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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룸 Oct 07. 2022

아픈 헤드뱅잉의 기억 #1

  한때 두 남자를 두고 저울질한 적이 있다.     


  나는 제니스 조플린이나 멜라니 사프카 같은 싱어 송 라이터를 꿈꾸었다. 그러나 노래를 잘 부르지도 못했고, 기타는 몇 달 간 만지작거리다가 포기하고 말았다. 내가 잘 하는 거라곤 남들보다 음악을 많이 안다는 것밖엔 없었다. 그래서 DJ를 보게 되었다. 점심시간(정오에서 두 시까지)과 저녁시간(여섯 시에서 여덟 시까지)에는 <나폴리> 레스토랑에서 세미클래식 위주로 음악을 틀었다. 손님들이 편안하게 식사를 하고 얘기를 나눌 수 있도록 잔잔하면서도 맑은 느낌의 음악들을 선곡하여 흐르게 하는 것이 나의 임무였다. 


  밤 아홉 시에서 열한 시까지는 <마니아 클럽>에서 DJ를 보았다. <마니아 클럽>은 록이나 헤비메탈을 큰 소리로 들으며 술을 마시고 흥이 나면 일어나서 춤을 추는 공간이었다. 일곱 시에서 아홉 시까지는 스물다섯 살 먹은 규형이라는 남자가, 열한 시에서 새벽 한 시까지는 삼십대 후반의 이혼녀인 사장 ‘연화’가 DJ를 보았다. ‘연화’는 가명이었고, 본명은 양금옥이었다. 


  <마니아 클럽>에서 나는 토요일이면 쉬었다. 그 시간에 라이브 공연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룹 이름이 ‘판타스타’였고, 신우창이라는 이름의 서른세 살 먹은, 나와 동갑인 남자가 리드보컬과 세컨드기타를 맡았다. 쉬는 날이지만 나는 토요일에도 줄곧 클럽으로 향했는데, 그를 보기 위해서였다. 


  우창은, 이를테면 나의 이상형이었다. 내가 꿈꾸었던 삶을 그는 현실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물론 세상에 내놓은 음반도 없고, 창작곡보다는 주로 메탈리카의 음악을 연주하고, 기타 치는 모습과 손짓마저도 메탈리카의 제임스 헷필드를 모방하는 수준이었지만,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가까이에 기타를 잘 치고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이 있어서 토요일마다 지켜볼 수 있다는 그 자체가 중요했다. 내가 저 정도, 아니 저 정도의 반에 반만이라도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나는 매번 생각하며 부러워하곤 했다. 그래서 토요일마다 나는 맥주 한두 병을 마시며 자리에 앉아 가볍게 헤드뱅잉(Headbanging)을 하곤 했다.

  우창은 평일에 멤버들과 함께 오거나 혼자 와서 술을 마시기도 했다. DJ를 보기 전이나 본 후에 가끔씩 그와 얘기를 나누곤 했는데, 그와 나는 정말 잘 맞았다. 음악적인 취향도 그렇고, 무엇에 얽매이기 싫어하고 자유분방하게 살고 싶은 성격 면에서도 그러했다. 


  언젠가는 그가 나에게 ‘헤드뱅잉의 기교’를 전수해 주기도 했다. 헤드뱅잉의 기본은 고개를 위에서 아래로 가볍게 흔들어대는 것이지만, 그것만 계속 반복하면 단조로울뿐더러 재미도 적다는 것, 위에서 아래로 흔들어대더라도 약강의 리듬이 반복될 땐 고개를 아래로 떨어뜨릴 때 좀 더 힘을 주어 그 반동으로 고개가 위로 자연스럽게 솟구치게 할 것, 부드러운 멜로디가 이어질 땐 고개를 좌상에서 우하로, 우상에서 좌하로 X자 형태를 그리며 움직이면 우아한 느낌이 든다는 것, 음악이 절정으로 치달을 땐 고개를 원 모양으로 빠르게 돌리며 몰입할 것 등이었다. 이전까지 나는 그저 고개를 위아래로 가볍게 움직이는 동작을 반복했는데, 이후로는 세련된 헤드뱅잉을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우창이 손을 내밀면 나는 언제라도 즉각 그에게 빨려 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알게 된 지 1년이 지났어도 그는 영화를 보러 가자거나 바람 쐬러 나가자는 얘기를 하지 않았다. 하긴 변변한 직업도 없는 처지에 그런 말을 섣불리 꺼낼 수는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긴 했다.     


  그러던 중에 나를 미친 듯이 좋아하는 남자가 나타났다. 내가 DJ를 볼 때면 꼬박꼬박 음악을 신청하곤 했는데, 딮퍼플의 ‘Highway star’, 크라잉넛의 ‘말달리자’, 본조비의 ‘It’s my life’, 노브레인의 ‘넌 내게 반했어’ 같은 곡들이었다. 신청곡 아래에는 ‘나의 여신님께 음악을 신청하오니 꼭 틀어주옵소서’ 같은 말이 적혀 있곤 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곡이 나오면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추곤 했는데, 어떤 음악이 나오든 늘 똑같은 움직임이었다. 엉덩이를 좌우로 씰룩대면서 양손의 검지를 위로 쳐들고 번갈아가며 허공을 찔러대는, 디스코에나 어울릴 법한 동작이었다. 리듬과는 전혀 맞지 않는 춤을 추면서 흥겨워하는 꼴을 볼 때면 신기함을 넘어 애처로운 느낌마저 밀려들 지경이었다.


  DJ 보기를 마치고 나서 빈자리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으면 남자는 가끔씩 용기를 내어 쭈뼛거리며 다가와, 저기……, 앞자리에…… 앉아도 되겠습니까? 하고 말하며 몸을 비비 꼬곤 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면 자리에 앉아, 당신은 나의 비너스라는 둥, 당신을 위해서라면 내 모든 걸 바칠 수 있다는 둥 찬양일색의 말들을 주워섬겼다. 나는 그저 피식피식 웃음 지으며 듣기만 했다. 입에 발린 말일지언정 공주가 되어 떠받들어지는 느낌에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이름은 허상진이고, 교육청에서 근무하는 7급 공무원이며, 나이는 서른아홉이라고 자신을 밝혔다. 혹시……, 하고 언젠가는 안절부절못하며 물었다. 결혼…… 하신 건…… 아니죠? 피식 웃으며 내가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남자가 두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그러곤 만세삼창을 했다. 비유적으로가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했다. 만세! 만세! 만세!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지만 그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창피한 건 나였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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