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누리
선다형, 단답형 방식으로 정답을 찾게 하는 교육은 전형적인 파쇼 교육입니다. 파시스트들은 자신들이 주장하는 것을 정답이라고 부르며 모든 사회의 구성원들이 그것을 따르도록 강제합니다. 그러니 그들의 교육 또한 암기식, 주입식 방식으로 이루어졌고, 평가 또한 정답을 고르거나 말하라는 식이었던 거지요. 히틀러 시대의 독일이 그랬고, 박정희·전두환 시대의 한국이 그랬습니다. 독일은 히틀러 파시즘의 극복 차원에서 이런 교육방식과 평가 방식을 폐기했지만, 한국은 군사 파시즘의 잔재인 이런 교육이 청산되지 않은 채 아직도 그래도 유지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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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한 민주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교실이 ‘정치화’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교실에서 성숙한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교육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한국 교육을 잘 받은 학생일수록 잠재적 파시스트의 성향을 보입니다. 이것이 한국 민주주의가 위대한 민주혁명의 전통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뿌리가 허약한 이유입니다. 독일처럼 어려서부터 정치교육을 통해 성숙한 민주시민을 길러내야 합니다. 오로지 개인적인 성취에만 몰두하는 이기적 인간이 아니라, 인류의 고통과 억압에 맞서 연대하는 높은 정치의식을 가진 성숙한 시민을 길러내야 합니다. - 김누리, <경쟁 교육은 야만이다> 중에서 -
우리가 접하는 것만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면서 살게 되면 그것이 당연한 것처럼 느껴진다. 문제가 많다고 느낄지라도 어쩔 수 없다는 체념에 머물고 만다. 그래서 직간접 경험은 많을수록 좋다. 다른 세상에 대한 앎을 확장하면서 내가 아는 것의 한계를 인식할수록 시야가 넓어진다. 독일에서 살며 독일의 교육 현장을 직접 경험한 저자의 글을 통해 우리는 교육에 대한 시야를 넓힐 수 있다.
파시즘의 혹독한 광풍에 휩쓸렸던 독일은 통렬한 반성과 함께 좋은 세상으로의 탈바꿈을 위해 교육제도를 전면 개편했다. 경쟁을 통해 우열을 나누는 교육에서 협력을 중시하고 비판적 사고를 키우는 쪽으로 전환했다. 식민지 시대를 지나 전쟁을 겪고 독재자들의 지배까지 받은 우리의 교육은 어떠한가. 민주사회가 된 지 한참이 흘렀어도 여전히 주입식, 암기식 교육이 주가 되고 있다.
변화한 시대에 조응하는 교육 방식이 아니다 보니 학생, 교사, 학부모에 이르기까지 스트레스가 상당하다. 경쟁을 통해 성적이 매겨지고 서열이 정해지는 세상에서 소수의 승리자가 나오고 다수의 패배자가 양산된다. 소수는 오만해지기 마련이며 다수는 열패감에 시달리기 일쑤다. (이번 12·3 내란 사태에서 서울대를 나오고 높은 자리에 오른 자들의 헌법까지 무시하는 오만한 행태를 보라.)
독일에서 아이에게 구구단을 외워서 학교에 보냈다가 교사에게 야단을 맞았다는 내용이 인상적이다. 구구단을 기계적으로 외우는 순간 아이는 숫자에 대한 본원적 감각을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스스로 생각함으로써 자신의 고유한 능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지, 암기를 통해 정답을 맞히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어린 시절에는 국제대회에서 최상위의 실력을 보이다가 대학생쯤 되면 순위권에 들지 못하는 한국 학생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외워서 정답을 찾는 습성이 이어지면 나이 들수록 사고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정답만 찾는 교육은 권력에 대한 맹종으로 이어진다.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해지고, 다양한 가능성은 탐구의 영역에서 멀어진다. 높은 성적을 얻고 좋은 대학을 나와 높은 소득이나 자리를 얻는 것만이 지향해야 할 가치로 자리매김된다. 그러면 강한 자에게는 약하고 약한 자에게는 강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탄핵 반대를 외치는 사람들은 그런 성향이 강한 것 같다. 법을 파괴하고 나라를 혼란에 이르게 하고 국격을 추락시킨 사람을 대통령이라는 이유로 옹호하는 것을 보라.)
2차 대전 이후로 과거를 억압하며 살았던 독일인들은 68혁명을 통해, 특히나 교육 혁명에 중점을 두며 ‘과거 청산’을 시작했다고 한다. 교육 혁명이 곧 새로운 사회를 펼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다. 한국은 교육을 ‘상품’으로 보는 미국식을 따라 하고 있는데, 그런 체제가 미국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이 큰 만큼 한국도 마찬가지다. 교육을 국민의 ‘권리’로 보는 유럽권처럼 대학까지 평준화된다면 경쟁 교육 대신 행복 교육이 시작될 것이고, 그러면 사회 영역에서의 서열 체제 또한 완화될 것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청소년 사망 원인의 1위가 자살인 나라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고등학생의 경우 아침 8시에 등교해서 밤 10시에 하교한다. 저녁 자율학습(정확히 말하면 ‘강제학습’이다)을 빠지려면 학원에 다니고 있다는 것을 교사에게 확인받아야 한다. 다른 도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사는 곳에서는 그렇다. 만약 고등학생이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를 어른에게 물으면 ‘너의 미래를 위해’라는 허무맹랑한 답변이 돌아온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활기찬 성장을 이루어야 할 시기에 한국의 청소년들은 ‘공부 잘해야 성공한다’는 경쟁과 능력만 중시하는 사회 이데올로기에 볼모로 잡혀 인내의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강요된 인내는 욕구불만과 분노가 되어 쌓이고, 친구들과 모이면 욕 없이는 대화가 힘들 정도로 욕이 습관화된 청소년들이 많다. 억지로 하는 공부가 제대로 될 리 없다. 수업 시간에 절반 정도는 잔다고 한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비율이 80% 정도라고 알고 있는데, 40% 정도로 줄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부에 뜻이 없는 아이들이 인문계로 진학하는 것은 3년간 극기 훈련을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체력이라도 단련된다면 모르겠지만 오히려 체력을 허비하는, 지극히 소모적인 극기 훈련이다. 적성에 맞는 기술을 배워서 직업을 얻는 게 낫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관리직과 생산직, 정규직과 비정규직에 대한 처우가 좁혀져야 한다. 직장에 다니다가 공부의 필요성이 느껴지면 그때 대학에 들어가면 되지 않겠는가.
우리 사회에 바꾸어 나가야 할 게 많지만 그 중에서도 교육 개혁이 가장 먼저 중점을 두고 추진되어야 한다. 올바른 교육 환경에서 자란 세대가 올바른 사회 환경을 마련할 것이기 때문이다. <오징어 게임>이나 <기생충>이 크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세상에서, 그런 상상력이 너무나 괴기스럽게 느껴지는 세상으로 변화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제목 : 경쟁 교육은 야만이다
지은이 : 김누리
펴낸곳 : 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