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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룸 Feb 05. 2021

술과 당신의 이야기 #3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었고, 공원에는 아무도 없었다. 은정 씨, 세상에 우리 둘만 남겨진 것 같네요. 세상이 요구하는 가치관이니 도덕이니 하는 것들 다 떨쳐버리고 우리 마음껏 욕망을 분출해 봐요, 하고 너는 감정을 끌어올리려 애쓰며 말했다. 그러곤 레드제플린의 ‘Immigrant song’을 떠올리고 아아아~아! 아아아~아! 하늘을 향해 연이어 포효한 다음 빰빠빰빠…… 소리를 내며 꿈꾸는 삶에의 열망을 몸짓으로 표현했다. 한참 춤을 추다가 보니 임은정은 멀뚱히 서 있기만 했다. 그래서 너는 그녀의 두 손을 잡고 빰빠빰빠…… 소리를 내며 위아래로 흔들었다. 그러자 그녀가 피식 웃더니 움직이기 시작했다. 라라라…… 소리를 내며 발레를 하듯 우아하게 춤을 추었다.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하얀 원피스를 입고 춤을 추는 그녀의 모습은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다. 저 아름다움과 언제까지나 함께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너는 생각했다. 그러나 다시는 돌아오기 힘든 꿈과 같은 순간이라는 생각이 스며들자 절망이 부풀어 올랐다. 그리하여 라디오헤드의 ‘Creep’의 가사를 읊조리며 그녀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천사처럼 느껴지는 여자를 향해 보잘것없는 남자가 비통해하는 가사의 내용을 애절하게 연기하며. 그런 너의 모습을 보며 그녀가 깔깔거리며 웃어댔다. 절규의 몸짓에 유쾌한 웃음으로 화답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자 더욱 절망적인 심정에 사로잡힌 너는 이제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바닥에 짚은 채로 엉금엉금 기었다. 왈왈…… 강아지가 짖는 소리를 내며 그녀의 주위를 맴돌았다. 그러자 그녀가 웃음을 멈추더니, ‘그건 아닌 것 같아요’의 표정을 머금었다. 그러곤, 이제 그만 집에 가봐야겠어요, 하고 말했다. 그러나 너는 다시 오기 힘든 시간을 어떻게든 지속하고 싶었다. 너는 몸을 일으켜 섰다. 그러곤 끊겨버린 리듬을 어떻게 되살릴 수 있을까 궁리했다. 하지만 임은정은 너를 괴상한 놈이라고 여기는 듯 여차하면 도망칠 기색을 얼굴 가득 담고 있었다. 


  마치 억지로 끌려온 듯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는 그녀를 보자 억눌러왔던 감정이 치솟아 올랐다. 도대체 뭐 하자는 겁니까? 하고 너는 소리 질렀다. 언제까지 그렇게 남들 의식하면서 조심조심 살아갈 거죠? 세상의 판단 기준에 부합하기 위해 쩔쩔 매는 삶 따위 개한테나 줘 버려요! 잠재된 욕망을 끄집어내어 마음껏 불살라야 제대로 된 연주를 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대가들의 화려한 겉모습이나 결과만 보지 말고, 화려한 꽃을 피우기 위해 거쳤던 지난한 과정을 들여다보고 가슴 깊이 느껴야 하지 않겠어요? 일정한 선을 그어놓고 그 안에서만 뱅글뱅글 맴돌면서 뭐가 이루어지길 바라나요? 오늘 당장 그 선을 무너뜨리는 거예요! 저도 지금 당장 제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찌질함의 선을 박살낼 겁니다! 자, 이리 오세요. 우리 이제 어제까지의 삶을 버리고 새롭게 태어납시다!

  그러면서 너는 풀밭에 누웠고, 그녀를 맞아들이기 위해 두 팔을 활짝 벌렸다.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치뜨더니, 싫어요! 외치고는 몸을 돌려 달아났다. 너는 망연히 하늘을 바라보았다. 찬란해도 좋을 5월의 밤하늘엔 별도 달도 보이지 않았다. 암담함만이 가득했다.


                                                                    *


  너는 카페에 나가지 않았다. 임은정의 얼굴을 다시 마주치기가 껄끄러웠다. 그날 이후로 너는 가수가 되겠다는 꿈을 접었다. 기타도 쓰레기 분리수거장에 내놓았다. 아예 음악 자체를 가까이 하지 않았다. 일용직 노동자로 하루하루를 살았다. 일이 끝나면 컴퓨터로 영화나 드라마를 보았다. 비나 눈이 와서 일이 없는 날이면 실컷 잠을 잤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지내다 보니 더 이상 절망할 일도 없어졌다. 절망할 일이 없으니 술을 마실 필요성도 사라졌다. 거기에는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음에도, 너는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그런 채로 8년하고도 6개월이 지났다.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가 발을 헛디뎌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것도 네 눈앞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10층 높이에서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치는 광경을 너는 고스란히 목격했다. 나 또한 언제 죽을지 모르겠구나, 하고 너는 생각했다. 죽음이란 이렇게 가까이 있는 것이구나, 하고. 언제까지나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구나, 하고.


  너는 다시 음악을 하고 싶어졌다. 이제 꿈에 사로잡혀 현실을 굴절된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으리라. 그렇다고 해서 꿈도 없이 죽음 같은 하루하루를 흘려보내지도 않으리라. 꿈을 간직한 채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가리라 다짐했다. 거창하지만 저 멀리 있는 꿈으로서의 음악이 아니라 소소하지만 소중한 일상에 대한 생각과 감정을 자유롭게 담아내는 음악을 하고 싶었다. 너는 악기점에 가서 기타를 샀다. 방으로 돌아와 오랜만에 기타를 튜닝하고 있자니 임은정이, 그리고 그녀와의 그날 밤이 떠올랐다. 너는 마흔셋이 되었다. 임은정은 마흔이 되었으리라. 그녀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그녀에 대한 가슴 아린 그리움이 악상이 되어 떠올랐다. 너는 멜로디를 웅얼거리며 기타줄을 튕기기 시작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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