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 빠지다 #5
불가(佛家)에서는 모든 만남과 헤어짐의 과정을 인연의 작용으로 본다. 인연이 아닌데 억지로 인연을 만들려고 한다고 해서 인연이 되는 것이 아니요, 인연인데 피한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인연이란 태어나기 전부터의 연결고리, 그리고 태어난 이후의 삶의 과정이 모여 형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순간의 의지나 방향 전환으로 손쉽게 바꿀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선은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 다음 찬찬히 대응책을 타진해 볼 일이다. 태어난 이후의 삶의 과정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결국은 ‘나’의 문제로 수렴된다고 보아야 한다.
인연은 빛의 작용으로부터 출발했다. 어떤 빛에 놓여 있느냐에 따라 개체의 특성은 형성되었고, 빛의 변화에 따라 개체의 특성도 조금씩 달라져 왔다. 그리고 여전히, 모든 생명체는 변화의 과정 속에 있다, 매순간 달라지는 빛의 작용 속에서.
그러나 빛보다 우선인 것은 어둠이다. 어둠이 없다면 빛도 없다. 어둠이 깊을수록 빛이 소중하게 다가온다. 그러므로 빛과 인연의 의미를 깨치기 위해서는 어둠 속에 침잠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세상이 시시각각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구름만큼 잘 보여주는 것도 없는 것 같다. 자동차를 몰고 가다가 멋진 구름을 발견하고 사진에 담아야지 생각하며 길가에 정차를 하고, 카메라를 꺼낸 후 다시 하늘을 바라보면 얼마 전에 보았던 형상이 이미 아니다. 조금 지나면 이런 모양이 될 거야, 하고 내 나름의 원하는 형상을 머릿속에 그리며 기다려 보면 전혀 엉뚱한 모양으로 바뀌어 있다. 세상은 내가 꿈꾸는 것과는 다르게 흘러간다는 교훈을 심어주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그러니 너무 집착하며 살지 말게, 하고 구름은 말하는 듯도 하다. 뜻한 대로 세상이 돌아가지 않는다고 해서, 원하는 대로의 장면이 연출되지 않는다고 해서 너무 실망하거나 화를 품지 말라고, 조바심치면 마음만 상할 뿐이라고,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게 세상 이치이니 차분한 마음으로 뚜벅뚜벅 갈 길을 가라고, 그러다 보면 뜻하지 않은 멋진 일을 만나게 되기도 한다고…….
맑은 날에만 사진 찍을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흐리거나 비가 오면 멋진 장면이 연출되지 않을 거라고 지레짐작한다. 하지만 맑은 날에 어울리는 장면이 있듯, 흐리거나 비 오는 날에는 맑은 날에는 결코 만날 수 없는 장면들이 펼쳐진다. 흐리면 흐린 대로의,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의 느낌을 잘 포착하여 드러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사진의 맛이 아닐까 싶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늘 좋은 일만 일어나기를 바랄 수 없듯이 기상 현상도 마찬가지다. 아니, 늘 좋은 일만 일어난다면 ‘좋다’는 개념 자체가 없으리라.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안 좋은 일이 있기 때문에 좋은 일이 좋게 느껴진다. 어둠이 없다면 빛이 없듯, 늘 맑은 날만 있다면 ‘맑다’는 개념도 없으리라. 흐린 날이 있기 때문에 맑은 날의 가치가 생성된다. 흐린 날은 그래서 소중하다.
어떤 기상 상태냐에 따라 빛이 달라지고, 그에 따라 똑같은 장소에서도 다양한 그림이 연출된다. 특히나 좋은 빛을 만나기 위해서는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 미지수로 등장하는 것이 안개다. 안개는 평범한 사물에도 신비의 장막을 드리워준다. 그래서 멋진 안개는 사진에 회화적인 느낌을 증폭시켜 준다.
안개에도 종류가 다양하다. 눈물 나게 조금 낀 안개가 있는가 하면, 아예 온 세상을 뒤덮을 듯한 안개도 있다. 멋진 사진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적당량이 필요하다. 너무 적어도 너무 많아도 문제다. 비빔밥에 적정량의 참기름을 넣어야 맛있듯이, 시험을 치를 때 적정한 긴장감을 유지해야 최고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듯이.
그러나 어느 정도의 안개가 낄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리하여 멋진 풍경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우연과 행운도 어느 정도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참기름의 양은 우리가 조절할 수 있지만, 안개의 양은 예측하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