어요. 여전히 쫄보인 원초적 성격이 있는 탓입니다. 나에게 마법을 걸어준 모교라면 찬이에게도 때가 와줄지 모른다는 기대를 하게 됐습니다. 인생의 고삐를 180도 바꿀 계획 속에 기적을 바라진 않지만, 기대는 있었습니다. 어릴 적 경험에 빗댄 기대라는 것이요. 어리석을 정도로 기대는 아직까지도 유효합니다.


찬이는 이제 5학년이 되었어요. 마법이란 것이 이미 지나가 버린 건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만, 그냥, 모른 채로 계속 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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