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니엘라 야페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음에도 우리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사실들이 있다. 그것이 무의식적인 것일수록 그 영향력은 더욱더 크다. (중략) 무엇보다도 문제가 되는 것은 의식과 무의식 내용을 구별하는 일이다. 무의식 내용은 이를테면 격리를 시켜야 한다. 그것을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우리가 그 내용을 인격화하여 의식으로 하여금 그 인격들과 관계를 맺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우리는 무의식 내용에서 힘을 제거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무의식이 그 힘을 의식에 행사하게 된다. - 아니엘라 야페, <카를 융 기억 꿈 사상> 중에서 -
이 책은 융의 제자인 아니엘라 야페가 융과의 대화를 바탕으로 엮은 융의 전기다. 융이 검토를 했고, 죽은 다음 출판이 이루어진, 자서전에 가까운 책이다.
현실의 흐름에 부화뇌동하는 삶이 아닌,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관성이 삶 전체를 통해 잘 드러나 있다. 예컨대 남들이 모두 성공과 명예가 보장되는 내과의로 전공을 택하라고 할 때, 융은 그동안의 삶의 지표를 바탕으로 자신의 길은 정신과라는 결정을 내리고 소신을 가지고 일에 매달린다. 또한 무의식에 대한 치열한 투쟁이 필요한 시기가 펼쳐지자 안정된 삶의 길인 대학교수직을 반납한다.
과연 성공적인 삶이란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을 이 책은 잘 보여준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세상이 요구하는 기준에 자신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다가 생을 마감하곤 하는가. 융은 끊임없이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것을 해독하기 위해 치열하게 연구에 몰두한다. 잘못하면 무의식의 힘에 고스란히 잡아먹힐 수 있는 과정을 철저한 지성의 힘으로 관찰하고 기록하고 검토하는 과정을 통해 이겨낸다. 그 균형 잡힌 삶의 자세는 놀라울 따름이다.
나는 과연 그렇게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면…… 못 할 것 같다. 철저한 자기관리와 냉철한 이성의 세계는 두렵기까지 하다. 하긴 그런 치열함이 있었기에 융은 남들이 지표면에 머물 때 맨틀을 지나 핵에까지 도달하지 않았나. 세상에는 어처구니없는 사람도 많지만 감탄을 자아내는 사람도 많다.
제목 : 카를 융 기억 꿈 사상
지은이 : 아니엘라 야페
옮긴이 : 조성기
펴낸곳 : 김영사