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의 기초에 대하여

사진에 빠지다 #4

by 이룸

뛰어난 사진에 대한 욕심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 그보다 더 앞서야 하는 것은 자연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다. 자연이 있고 나서 인간이 존재하는 것이고, 그러고 나서 인간이 만든 기기들 또한 존재하는 것 아니겠는가. 자신만의 욕심으로, 다시 말해서 ‘소유’의 관념으로 사진을 찍는다면, 당장의 기분은 좋을지 모르나 제대로 된 작품이 나오지 않을 공산이 크다. 사진은 대상의 겉모습뿐만 아니라 대상과의 교감이 또한 반영되며, 특히나 사진을 찍는 사람의 마음이 투영되기 때문이다.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 마르틴 부버의 <나와 너>는 사진의 세계에서도 중요한 화두를 던져주는 책이다. 에리히 프롬은 ‘소유 지향’의 삶을 지양하고 ‘존재 지향’의 삶을 추구하라고 말하고 있으며, 마르틴 부버는 ‘나와 그것’의 삶을 살지 말고 ‘나와 너’의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라고 강조하고 있다.


피사체를 욕망 충족의 대상보다는 관심과 애정의 대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소유’보다는 ‘소통’의 매개체로 사진기는 작동하여야 한다. 어린 아이를, 작은 동물이나 식물을 찍기 위해서는 되도록 몸을 낮추어 그들의 눈높이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그래야 그들을 제대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의 기초는 그러한 낮춤의 자세로부터 시작된다.


사진의 기초1.jpg 2010년 9월 부전나비


사진을 찍는 데 있어서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보는 눈’이 아닐까 싶다. ‘보는 눈’이 없이 기교를 많이 익힌다한들 좋은 사진이 나올 성싶지 않다. 기교가 앞서면 잔재주만 늘어나, 현란하지만 깊이가 없는, 금세 식상해지는 사진만 양산될 게 뻔하다. ‘보는 눈’이 있다면 본 대로 찍기 위해 자연스레 기교 습득에 노력을 기울이게 되리라. 그러므로 ‘보는 눈’이 우선이고, 기교는 그 다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보는 눈’을 키울 수 있을까? 이곳저곳 자주 돌아다닌다고 해서 보는 눈이 커질 것 같지는 않다. 이것저것 조금씩 맛보는 것보다는 한 가지를 깊이 파고드는 자세야말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불가에서 하나의 화두를 붙잡고 몇 년 동안 면벽수행을 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세상 모든 이치는 통하게 마련이다. 꽃 한 송이가 아름답게 피어나는 과정과 운동선수가 자신의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과정이 무관하지 않다.


일이관지一以貫之(하나의 이치로써 모든 것을 일관함)의 정신으로 한 가지에 집요하게 천착해 본다면 다른 것에서도 이해와 응용이 수월하리라. 폴 오스터의 소설 『오기 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웨인 왕 감독이 <스모크>라는 제목으로 영화를 만들었다)에 보면, 매일 똑같은 시간에 자신의 가게 앞에 삼각대를 받치고서 사진을 찍는 남자가 나온다. 매일 똑같은 날들 같지만, 일 년 365일 단 하루도 같은 날은 없다. 굳이 먼 곳에 갈 필요가 없다. 가까운 곳에서 시작해 보자. 파랑새는 먼 곳에 있지 않다.


사진의 기초2.jpg 2011년 7월 덕진공원 연꽃


전주의 덕진공원.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자주 간다. 사진을 찍기 전에는 몇 년에 한 번, 약속이 있을 때에나 가곤 했다. 그저 ‘만남의 장소’ 그 이상의 의미가 없었다. 그러나 사진을 찍게 된 이후론 수시로 들르게 되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각기 다른 풍광에 새삼스레 눈을 뜨게 되었다. 오전, 오후, 저녁에 따라 달라지는 빛과 그 빛에 조응하는 사물들, 그리고 사람들…….


연꽃의 모양과 변화만으로도 수천, 수만 가지의 사진이 나온다. 우아한 연꽃, 수줍어하는 연꽃, 슬픔을 머금은 연꽃 등등. 활짝 피어난 한여름의 화려한 연꽃도 아름답지만, 꽃봉오리가 맺힐 때, 연밥이 영글어갈 때, 그리고 꽃이 지고 나서의 모습도 제각기 독특한 아름다움을 선보인다.


사진의 기초3.jpg 2012년 7월 덕진공원 연꽃
사진의 기초4.jpg 2012년 12월 덕진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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