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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룸 Feb 10. 2022

혼술의 시간

  혼자서 술 마시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S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S는 혼술을 하며 살고 있다. 


  사람들이 술을 마시는 이유는 알딸딸해지고 싶어서라고 S는 생각한다. 대부분의 삶이란 무미건조하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삶이다. 사람들은 특별함을 원한다. 그러나 특별한 일은 쉬이 일어나지 않는다. 권태로운 삶에서 벗어날 길은 없을까? ……없다. 잠시만일지라도……. 그게 술이다. 어차피 어제 같은 오늘, 오늘 같은 내일이지만 술을 마시면 잠시 해방감을 느낀다. 알딸딸해지는 상태는 모든 현실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든다. 모든 억압에서 풀려나는 것 같고 뭐든 가능할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그러나 알딸딸한 상태를 넘어서면 위험해진다. 그런 상태에 계속 머물고 싶어서 줄기차게 술을 마시면 중독이 되고, 중독이 되면 벗어나기가 힘들다. 무미건조한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려 술을 마시는 건데, 중독이 되면 현실로부터 점점 멀어져 가게 된다.


  스무 살 때 S는 통과의례처럼 술을 마셨고, 이후로 저녁에 사람들끼리 만나면 술을 마시는 것이 당연한 세상을 살았다. ‘술도 안 마시면 무슨 재미로 살아’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었다. 별로 마시고 싶지 않을 때에도 ‘관계’라든가 ‘소속감’ 같은 것을 위해서 마셔야 한다. 모두가 흥청망청 마셔대는 자리에서 혼자 맨 정신으로 멀뚱멀뚱 앉아 있는 것도 고역이다. 실컷 마시며 취하고 싶은데 상대방이 호응해 주지 않으면 짜증이 나기도 한다. 그렇게 술은 가끔씩 피치 못할 사정처럼 삶에 작동해왔다. 그래도 큰 아픔을 주는 사건 같은 게 벌어지지 않는 한 혼술은 하지 않았었다.


  S는 마흔앓이를 오래도록 심하게 했다. 그때부터였다, 혼술의 시작은. 서른아홉에 만나던 여자와 헤어졌고, 새로운 여자를 만나기 위해 애써보았지만 쉽지 않았다. 쉽지 않은 이유를 헤아려 보니 ‘마흔=청춘의 끝’이라는 인식과 맞닥뜨려야 했다. 청춘 시절엔 사랑이라는 마음 하나로 연인 관계가 성립할 가능성이 많지만, 청춘 시절이 지나고 나면 사랑이라는 마음만으로 관계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희박해진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다. 


  벌어놓은 돈도 많지 않고, 앞으로도 많은 돈을 벌 가능성이 없는 S는 그런 현실을 자각하게 되자 한없이 착잡해졌고, 착잡한 마음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고 싶어 혼술을 하게 되었다.


  처음엔 주로 술집에서 마셨다. 이삼십 대 시절 술집에서 혼자 술 마시는 사람을 볼 때면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S 자신이 이제 그러고 있는 것이었다. 주변의 시선이 의식될 때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착잡한 현실에서 놓여나 잠시나마 알딸딸해지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주로 소주를 마셨다. 맥주를 마시면 자다가 깨어나 소변을 보아야 할 때가 많다. 귀찮은 노릇이다. 막걸리를 마시면 너무 배가 부른다. S의 주량은 소주 한 병이고, 주량을 넘어서면 위험하다는 걸 알기에 한 병만 마셨다. 그러나 몹시 우울한 날에는 자기도 모르게 한 병을 더 주문해서 마시게 되었는데, 그런 다음 날이 되면 어떻게 집에 돌아왔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을 때가 많았다.


  언제부턴가 술집은 가지 않게 되었고 집에서 마셨다. 혼술의 시간을 조금이나마 의미 있는 시간으로 바꾸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고나 할까. 술집에서는 멍하니 앉아 있거나 술집 벽면에 걸린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방송을 보고 있을 때가 많았다. 내가 원하는 것을 보면서 술을 마셔야겠다고 S는 생각했고, 그때부터 집에서 유튜브나 영화를 보면서 술을 마시게 되었다.


  가끔씩 술을 마시지 않고 꾹 참고 그냥 잘 때도 있는데, 그런 날이 이제 비일상적인 날이 되고 말았다. 


  혼자서 술 마시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S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세상도, 인생도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만 굴러가지 않는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살아가는 것이 막막하게 느껴질 때, 일상이 무미건조하게 느껴질 때면 잠시 알딸딸해지고 싶어진다. 그래서 S는 혼술을 한다. 다만, 알딸딸한 상태를 넘어 무아지경에는 빠지지 않기 위해 소주 한 병으로만 제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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