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꿈꾸었던 가수의 길을 걷지 못하는 것에 절망했다.
그래서 술을 마셨다. 거기에는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음에도, 너는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뜻하는 대로 안 되면 술을 마셔야 한다. 그것도 취하도록. 그러한 사고방식이 너를 지배했다.
가수가 되면 화려하고 풍족하고 편안한 하루하루가 마냥 이어질 것이라고 너는 생각했다. 화려한 소수에 속하게 된다한들 그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많은 관리와 절제와 노력이 요구된다는 것을 너는 염두에 두지 않았다. 화려한 소수에 속하지 못하고 빌빌거리며 살아야 하는 가수들이 훨씬 더 많다는 것 또한 염두에 두지 않았다.
가수가 되는 것이 그토록 간절한 바람이었으면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마땅했겠지만, 너는 그러지 않았다. 기타를 만지작거리며 노래를 부르다가 한숨만 내쉬기 일쑤였다. 꿈꾸는 세계와는 너무도 멀리 떨어진 비루한 현실이 싫었다. 비루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술을 마셨다. 술에 취하면 꼴 보기 싫은 현실이 흐릿해졌고, 꿈꾸는 세상에 들어선 것 같은 환각에 사로잡혔다. 그러니 안 마실 수가 없었다.
대학을 졸업한 후 너는 줄곧 라이브 카페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 부르는 일을 하고 있었다. 꿈과 현실의 괴리는 컸다. 머릿속에서는 수천 명의 군중 앞에서 스스로 만든 노래를 부르는 광경이 맴돌았지만, 현실에서는 카페에서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신청하는 유명한 가수의 노래를 불러야 했다. 그렇게 해서 버는 돈이라고는 생활비를 충당할까 말까한 액수였다.
네가 함께 술을 마시는 사람은 카페의 사장과 직원, 그리고 너의 앞 시간에 피아노를 연주하는 임은정, 너의 뒤에 무대에 오르는 그룹사운드의 멤버들이었다. 물론, 간혹 있는 일이었다. 혼자 원룸에서 술을 마시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었다.
너는 임은정과 사귀고 싶었다. 그러나 용기를 낼 수 없었다. 그녀는 너무도 우아했고, 그녀의 짝이 되기에는 너는 너무도 찌질했다. 그녀는 너에게 또 하나의 꿈이었다. 혼자 먹고사는 것도 버거운 놈에게 어떤 여자가 손을 맞잡겠는가, 하는 인식이 그녀에게 다가서고 싶은 충동을 원천봉쇄했다. 생물학적인 욕구는 하늘 높이 치솟았지만, 그 욕구를 충족시키려면 문명사회가 요구하는 일정 정도의 갖춤이 전제되어야 했다. 너는 자격미달이었다. 그래서 너는 절망했고, 술만 마셔댔다.
*
눈을 떠보니 너는 풀밭 위에 누워 있었다. 윗몸을 일으켜 앉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카페 근처의 공원이었다.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어 시간을 보니 일곱 시를 막 지나고 있었다. 아침 운동을 나온 사람들이 간간이 지나가다가 힐끔힐끔 너를 쳐다보았다. 공허함이랄지 허무함 같은 감정만이 몸 안에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카페에서 회식을 했다. 한 달에 한 번씩, 월급을 받는 날이면 연주자들은 일을 하지 않았고 모두 모여 술을 마셨다. 말하자면, 한 달 동안 수고했다며 사장이 한 턱 쏘는 날이었다. 사장도 자리를 함께 했고, 바쁠 때에만 잠깐씩 자리를 비웠다. 저녁 여덟 시에 만나서 열 시쯤이면 흩어졌다. 전날에도 여느 때처럼 열 시 조금 넘어서 흩어졌고, 너는 보금자리를 향해 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그때 임은정이 너에게 다가왔다. 술 한 잔 더 하고 싶은데 함께 마셔줄 거냐고 물었다. 그거야 물론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회식 자리에서는 맥주 한두 잔만 마시며 다른 사람들이 묻는 말에 늘 미소를 머금고 짤막하게 대답하던 그녀였다. 그런 그녀가 다가와 술을 더 마시고 싶어 하다니……. 세상 살다 보니 별일이 다 생기는구나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