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뚜벅뚜벅
내게로 다가왔다
아직 때가 아니라고
여름에 더 머물고 싶다고
소리쳐 보았지만
가을은 여지없이
나를 물들였다
조금만 더 시간을 달라고
여름을 마음껏 호흡하지 못했다고
이루지 못한 것들이 너무도 많다고
아니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고
몸부림쳐 보았지만
몸부림칠수록 내 몸은
더욱더 빨갛게 물들어갈 뿐이었다
누구에게나 가을이 온다는 것을
새삼스레 나는
빨갛게 물든 얼굴과 몸을 보며
발견하고 있었다
겨울도 멀지 않았어, 하고
가을은 말했다
겨울이 오면 그때에도
시간을 조금만 더 달라고
몸부림칠 거니?
싸늘한 바람을 일으키며
가을이
빨갛게 물든 내 몸을
세차게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