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형
한국 사회의 경우 극단주의를 묵인하거나 부추기는 사회적 조건이 거의 성숙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 사회를 70여 년 넘게 지배해 오고 있는 극우 세력 자체가 극단주의 집단이고, 그들이 분할 통치와 차별 정책을 통해 사람들 사이의 갈등과 혐오를 끊임없이 조장하고 부추겨 온 결과 극단주의 경향은 지배층의 울타리를 넘어 전 사회적 범위로 널리 확산되고 있으며, 돈독이 오를 만큼 오른 사이비 종교 집단들까지 가세하면서 한국에서의 극단주의 경향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 김태형, <그들은 왜 극단적일까> 중에서 -
독일 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파시즘이 지배하는 시대에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라는 시를 남겼다. 독재자들의 지배를 오랫동안 받아온 한국인들에게 제목만으로도 공감을 크게 불러일으키는 시였다. 독재자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이제 드디어 마음껏 서정시를 써도 좋은 시대가 열렸다고 생각하고 있었건만, 독재자를 꿈꾸는 사람이 대통령 자리에 앉아 있었을 줄이야 어찌 알았으리오. 시대착오적인 꿈을 꾸다 실패했으면 잘못을 시인하고 단죄를 받겠다는 자세를 보여야 마땅하건만 국민들을 상대로 끝까지 싸우겠다는 태도를 여전히 보이고 있다. 그런 태도에 대다수의 국민들은 분노하건만 독재를 꿈꾸는 자를 두둔하며 선동을 일삼고 폭력을 불사하는 모습을 보이는 저들은 도대체 누구이며 왜 저러는 것일까?
서정시를 쓰기 좋은 시대라고 생각될 때는 심리학도 개인심리학을 위주로 접했으나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가 되니 사회심리학을 들여다보게 된다. 탄핵 반대 집회에 몰려드는 사람들을 보면서 흐릿하게 느껴졌던 것들이 이 책을 읽다 보니 명확하게 정리되는 듯하다.
<용비어천가> 2장에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움직이므로 꽃 좋고 열매 많다’는 구절이 있는데, 좋은 나무뿐만 아니라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나오는 바오밥나무 같은 나쁜 나무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에게 지지 기반이 탄탄하면 사회가 점점 좋아지지만 악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에게 지지 기반이 탄탄하면 좋지 않은 사회 분위기가 커진다.
그들은 하루아침에 형성된 게 아니다. 식민지 시대에 친일파가 되어 떵떵거린 자들, 그 자들에게 빌붙어 먹고살 길을 도모한 자들, 해방 이후에도 처벌받지 않고 부와 권력을 이어간 자들, 민중이 항거할 때마다 무력을 동원하여 진압하고 자신들의 뜻에 반하면 빨갱이로 몰아 ‘국가보안법’을 통해 처단한 자들, 자신들이 키워 온 위계질서가 무너질까 봐 끊임없이 돈과 권력을 이용하여 포섭하고 세뇌시켜 세를 불려온 자들…….
오만한 태도로 법을 무시하며 체포를 거부하던 내란수괴를 힘들게 구속시켰는데, 판사가 잔머리를 굴려 구속 취소했고, 검찰이 정당한 항고를 포기함으로써 내란수괴가 석방되었다.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법 위에 위치시키는 극단적인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이들은 모두 서울대 법대를 나왔고 사법고시를 통과한 자들이다. 누구보다 열심히 법 공부를 했을 것이고, 이를 통해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나라의 근간이 되는 법이 있어 가능한 일들인데, 법을 철저히 지켜야 할 자들이 법을 깔아뭉갰다. 무법천지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지키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일까.
대한민국에 다양한 문제가 산재하지만 그 중에서도 교육제도의 문제가 심대하다고 본다. 어려서부터 성적으로 모든 것이 자리매김되고, 그에 따라 아이들의 자존감에 심대한 영향을 끼친다. 공부를 잘하면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고 뭐든 허용될 수 있다는 심리가 어렸을 때부터 뿌리를 내린다. 그 뿌리는 나이가 들수록 굳세어진다. 성적은 곧 서열이 되고, 서열에 따라 빨아들일 수 있는 양분의 차이는 점점 커진다. 그런 세상에서 승리자들은 정당한 경쟁을 통해 이겼다는 뿌듯함을 만끽하고, 승리자들을 무조건 믿고 따르는 자들 또한 많아진다.
세상은 이기고 지는 것으로 유지되어서는 안 되고 협의를 통해 좀 더 좋은 방안을 찾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성적과 서열을 중시하는 교육에서 토론과 협의를 중시하는 교육으로의 변화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하다고 본다.
그런 미래로 가기 위한 첫 단계로 대한민국이라는 별을 파괴하는 바오밥나무들부터 뽑아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