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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룸 Feb 04. 2021

술과 당신의 이야기 #2

  임은정이 이끄는 대로 곱창집에 들어갔다. 그녀가 곱창도 먹는구나, 하고 너는 놀랐다. 임은정이 소주를 주문했다. 그녀가 소주도 마시는구나, 하고 너는 다시금 놀랐다. 언제부턴가 포도주 한 잔씩을 마시고 잠자리에 드는 버릇이 생겼어요, 하고 임은정이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더라고요, 하고 생긋 미소 지으며 덧붙였다. 가끔씩은 취하도록 마시고 싶어질 때가 있어요. 오늘이 그런 날인데…… 카페 사장님 앞에서는 그럴 수가 없잖아요. 그녀는 다시 생긋 미소를 짓고 나서 소주를 들이켜고 곱창을 오물거렸다.


  오늘 무슨 안 좋은 일이 있느냐고 너는 물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지원했는데…… 또 떨어졌지 뭐예요. 임은정이 발갛게 물든 얼굴로 시무룩하게 대답했다. 그러곤 혼자서 넋두리를 하듯이 말을 이어나갔다. 솔로이스트로서의 삶은 이미 물 건너간 것 같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기 위해 시립 교향악단 같은 곳에 몇 번 지원해 보았으나 매번 탈락했다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카페에서 연주를 하고는 있지만 언제까지나 이 일을 하고 싶지는 않고, 그러면 이제 남은 길은 피아노학원을 차려서 아이들 가르치는 일밖에 없는 것 같은데…… 꿈꾸던 삶에서 자꾸만 멀어지는 것 같아 서글퍼진다고. 


  아…… 임은정도 비슷한 고민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니……. 놀라움을 넘어서 충격적이었다. 항상 우아하게 말하고 미소 짓고 연주하는 그녀가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그녀가 그런 하찮은 고민을 부여안고 살아서는 아니 될 일이다, 하고 너는 술잔을 꺾으며 생각했다. 그녀는 그저 화려하고 풍족하고 편안한 삶이 따분해서 카페에 나와 피아노를 만지작거려야 한다. 꿈과 같은 존재는 꿈과 같은 상태로 남아 있어야 한다.


  제가 생각하기로는…… 심사위원들의 수준이 낮아서인 것 같아요, 하고 너는 진심을 담기 위해 애쓰며 입을 열었다. 자기들보다 수준이 높으면 제대로 이해를 못하게 되고, 그러면 좋은 평가를 내릴 수 없는 거잖아요. 시대를 앞선 예술가들이 죽고 나서야 조명을 받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잖아요. 임은정이 시무룩한 얼굴 위로 살짝 미소를 머금더니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위로해 주셔서 고맙긴 하지만…… 저는 제 실력이 보잘것없다는 것 잘 알고 있어요. 젠장, 너는 소리 지르고 싶었다. 누가 뭐래도 피아니스트 임은정은 최고야! 심사위원들의 눈이 삔 거라고!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쓰며 너는 차분한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왠지 꺼져가는 불길을 되살리기 위해 후후, 입으로 연신 바람을 불어대는 꼴처럼 느껴졌다. 그게 아니라면…… 심사위원들이 공정한 평가를 하지 않고 아는 사람을 뽑거나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을 뽑거나 몰래 돈을 찔러 준 사람을 뽑았을 거예요. 오래 전부터 이어져 온 병폐 중의 하나잖아요. 그녀가 다시금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예전에는 그런 일이 종종 있었다지만, 요즘에는 그렇게 하지 못하게 막는 시스템이 잘 되어 있대요. 그녀는 침울한 얼굴로 술잔을 비웠다. 그러더니 훌쩍훌쩍 눈물을 훔쳤다. 너는 티슈가 담긴 나무통을 들어 그녀의 앞쪽에 내려놓았다. 그러곤 소리쳤다, 속으로. 안 돼! 안 돼! 그런 찌질한 모습 보이지 마! 피아니스트 임은정은 천사야, 천사! 그래야 해! 그렇게 허물어지는 모습 보고 싶지 않아!


                                                               *


  곱창집을 나와 바로 헤어졌어야 했다. 그런데 이번엔 임은정이 나이트클럽에 가자고 했다. 곱창집에서의 술값도 큰 부담으로 다가왔는데, 나이트클럽에서의 비용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나이트클럽에서는 은정 씨가 돈을 내라고 말을 꺼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너는, 그런 곳은 싫다고, 막힌 공간에 우글우글 모여 유행하는 음악에 맞춰 유행하는 춤을 추는 것은 참으로 비개성적인 행태가 아닐 수 없다고 개탄했다. 예술을 하는 사람이라면 열린 공간에서 자연을 호흡하며 즉흥적이고 창의적인 춤을 추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럼…… 어디로 가자는 거예요? 임은정이 의구심을 품은 채 물었다. 지금 이 시간에 멀리 갈 수는 없고…… 가까운 공원에 가자고 너는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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