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수록 S는 겨울이 싫어진다. 봄, 여름, 가을만 이어졌으면 좋겠다. 겨울이 되면 태양의 고도가 낮아지고, 태양이 아파트나 빌딩에 가려 빛을 볼 수 있는 시간도 줄어든다. 그렇잖아도 성격이 활달하지 않은 S는 겨울이 되면 더욱 의기소침해진다.
냉동고 안에 놓여 있는 것처럼 기온이 차갑거나 칼바람이 불어오는 날이면 아예 밖으로 나가고 싶지가 않다. 개구리나 너구리처럼 겨울잠을 잤으면 싶다. 그러나 물론 그럴 수는 없고, 목도리를 두르고 귀마개를 하고 장갑을 끼고서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교습소로 향한다. 싸늘한 공기가 점령하고 있는 교습소에 도착하여 선풍기 모양으로 된 전기난로를 켜고 책을 읽거나 컴퓨터로 뉴스를 본다. 전기난로는 열이 나오는 부근만 따뜻하다. 마음껏 온풍기를 틀어대고 싶지만, 전기세가 많이 나올까봐 그러지 못한다. 온풍기는 수업을 할 때만 작동시킨다. 그깟 전기세 때문에 온풍기도 마음껏 틀지 못하며 사는 인생이라니……. 이런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돈이 많지 않고, 더 벌릴 가능성도 희박한데 어찌하랴. 코로나 사태가 터진 이후로는 새로 들어오는 학생은 거의 없다시피 하고, 상담조차 가뭄에 콩 나듯 드물어졌다.
날은 춥고 온풍기도 팍팍 틀 수 없는 처지에서 S가 찾은 방법은 자동차 안에서 머무는 것이다. 전제조건은, 자동차를 햇빛이 잘 비치는 곳에 두는 것이다. 차가운 기온과 바람이 강철과 유리로 차단되고, 차단된 좁은 공간이 태양열을 흡수하게 되니 몹시 따뜻하다. 그 안에서 책을 읽고 있자면 더울 때도 있고 졸음이 몰려올 때도 있다. 그럴 때면 잠시 문을 열어두거나 밖으로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야 한다. 물론 태양이 보이지 않는 날에는 아무 소용없는 방법이다.
당연하게도, 밤이 되면 더욱 춥다. 교습소에서 나오면 S는 처음엔 천천히 걷다가 차츰 빠르게 걷다가 나중엔 뛰어간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다. 평소에 운동을 하지 않으니 이렇게라도 운동을 할 수 있어서 좋다는 생각을 억지로 주입한다. 군 생활을 할 때가 떠오른다. S는 강원도 철원의 전방에서 군 생활을 했었는데, 그곳은 현재 S가 살고 있는 전주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추웠다. 밤에 철책 앞 초소에서 근무를 할 때면 추워도 너무 추워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사수와 부사수가 권투를 하곤 했다. 권투라기보다는, 그저 마구잡이로 방한 장갑을 낀 손을 서로의 몸을 향해 내두르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원룸에 도착하면 빈 방 또한 싸늘하기는 마찬가지다. ‘외출’ 버튼을 눌러두면 온기가 남아 있으련만…… 역시 가스비가 많이 나올까 염려되어 밖으로 나올 때면 도시가스 전원을 아예 꺼두기 때문이다.
겨울이면 S는 샤워하기도 싫어진다. 그러나 이틀에 한 번씩은 머리도 감고 면도도 하고 몸도 씻어야 한다. 귀찮다고 해서 하지 않으면 꼴이 말이 아니게 되고 냄새도 나니 어쩔 도리가 없다. 휴대폰에 저장해 둔 음악을 틀어둔 채로 속옷만 입고서 S는 춤을 춘다. 샤워하기 전에 몸을 덥히기 위한 목적으로 행하는 몸부림이다. 영화 <아비정전>에서 장국영이 속옷만 입은 채로 거울을 보며 맘보를 출 때처럼 멋있어 보였으면 좋으련만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멋하고는 한참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러니까 S는 겨울에 다른 계절에는 하지 않는 달리기도 하고 춤도 춘다. 순전히 추워서이다. 달리기도 춤도 필요 없는 봄이 빨리 왔으면 싶다. 그러나 사계절 중에서 겨울이 가장 길다. 길어도 너무 길다.
백석 시인은 외롭고 쓸쓸한 겨울에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어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한다고 했다. 백석 시인보다 훨씬 좋은 시대에 훨씬 따뜻한 겨울을 지내고 있음이 분명한 S는 좀 더 꿋꿋하고 의연하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며 침대에 눕는다. 그러나 아직 온기가 올라오지 않아 썰렁한 이불 속에서 몸을 웅크린 채 뒤척거린다. 그러면서 ‘연인 로봇’ 같은 거라도 구입해서 껴안고 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백석 시인의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에서 인용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