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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룸 Oct 07. 2022

아픈 헤드뱅잉의 기억 #2

  한동안 나는 고민에 빠져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남자를 선택할 것인가, 나를 좋아하는 남자를 선택할 것인가. 현실적으로 따지자면 당연히 상진이었다.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는데다가 나를 여신으로 떠받들어주니 편안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었다. 우창은 나에게 ‘헤드뱅잉의 기교’ 같은 것을 알려주었지만, 그런 것이 현실을 살아가는데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직업도 없이 가끔씩 클럽에서 헤비메탈 공연을 하는 남자와 함께 산다면 먹고살 길이 아득할 것은 안 봐도 훤한 일 아닌가.


  마음 같아서는 애 낳고 키우는 건 상진과 하고, 데이트와 잠자리는 우창과 하고 싶었다. 과연 그렇게 살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진지하게 머리를 굴려본 적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 둘 중에 한 명을 선택할 수밖에 다른 도리는 없겠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나는 우창과 함께 살기로 마음먹었다. 머리보다는 가슴을 따르기로 했다. 만약 내가 상진을 선택한다면 우창을 누가 데리고 살 것인지 심히 걱정이 되었다. 현실적인 안정이라는 이기심을 버리고 이타심과 희생이라는 거룩한 마음을 내 안에서 끄집어내기로 작심했다. 내가 지금 버는 돈으로는 두 사람이 살아가기엔 빠듯하겠지만, 그러면 분식점이라도 차리면 되지 않겠는가. 설마하니 산 입에 거미줄 치랴 싶은 심정에서였다.      


  결과적으로 보건대, 걱정도 팔자였다. 그 토요일, 우창에게 고백할 생각으로 가슴이 콩닥거렸고, <나폴리> 레스토랑에서 <마니아 클럽>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여느 때보다 빨랐다. 


  빈자리에 앉아 있는데, 사장이 다가오더니 환하게 웃으며 잠깐 보자고 했다. DJ박스 옆에 사장의 사무실이 있었는데, 한 달에 한 번, 그러니까 월급날 들르는 곳이었다. 그러나 그날은 월급날이 아니었다. 무슨 일이지? 설마 그만두라고 말하려는 건 아니겠지?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니 그건 아닐 것 같은데…….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사무실로 들어서니 소파에 우창이 앉아 있었는데, 나를 보더니 쑥스러워하는 미소를 내보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상한 기운에 나는 휩싸였다. 사장은 나에게 우창의 맞은편으로 앉으라고 권하고, 자신은 우창의 옆으로 가서 앉았다. 그러더니 쓰윽, 우창의 손을 잡는 게 아닌가. 


  “경미야, 우리 결혼하기로 했어.” 사장이 활짝 웃으며 우창을 쳐다보았고, 우창은 다시금 쑥스러워했다. “그동안 몰래몰래 데이트하느라 혼났네. 그것도 못할 노릇이더라고. 그래서 공식적인 부부로 사는 게 편하겠다는 결론에 이르렀어.”


  “어머” 하고 나는 놀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날벼락을 맞은 것처럼 놀랐지만,  눈깔 뒤집고 팔짝팔짝 뛰다가 까무러치고 싶었지만, 용케도 자제심을 발휘하여 그런 상황에서 누구나 지었을 법한 미소를 머금는데 성공했다. “축하드려요, 사장님.”


  사장은 신나 하며 말을 이었다. 자신이 나이가 더 많지만 요새는 남자가 연하인 경우도 꽤나 많다는 둥, 딸린 아이가 있긴 하지만 ‘우리 자기’가 ‘우리 꼬맹이’를 몹시도 귀여워한다는 둥, 앞으로 ‘우리 자기’를 위해서 번듯한 연습실을 마련해 줄 거라는 둥……. 네, 네, 하며 듣고는 있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자꾸만 머릿속이 하얘지는 느낌이었다. 


사무실에서 나와 그냥 집으로 가야겠다는 마음이었지만, 상진이 눈에 띄었고, 반사적으로 나는 그에게로 다가갔다.


  “함께 마셔도 될까요?”


  느닷없는 나의 말에 상진이 입을 헤 벌린 채 놀라워하더니,


  “그럼요, 그럼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맞은편의 의자를 빼내어 주었다.


  ‘판타스타’의 공연이 시작되었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헤드뱅잉을 시작했다. 우창의 얼굴을 보지 않기 위해 무대를 등진 채로 헤드뱅잉을 했다. 우창이 전수해 주었던 다양한 기교를 마음껏 구사했다. 리듬과 멜로디에 따라 내 고개는 감각적으로 율동했다.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로도 다시는 흉내 낼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현란한 헤드뱅잉이었다. 다른 때 같으면 중간 중간에 발라드곡을 섞곤 했는데, 그날은 뭐가 그리 흥겨운 건지 계속해서 빠르고 신나는 곡만 연주했다. 그래서 나는 두 시간 동안 미친 듯이 헤드뱅잉을 하고 또 했다. 내 앞에서는 상진이 헤벌쭉 웃음을 머금은 채 엉덩이를 좌우로 씰룩대며 양손의 검지를 위로 쳐들고 번갈아가며 허공을 향해 찔러댔다. 어떤 음악이 나와도 이 춤 하나로 모든 게 해결된다는 듯이.


  다음 날 잠에서 깨어났을 때 목이 퉁퉁 붓고 움직여지지 않아 입원을 해야 했다. 입원해 있는 동안 상진이 하루도 빠짐없이 찾아와 주었고, 감동한 나는 눈물을 흘리며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날로부터 10년이 흘렀고, 나는 공무원의 아내이자 두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고 있다. 그날 이후 DJ 보는 것도 그만두었다. 결혼한 이후로도 줄곧 나를 여신처럼 떠받들던 남편은 언제부턴가 사모님 모시듯 하더니 지금은 아줌마로 대하고 있다.


  그런 남편을 나는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는다. 그날, 나는 확실히 깨달았다. 전에는 가물가물했던 삶의 지침들을 확고하게 인식하게 되었고 가슴 깊이 아로새기는 계기가 되었다. 나의 생각과 타인의 생각은 결코 같을 수가 없다는 것을,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게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을,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흘러간다는 것을,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클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날 이후로 나는 타인에게, 세상에 대해 큰 기대 없이 살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남편에게 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많은 기대를 하지 않는다. 나 자신에 대해서도 물론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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